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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난 행복하다니깐... 해피 고 럭키
ldk209 2009-01-19 오후 10:53:21 1663   [8]
누가 뭐래도 난 행복하다니깐... ★★★★

 

마이크 리 감독은 켄 로치와 함께 영국이 배출한 대표적인 좌파 감독으로 불린다. 그런데 켄 로치 감독의 영화에 직설적인 구호와 행동하는 민중이 때때로, 자주 등장한다면, 같은 좌파 성향의 마이크 리 감독 영화에서 이러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그는 영화 속 인물들의 개성이나 특질을 살려 영국 하층민과 노동계급의 일상을 얘기하고 보수주의의 허상을 까발리는데 주력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피 고 럭키>의 주인공 포피(샐리 호킨스)는 모든 게 즐거운, 마치 판타지 속을 유영하는 만화 속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인물이다. 처음 본 사람에게도 활짝 웃으며 인사를 보내고, 자전거를 도둑맞아도 화내기는커녕 “아직 작별 인사도 못했는데”라고 아쉬워하며 집까지 걸어온다. 그녀는 나름의 계획에 따라 열심히, 웃으며, 행복하게 생활한다. 수업 교재를 만드는 것도 놀이처럼 즐겁게 하고, 방과 후엔 공중돌기, 플라멩코 댄스 배우기, 친구들과 밤새도록 술 마시며 놀기, 토요일엔 운전 연수를 받는다. 스스로는 너무나 행복한 서른의 솔로 포피, 그녀는 대체 왜 이토록 낙천적인 것일까?

 

영화는 어이없게도 또는 잔인하게도 포피가 왜 이토록 낙천적(영화 제목인 Happy-go-lucky의 의미)인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또한 뚜렷한 기승전결 없이, 즉 이야기 없이 포피의 일상을 그저 스케치하듯이 살필 뿐이다. 관객은 포피가 즐겁게 일하고 노는 가운데,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며 포피라는 대책없이 낙관적인 인물의 실체를 그려나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정말이지 포복절도할 웃음을 몇 차례 안겨준다. 특히 플라멩코 댄스를 배우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화들에서 가장 큰 웃음이 터지지만, 포피와 다른 사람들의 관계 자체에서 웃음은 끊임없이 유발된다.

 

그런데, 포피에게 있어서 문제는 스스로는 너무 행복하지만 외부의 시선으로 볼 때, 행복하지 않은 존재로 비춰진다는 것이다. 사람의 삶을 평균적 도표로 만든 후 그 도표에서 어긋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모두 불행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니깐 일반적으로 20대 말에서 30대 초반에는 결혼해야 하고, 또 그 즈음 나이에 아이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고, 30대 말에서 40대 초반이 되면 집도 한 채 있어야 하고, 기타 등등... 이런 것 말이다. 포피의 결혼한 여동생은 행복하다는 포피의 말에 “언니는 행복하지 않아”라고 단정 지어 말한다. 아무리 행복하다고 말해도 동생은 혼자 사는 언니의 삶이 행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가 모든 사람은 자기 관점에서 보면 모두 행복하다는 식의 하나마나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포피의 반대편에 운전 연수를 시켜주는 스콧(에디 마산)이란 인물이 존재한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영국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인물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영국 보수층의 인격을 대변하는 인물 같기도 한 스콧은 행복하냐는 포피의 질문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길거리에 흑인만 지나가도 강도일지 모른다며 문을 걸어 잠그고, 동성애자, 노처녀 등에 대한 온갖 편견에 둘러싸인 사람이 또는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며 허구한 날 불평불만을 터트리는 사람이 행복할 리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해도 그건 아닐 것이다.

 

영화의 긴장감은 포피와 스콧의 대비에서 주로 나온다. 둘의 세계관은 정반대의 세계관이고 서로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관을 늘어놓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조금도 상대의 세계관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결국엔 좁은 차 안에서 격렬하게 부딪치는 둘을 보며, 우리는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닫게 된다. 즉, 좋고 선량한 의도가 꼭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란 사실이다. <준벅>에서 메들린은 처음 만나는 시댁 식구들을 친절하게 대하지만, 시동생은 그 친절을 곡해해 받아들인다. <해피 고 럭키>의 스콧도 매사 상대에게 친절하고 유쾌하게 대하는 포피의 행동을 자신에 대한 호감으로 받아들이지만, 포피에게 남자친구가 있음을 알게 되자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며 화를 낸다. 이건 어쩌면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는 실천은 자신의 주위 세계조차도 변화시키기 힘들다는 냉혹한 지적이다.

 

※ 요즘 영화는 목요일에 개봉한다. 보통 대형 멀티플렉스의 경우 목요일 개봉했다가 첫 주말 성적을 보고는 다음 주 개봉관 수를 조정하다보니 보고 싶은 영화를 첫 주에 보지 못하면 극장에서 보기 힘들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대규모 개봉한 영화를 극장에서 놓쳤다고 안타까운 마음은 들지 않는다. 왜냐면 이후에도 볼 기회는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씨네큐브, 스폰지, 상상마당, 하이퍼택나다 등 독립 예술영화관에서 개봉한 영화들은 흥행과는 관계없이 오래 개봉하기 때문에 첫 주에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없지만, 놓치면 못 보게 될까봐 더 조급해지기도 한다. <해피 고 럭키>가 그런 경우였다. 꼭 보리라 마음먹었지만, 하필 이 영화 개봉할 때 갑자기 일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못 보게 되었고, 막상 보러갈 시간이 되니 서울에선 간판을 내렸더랬다. DVD도 발매되지 않고, 심지어 불법 다운로드 파일로도 돌아다니지 않는다. 그냥 이대로 놓치는 것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2009년 골든글로브에서 샐리 호킨스가 뮤지컬/코미디 부분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광화문 스폰지에서 재개봉되었다.

 

※ 주로 명동 스폰지를 이용하는 데 <해피 고 럭키>를 보기 위해 처음 스폰지 광화문을 가게 되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내부까지 마치 카페 같은 느낌은 참 좋았다. 그런데 상영 시설은 좀 실망이다. 작은 스크린이야 그렇다 치지만, 객석의 기울기가 낮아 그냥 앉아도 앞좌석 의자가 스크린에 걸린다. 다행히 앞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지 만약 앞에 사람이 앉았더라면 스크린의 상당 부분이 가릴 뻔했다. 반면, 이대 안에 있는 아트하우스 모모는 기울기가 너무 높아 좌석이 약간만 옆으로 치우쳐 있어도 화면이 일그러지고 자막이 읽기 힘들 정도가 된다. 이런 거 좀 어떻게 안 되나. 안타깝다.

 


(총 1명 참여)
prettyaid
잘읽었어요^^   
2009-07-01 16:27
powerkwd
잘 읽고 갑니다 ^^   
2009-05-28 23:06
skh31006
아.. 글 정말 잘 쓰십니다 ^^ 위에것도 보고 왔는데   
2009-01-25 16:30
jhee65
지금도 상영 중인가요?   
2009-01-21 10:10
RobertG
음. 여배우 개성있게 생겼네요.   
2009-01-20 21:10
jhee65
글 잘 쓰셨네   
2009-01-20 19:28
sinama0613
볼까 말까 망설였는데... ㅎㅎ 조만간 보러가야겠네요.   
2009-01-20 12:49
spitzbz
정말 최고의 리뷰입니다..
제가 보고 느낀것이 함축되어 모두 담아놓으셨네요..
또한번 영화를 음미하고 지나갑니다
락앤롤~~   
2009-01-2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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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고 럭키(2008, Happy-Go-Lu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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