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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깔 참 곱게 부활한 악마 오멘
jimmani 2006-06-06 오후 9:47:07 14495   [11]

개인적으로 호러 영화들은 잔인하든 심리적 압박감을 주든 웬만한 건 눈깜짝하지 않고 보는, 꽤 즐겨보는 스타일이지만 그래도 많은 호러 영화들 중에서 유독 공포영화로서의 포스가 더 강하게 다가오는 종류가 있다면 오컬트 호러다. 그래도 사람이라 죽일 수는 있는 살인마나 원한만 풀어줄 수 있다면 충분히 해방될 수 있을 귀신이라면 그나마 낫겠지만, 그 어떤 풀어줄 원한도 해칠 수 있는 뚜렷한 형체도 없이 순도 100% 악으로 가득찬 악마와 같은 것이 주인공의 상대라면, 그 어떤 방법도 물리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테니 절로 무기력해지고 압박감만 더해질 수 밖에. 특히나 <엑소시스트>, <악마의 씨>, <오멘> 등 오컬트 호러물 중 몇몇 작품이 영화 속에서의 기이한 저주가 현실로 옮겨진 것만 같은 끔찍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 그 공포감은 더하다. 이런 경우들은 일반적으로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공포영화를 보는 우리들에게 "이 영화는 좀 예외일지도 몰라"하고 은연중에 우리를 위협하는 것만 같아 더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 영화 <오멘> 리메이크판 역시 원작이 겪었던 불가사의한 일들로 인한 신비스러운 포스를 등에 업은 데다 살면서 한번 올까말까한 완전한 666의 날 "2006년 6월 6일"에 개봉한다고 선전포고를 하니 그 공포의 무게에 대한 기대감이 더해지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나는 이 영화를 국내 첫 상영이자 전세계 첫 상영이라는 0시 6분에 보았으니, 나처럼 제아무리 공포영화에 끄떡없는 사람이라도 그 압박감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그저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공포는 아닐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 영화를 6이 3개 겹치는 날 자정이 6분 지난 후에 보는 느낌, 이거 쉽게 얻을 수 있는 느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영화 외적으로 어쩌면 마케팅의 일환일 수도 있을 부분만 언급하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것이고 영화 자체를 들여다본다면, 악마와 세계의 종말이라는 섬찟하고 무지막지한 소재를 했음에도 이 영화, 상당히 때깔이 곱다.

로마의 한 병원. 미 대사관 고위관직에서 일하고 있는 외교관 로버트 쏜(리브 슈라이버)은 아내 캐서린(줄리아 스타일스)의 출산소식을 듣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온 마당이다. 그러나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되니,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는 것. 그곳의 신부는 로버트에게 대신 같은 시각에 태어났으나 생모의 죽음으로 가족이 없게 된 다른 아기를 아들로 삼으라고 제안한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 캐서린에게는 모든 걸 숨긴 채. 고민 끝에 로버트는 신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 아기를 자신의 아들로 삼아 데미안(시무스 다비-피츠패트릭)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게 된다. 쏜 가족은 부대사, 나아가 대사로 승진하면서 승승장구하고 런던으로 발령나면서 런던의 거대한 저택에서 새 삶을 시작하게 된다. 여느 가족들처럼 행복한 나날을 이어가던 그들. 그러나 비극은 데미안의 5번째 생일 파티에서 시작된다. 데미안을 돌봐주던 유모가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검은 개를 보더니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집 옥상에서 뛰어내려 목을 맨 것. 이런 끔찍한 사건을 겪고 난 뒤 로버트에게는 브레넌 신부(피트 포스틀스웨이트)라는 사람이 나타나 아내를 살려야 된다는 둥, 악마의 자식을 죽여야 한다는 둥 이상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로버트, 그런데 아내 캐서린이 점차 데미안에게서 불안한 기운을 느끼고 데미안 주변에서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제닝스(데이빗 튤리스)라는 기자가 나타나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석연치 않은 얘기들을 꺼내면서 그의 생각 또한 조금씩 데미안에 대한 의심으로 바뀌게 되는데, 과연 데미안은 정말 "악마의 자식"인가?

일단 "악마의 자식"이라는 소재도 그렇고, 일어나는 사건들도 무지막지한 수준으로 조금씩 업그레이드되기 때문에 영화 속 배우들의 역할 또한 만만치 않은 무게를 지니게 된다.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역시나 모든 비극의 중심이 되는 아이 "데미안" 역의 배우일 것. 이번 영화에서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이 시무스 다비-피츠패트릭이라는 다소 긴 이름의 아역배우는 정말이지, 대단한 포스를 선보인다. 버섯돌이 코스프레라도 한 듯한 머리칼은 먹물로 염색이라도 한 듯 새까맣지만 얼굴빛은 반대로 뽀샵효과라도 가한 것처럼 창백하고, 거기에 눈빛은 푸르디 푸른 색을 띠고 있다. 외모에서부터 시선을 확 사로잡고 있는 이 아이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솔직히 참 귀엽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러나 점차 사건이 미궁으로 빠져들고, 별다른 대사 없이 단 몇마디(이를테면 고작 다섯살짜리가 은근한 미소를 머금고는 한다는 말이 "얘들이 날 겁내.")로 무게감을 더하게 되면서 "악마의 자식"으로서 가질 만한 악의 카리스마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사건이 파국으로 치닫는 후반부에서 데미안이 날리는 한 마디(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겠다), 그리고 라스트 신에서 관객들을 향해 날리는 썩소(썩은 미소)는 그 강렬한 포스에 몸서리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정말 이 조그만 아이가 이토록 차가운 썩소를 제대로 날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암튼 이 배우, 악마의 자식이라는 역할에 걸맞는 만만치 않은 무게감을 지닌 배우가 아닐까 싶다. 76년 원작에서 데미안 역을 맡은 배우가 그 역할의 카리스마가 너무 강해 배우 인생을 마감해야만 했다고 하는데, 이 배우는 부디 그런 안타까운 전철을 밟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데미안과 함께 영화의 공포감에 또 한몫 하는 캐릭터가 바로 데미안을 보호하고 한편으론 부추기기도 하는 유모 베일록 부인이다. 베일록 부인 역할을 맡은 미아 패로우는 <악마의 씨>에서 보여준 연기를 전혀 다른 차원에서 보여줌으로써 영화의 공포감을 더 배가시키고 있다. <악마의 씨>에서 그녀의 이미지는 너무나 나긋나긋하고 친절하고 다소곳해, 그때문에 오히려 이웃들의 끔찍한 덫에 사정없이 걸려드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정반대로 비극을 만들려고 애쓰는 역할을 맡은 이 영화에서, 그녀는 <악마의 씨>에서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게 친절하고 자상한 유모의 모습을 보여준다. 데미안에게도 그런 모습은 변함이 없고. 다만, 반대로 그런 모습을 한 채 사람이 할 짓이 못되는 일들을 저지르고 뒤에서 조종하는 모습은, 대놓고 "그래 나 못됐다"하면서 못된 짓 저지르는 경우보다 훨씬 더 섬뜩한 느낌을 선사하며 데미안과 쌍벽을 이루는 공포 카리스마를 선사한다.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고 친절한 말투를 구사하면서, 생각과 행동은 온갖 악행으로 가득한 야누스적인 인물인 셈이다. 제아무리 친절한 금자씨도 이 베일록 부인의 친절 악랄 포스는 결코 무시할 수 없지 않을까 싶다.

데미안의 부모 역할을 맡은 리브 슈라이버와 줄리아 스타일스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우리에게는 <스크림> 시리즈 내내 의심만 받고 타박만 받다 3편 오프닝에서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는 캐릭터로 알려진 리브 슈라이버는 이 영화에서 일때문에 바쁘지만 자상하고, 그러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비극을 실감하지 못한 채 혼란에 휩싸이는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목숨보다 귀하게 아껴왔던 자식을 죽여야 하는 상황과 주변 모든 이들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의 중간에 서서 고민에 빠지는 모습을 꽤 잘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특히 마지막 교회 장면에서 이런 그의 고민이 더 강화되면서 영화의 비극성을 더 강조시켜준다.

어머니 역의 줄리아 스타일스는 이와 대조적으로 일찍 데미안의 불길함을 눈치채고 그 때문에 두려워하면서 거기에 우울증까지 겹쳐 점차 망가져 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자식이라고 여겼던 아이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 앞에서, 병석에 누워서도 공포에 치를 떠는 그녀의 모습은 그 불안감이 보는 이들에게도 잘 전달되지 않았나 싶다.

아무래도 오랜 세월이 지난 원작을 리메이크한다고 하면, 당연히 기술적인 업그레이드가 예상되기 마련이다. 리메이크작이 원작보다 더 현란하고 정신없는 느낌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영화는 사뭇 다르다. 리메이크작이지만 원작을 최대한 많이 반영하려 했는지 생각보다 정적이다. 휑하니 고딕 호러와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쏜 가의 저택, 데미안의 비밀을 찾기 위해 로버트와 제닝스 기자가 여정을 떠나는 과정 등 영화 상당수 부분이 너무 동적이고 현란하게 보이지도 않고 꽤 고전적으로 묘사가 되어 있다. 때문에 요즘 헐리웃식 현란하고 정신없는 호러물을 선호한다면 살짝 실망할 가능성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와 함께 시각적으로 칭찬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화면이 대단히 세련됐다는 것이다. 수시로 강조되는 붉은 색(옷이나 꽃, 와인 등), 두어번 가량 나타나는 캐서린의 꿈 속 기이한 현상이나, 캐서린이 사고를 당하기 직전 상황 등 많은 부분에서 미적으로 공을 들인 티가 역력하다. 심지어 초반부 유모가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장면조차도 품격 있게 보이고, 캐서린이 데미안으로 인해 사고를 당하기 몇 분 전에도 붉은 꽃을 흩날려줌으로써 시각적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선보인다. 캐서린의 꿈 장면은 흰색과 붉은색이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강렬하면서도 모호하기도 하고, 살짝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선사하며 묘한 매력을 뽐낸다. 때론 핸드헬드로, 때론 정적인 직선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카메라 워크 또한 시각적인 세련미에 한몫하지 않나 싶다. 앞서 언급한 자살한 유모를 비롯해, 중요 인물들이 한명 한명 죽음을 당하는 장면들은 꽤 잔혹한 편이면서도, 죽음의 앞뒤 과정에서 현란하고 군더더기 없는 카메라워크를 구사하면서 긴장감과 함께 깔끔한 느낌을 선사한다.(남 죽어나가는데 깔끔한 느낌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도 좀 그렇긴 하지만;;) 주변의 사물때문에 죽음을 당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오멘>이 한참 먼저 나왔으니 이 영화가 원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암튼 시각적인 세련미에 있어서 근래 나온 헐리웃 공포영화들 중에서 1위 자리를 차지할 만한 매력을 갖고 있는 것이 이 영화 <오멘>이다.

이처럼 이 <오멘> 리메이크판은 배우들의 상당한 연기와(특히나 앞서 얘기한대로 데미안과 베일록 부인의 포스는 압권이다) 더불어 세월의 덕을 입은 탓인지 한층 때깔 고와진 비주얼은 영화의 공포감을 강조하기에 충분하지 않나 싶다. 이 영화가 원작보다 더 무서운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허술하게 만든 것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몸 속에 악마의 영혼이 숨쉰다는 섬뜩한 설정, 예측과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끔찍한 죽음들, 선이 과연 악을 이길 수 있는가 그 의문의 여지를 제공하는 비극적인 결말 등은 범상치 않은 연기와 비주얼에 실려 여전히 힘있게 다가온다.

더불어 영화 속에서도 9.11 테러, 각지에서의 전쟁과 쓰나미 등을 언급하며 종말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겁을 잔뜩 주는데, 그만큼 뒤숭숭한 일들을 많이 겪고 있는 세계 속에서 이 영화 <오멘>은 특히나 더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공포영화가 아닐까 싶다. 보통 공포영화는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 속 일이라는 가정 아래 보는 경우가 많지만, 이 영화는 지금 우리가 관통하고 있는 세계를 언급하면서 현실적인 공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피부를 맞대고 있어 더욱 불안감으로 다가오는 공포로서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암튼 이 영화 <오멘>은 때깔 곱게 차려 입은 악마의 포스가 현실과 우리를 동시에 동여매어 더 손에 닿는 듯한 공포감을 선사하는 영화다.


(총 0명 참여)
soupia33
보고싶은데 꿈자리가 어떨지...   
2006-06-13 15:42
hsetoctoc
썸뜩ㅡㅡ 이거 내용너무 잔인해요!!! 악마가 씐아이...
  
2006-06-11 20:06
verchuer
보고싶다ㅠㅠ
  
2006-06-1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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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멘(2006, The 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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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사 : 20세기 폭스 / 공식홈페이지 : http://www.foxkorea.co.kr/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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