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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함과 반가움의 공존 8월의 크리스마스
kharismania 2007-01-18 오후 12:11:22 2076   [6]
사실 죽음이 두려운 건 생의 의지덕분이다. 살고 싶다라는 욕망. 그것이 죽음이 두려워지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사형선고와도 같은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행복하다는 감정이 제멋대로 자라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이 얼마남지 않은 유효기간에 다다를수록 행복하다는 감정은 그만큼의 불행으로 역전될 것이니 말이다.  

 

 1998년에 개봉된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남성의 인생 말미에 불현듯 찾아온 로맨스로 잔잔한 감성에 파문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파문이 수면을 흔드는 애절함으로 번져나가는 최루효과로 활용되지 않고 오히려 섬세하고 절제된 감성을 유지함으로써 비통한 심정으로 채워질 법한 영화의 자태를 좀 더 밝은 기운으로 채색했다. 단순히 로맨스를 극대화하기 보다는 삶이라는 명제를 부각시키고 이별의 아픔보다는 단시절의 사랑을 추억담처럼 배치하여 감성의 여운과 지속시킨다.

 

 한글 제목을 일어로 고스란히 옮긴 이 작품은 허진호 감독의 98년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의 모양새에 큰 변화를 시도하지 않은 이 작품은 말그대로 원작이 지닌 강점을 그대로 살리려 한것만 같다. 몇몇 인물의 설정과 언어가 다른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20세기의 필름이 21세기의 디지탈로 변화했음를 제외하면 고스란히 원작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한국판의 정원(한석규 역)과 같이 사진사인 스즈키(야마자키 마사요시 역)는 시작부터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애초에 그의 삶은 한정되어 있고 이것으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노골적인 의도가 없음은 단박에 드러난다. 죽음이라는 클리셰를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활용하지만 그 의도는 조금 다른 구석이 있다.

 

 사실 원작을 본 이라면 이 영화가 지독히 지루할 수도 있다. 극속에서 달라진 것은 일본이라는 국적성과 몇몇인물의 설정뿐이다. 이야기의 흐름이나 소재도 별반 차이가 없고 감성을 자극하던 장면들이 고스란히 재현된다. 물론 원작의 감성도 고스란히 옮겨간다.

 

 이 작품이 원작과 다른 가장 큰 변화라면 여자 주인공이 주차단속원이 아닌 임시 교사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임시교사인 유키코(세키 메구미 역)는 필름인화를 위해 찾아간 현상소에서 사진사인 스즈키를 만나고 엇나간 듯 시작된 인연은 은연중에 서로를 끌어당긴다.

 

 원작의 가장 큰 미덕은 시한부 인생이라는 소재를 통해 관객의 눈물을 노골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중심 소재를 바탕으로 일상이라는 주변부를 디테일하게 끌어낸다는 점인데 그 주변부에 서 있는 것은 가족과 소박한 로맨스다. 이별이라는 상황을 비극적인 상황으로 각인하고 감정의 폭발로 몰아가기 보다는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맞이되는 피날레의 순간까지의 여정을 차근차근 보여준다는 것이다. 또한 그 안에서 머무는 인물간의 심리가 지극히 호들갑스럽지도 않고 다분히 일상적이고 차분하다. 이는 관객에게 감정적인 강압을 요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극의 흐름을 노출시켜 감정이 적절히 고조되길 기다리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도 비극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조적으로 희극성을 드러내며 그 안에 잠재된 비극의 기운을 두드러지게 한다.

 

 뛰어난 원작의 리메이크는 어느 지점까지는 나쁘지 않은 듯 하다. 다만 한가지 확실해 보이는 것은 원작을 접한 이들에게 심심한 감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절제된 감성으로 적당한 여운을 선사하는 것은 일본 멜로의 장기이다. 이 영화는 애초에 원작 자체가 그런 코드에 부합되었고 그런 면에서 그 장기가 잘 살아난 모양새다. 다만 원작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이야기 구조나 캐릭터의 특성, 전체적인 극의 흐름은 리메이크작이라는 이름안에서 기대되는 차별적 성향이 발견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작품의 문제가 아닌 원작과 리메이크작이라는 순차적인 경향으로 보인다.

 

 원작에 비해 더욱 밋밋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원작의 디테일한 감성은 고스란히 녹아있다. 특히나 원작에서 정원이 아버지(신구 역)에게 리모콘 작동법을 알려주는 씬이나 정원이 방안에서 홀로 흐느낄 때 방문앞에서 망설이는 아버지의 씬을 다시 보는 것도 또다른 반가움이다. 원작에 대한 애정이 지독하다면 이 작품은 폄하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지만 또다른 면에서는 다른 방식의 원작을 보게 되는 반가움일 수도 있다. 적어도 원작의 가장 큰 미덕이었던 비극의 과잉에 타협하지 않았던 방법론이 고스란히 살아있다는 것은 이작품의 가장 큰 반가움일지도 모르겠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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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2005, Christmas in August / 八月のクリスマ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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