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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치 시노부의 신작 '스윙 걸즈'를 보고 스윙걸즈
ottoemezzo 2006-03-02 오후 8:51:09 713   [3]

야구치 시노부의 신작 '스윙걸즈'가 마침내 국내개봉된다. 야구치의 팬인 나로서는 기쁘기 한량없는데 특히 이번 작품은 여러가지로 그의 전작들과는 차이점을 보인달까? 단순히 보고 넘어갈 작품이 아닌것 같아 소감을 나름대로 좀 정리해보고 싶다.

야구치 시노부의 이번 작품은 고등학교 재즈 밴드부 이야기이다. 낙제 여고생 17명이 뭉쳐 만든 재즈 빅밴드가 온갖 어려움을 다 이겨낸 뒤 결국 무대에 오른다는 내용이다.

한적한 일본 시골의 고등학교가 배경인데 아름답고 평온한 시골의 여름풍경과 하얀눈이 내리는 겨울풍경이 관객들에게 압도적인 느낌을 선사하면서 동시에 재즈 빅밴드라는 다소 이질적인 소재가 뒤섞여 독특하다는 인상을 함께 남긴다.

허긴 야구치는 언제나 엉뚱한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 왔기 때문에 '비밀의 화원'에서부터 '아드레날린 드라이브', '워터 보이즈' 등을 이미 본 관객 입장에서는 이번 작품도 그리 범상치는 않을 거라는 걸 짐작하고 있겠지만 그러나 이번 작품은 단순히 엉뚱하다는 것만 가지고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감독의 깊은 생각이 담겨있는 것 같아 좀 긴장된다.

영화는 일단 학원 코미디물 형식이다. 학업을 따라가지 못해 여름 보충수업을 억지로 듣던 낙제 여고생들이 우연히 재즈 밴드를 결성하게 되는데 이후 벌어지는 온갖 소동들이 영화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또 소란스런 가운데서도 일본영화 특유의 담백함이랄까 그런게 잘 살아있어서 참 좋다.

특히 주연을 맡은 우에노 주리는 아주 인상적이다. 한국팬들은 그녀를 이누도 잇신의 '조제...'에서 첨봤었고 그 작품에서 워낙에 말수없고 조용한 캐릭터로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그야말로 잠시도 멈추지 않고 좌충우돌하는 그녀의 코믹연기는 정말로 팬들의 어안을 벙벙케 할 것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이 학원 음악 코미디물은 또 한가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큰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런 류의 영화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사명감에 불타는 교사'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통 이런 류의 영화에는 첨에 사명감에 불타는 교사가 허름한 학교에 부임하고 이어서 학업을 못따라가는 사고뭉치들을 만나게 된다.

사명감에 불타는 교사는 일순 당혹감을 느끼나 이내 맘을 다잡고 이 아이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 나는 이 아이들을 반드시 변화시키겠다. 반드시 바른 길로 인도하고야 말겠다...뭐 이런 다짐을 한뒤 아이들을 끌어모아 피눈물섞인 음악교육을 통해 감동적인 결과를 일구어낸다.

나는 이런 류의 감동적인 학원음악 영화들을 폄하하거나 조롱할 생각은 없다. 다만 현실에서는 그런 선생님이 없다는 것, 그리고 어설프게 그런 흉내를 내려고 애쓰는 선생님이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실제로 '모셔보면' 상당히 피곤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보니 이런 영화들을 보면 좀 씁쓸하다는 거다.

하지만 뭐 영화관에 꼭 현실을 그대로 재현한 '정확한 영화'만을 보러가는건 아니지 않는가. 때론 말도 안되는 엉터리라도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거고 그럼 그런 영화들은 정말로 마르고 닳도록 계속 만들어지게 돼 있는 것이다. 어차피 영화도 상품이고 따라서 관객들이 원하는 쪽으로 만들어질 수 밖에 없으니까.

야구치 시노부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뀐다. 이 영화에는 그런 교사는 안나온다. 다케나카 나오토라는 걸출한 배우가 선생님 역으로 나오지만 학생들에게 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는 첨부터 끝까지 낙제 여고생들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알아서 밴드를 만들고, 알아서 돈모아 악기를 마련하고, 알아서 연습을 하고, 알아서 계속되는 시련들을 극복하고, 마지막엔 알아서 무대에 오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무래도 감독과 관련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야구치 시노부가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들면 야구치는 혹시 학창시절에 모순투성이인 학교현실에 깊은 상처를 받은건 아닐까? 그래서 낙제생을 무시하고 재도약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않는 냉엄한 일본의 교육현실에 대해 일갈하고 싶었던건 아닐까? 아님 '언제나 마음은 태양'의 시드니 포이티에나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선생님 같은 분은 현실엔 없어..라고 소리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에이..그럴 리가 있나. 내가 보기엔 야구치의 목표는 다른데 있다. 내 생각이 맞다면 지금 야구치는 일본 사회 전체를 향해 비수를 겨누고 있다. 90년대 들어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자위대를 군대로 바꾸고 보통국가를 지향하는 국가주도형 우익국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는 오늘의 일본이 야구치의 타깃인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간단하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도쿄가 배경이 아니다. 지방의 한적한 시골이 배경이다. 이런 류의 영화에서 반드시 나오는 리더쉽 강하고 헌신적인 교사도 없다. 더구나 주인공들은 모범생들이 아니고 낙제생들이다. 이들이 무대에 오르는 것도 어떤 상이 걸린 음악대회가 아니고 그냥 음악을 연주하는 지방의 한 음악제 무대이다. 이 정도면 감독이 관객에게 충분히 힌트를 준 셈 아닌가.

한국의 문화평론가 이어령씨는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일본은 거대 일본을 지향하는 순간부터 위험해진다고 말했었다. 작은것 소담한것 아담한 것들을 잘 만드는 일본이 어느순간 방향을 바꿔서 거대함이나 확장을 지향하면 일본은 그때부터 괴물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얼마나 미래를 내다본 지적인가? 지금의 일본을 보면 그야말로 예언에 가까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더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일본의 정신나간 행보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일본내 양심세력의 목소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가 주도하는 거대 일본은 언제나 대재난을 불러왔다. 후지산이 무너져 내리는 것보다 더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내 말이 틀렸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일본은 멈출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이런 순간에 나온 야구치의 이 신작은 도시가 아닌 시골, 남성이 아닌 여성, 성인이 아닌 미성년, 모범생이 아닌 낙제생. 최첨단의 화려한 J팝이 아니라 고풍스런 30년대 스윙재즈, 교사 주도형이 아닌 학생자발 등등 다 열거하기엔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주류에 저항하는 아이콘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니까 야구치의 메세지는 간단하다. 시종일관 순진하게 웃기는 척 하면서 사실은 근대 개항 혹은 메이지 유신이후 지금까지 단한번도 바닥으로부터의 개혁을 경험해보지 못한 국가주도형 일본 혹은 우익 일본의 심장을 향해 '퍽큐~'를 날리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은 퍽큐야, 퍽큐....' 틀림없다.

하지만 이렇게 독특하고 인상적인 작품이지만 한가지 우려되는것이 있다. 이 작품은 너무나 일직선적인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단 한순간도 극적반전이 없으며 단한순간도 이야기가 곁길로 새지 않으며 단한순간도 이야기의 중심에서 벗어나는 캐릭터가 등장하질 않는다. 영화는 마치 작심하고 던지는 메이저 리그 투수의 160킬로짜리 직구 스트라이크처럼 똑바로 앞으로만 달려나간다.

그게 뭐가 문제냐구?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다. 감독이 야구치 시노부이기 때문이다. 야구치 시노부는 일본의 가이 리치 아니던가.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복잡하게 꼬이는 시나리오와 놀라운 극적 반전, 한눈 팔 겨를도 없이 계속 등장하는 인상적인 캐릭터들의 향연이 야구치 표 영화의 전매특허 아니던가

그걸 생각하면 이 작품은 의외로 얌전하다. 재밌긴 한데 좀 호흡이 느린 것 같기도 하고...혹시 야구치도 늙어가는 건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정말로 걱정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계에서는 내리막으로 들어선 감독이 화려하게 재기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나는 야구치가 작품세계의 전환을 모색 중이거나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중이라고 믿고 싶다.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무대에 오른 이 낙제 여고생 밴드는 베니 굿맨 밴드의 'SING SING SING'을 연주한다. 주연 우에노 주리를 비롯해 출연진 전원이 3년동안 연습해 직접 연주한다. Two thumbs up이다. 정말로...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동안 흐르는 냇 킹 콜의 'LOVE'도 좋다. 이 두 곡만으로도 돈값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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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걸즈(2004, Swing Girls / スウィングガ-ルズ)
배급사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수입사 : 레드박스 엔터테인먼트, 데이지엔터테인먼트 / 공식홈페이지 : http://www.swinggirl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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