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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날카로운 현대사회의 해부....... 신의 소녀들
ldk209 2012-12-28 오후 12:35:16 316   [0]

 

여전히 날카로운 현대사회의 해부....... ★★★☆

 

크리스티앙 문주란 이름을 알게 된 건 당연하게도 <4개월, 3주... 그리고 2일>로 인해서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 엄청난 밀도와 사회상을 그려내는 연출 능력에 깜짝 놀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의 두 번째 작품 <신의 소녀들>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전작에 이어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두 명 동시 수상)과 각본상 수상이라는 실적(?)을 올려, 이제는 주목할 만한 감독에서 이미 거장으로 성장한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아무튼, 이야기는 이렇다. 독일에서 일을 한 알리나(크리스티나 플루터)는 고아원에서 같이 자란 수녀가 된 보이치타(코스미나 스트라탄)와 함께 지내기 위해 루마니아로 돌아온다. 수도원에서 지내게 된 알리나는 수도원의 엄격한 규율에 적응하지 못하고 반발하다 급작스런 발작상태에 이르게 된다. 신부와 수녀들은 발작인 악마에 의한 것이라며 알리나를 대상으로 엑소시즘을 행하게 된다.

 

우선 <신의 소녀들>은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음이 뚜렷이 느껴진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어떠한 음악도 사용하지 않으며, 시종일관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와 자연광을 사용한 듯한 일부 화면들이 그러하다. 내용적으로 보면, 개인에게 윤리적 선택에 대한 문제를 던져주고 그 흐름을 느리게 복기하며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리고는 그게 결국 루마니아에 대한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두 영화의 연속성도 묘하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차우셰스크 정권 막바지인 1987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는 2005년에 일어난 실화를 다룬 <신의 소녀들>은 그 25년 후인 2012년에 공개되었는 데, <신의 소녀들>의 주인공들 나이가 25세. 어쩌면 전작에서 낙태의 대상이 된 아이가 정상적으로 태어났다면 바로 이번 작품의 소녀들로 성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무려 150분이라는 엄청난 시간(최근에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긴 시간의 영화이다) 동안 영화는 인물들의 사사로운 행동들을 느리게 담아내며 긴장의 파고를 조금씩 높여간다. 사실 이렇게까지 길게 만들 필요까지 있었을까 싶기는 하다. 단적으로 이 영화에서 문주 감독이 말하려는 바는 무엇일까?

 

첫째, 작게는 루마니아, 크게는 현대사회에서 종교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것이다. 속세(현실)와 괴리되어 자신들만의 성 안에 갇혀 있는 종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교회는 출입구에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 출입금지’를 명시하며 스스로 낙오되는 길을 택하고 있다.

 

둘째, 교회의 비합리성이다. 21세기에 중세 봉건시대에서나 행해질 법한 엑소시즘이 버젓이 신앙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심지어 그게 왜 잘못된 것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자신들의 교리에만 매몰된 광신적 신앙이 불러오는 위기가 영화엔 생생하게 흐른다. 반면, 최소한 자신들이 잘못한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영화 말미에 경찰이 교회에 찾아와 사건의 전말을 물을 때, 신부와 수녀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순화시켜 얘기하며 범죄를 감추려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인데, 영화에서 이러한 모습이 더 이중적이고 가증스럽게 느껴진다.

 

셋째, 그렇다면 종교와 대립하고 있는 속세(주로는 공적기관)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것인가? 그러지 않다는 게 바로 문주 감독의 생각이다. 처음 알리나가 발작으로 병원에 실려 갔을 때, 의사의 반응을 복기해보자. 의사는 나타나 환자를 치료하지 않고 “왜 간호사를 때렸냐”며 환자를 질책한다. 그리고는 별다른 치료방법이 없으니 신부보고 알아서 하라며 종교에 책임을 떠넘긴다. 그러다 결국 사건이 터지자 다른 의사는 왜 병원에 데려오지 않았냐며 이번엔 다른 차원에서 종교에 책임을 넘긴다. 보이치타가 알리나의 서류를 떼기 위해 출입국 관리소에 들렸을 때는 어떠한가? 대화로 유추해 보건데 아마도 이 소녀는 성적 범죄에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소녀들을 구하고 처벌을 해야 할 공적기관은 아무런 해결책을 내 놓지 않고 그저 소녀에게 ‘기소할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조심할 것’만을 강조한다.

 

현실은 차 앞 유리창에 뿌려진 흙탕물처럼 혼탁하고 혼란스러운 데, 종교와 공적 기관 모두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결여된 사회에서 알리나는 갈 곳을 잃고 헤맨다. 이런 암울한 현실이 문주 감독이 바라보는 루마니아 또는 현대 사회의 진실이다.

 

※ 어쩌면 알리나와 보이치타는 한 인격에 내재된 두 개의 자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관계. 동전의 양면. 영화 내내 검은색 수녀복만을 입고 있던 보이치타가 알리나의 옷을 걸쳐 입은 모습은 결국 이 두 개의 자아가 하나로 수렴됐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 전작에 이어 여전히 날카로운 해부지만, 밀도라든가 인상적인 장면에서 전작에 비해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 <신의 소녀들>이라는 제목 때문에 오독될 우려가 있다. 차라리 원제인 <Beyond the Hills>를 그냥 사용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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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소녀들(2012, Beyond the hills / Dupa Dealuri)
배급사 : 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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