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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가족 드라마, 그 황무지를 질주하는 세렝게티의 얼룩말 말아톤
vinappa 2005-05-26 오전 1:37:04 1306   [2]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말이겠으나 이 말부터 해야겠다. 이 말을 하지 않고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오래도록 자괴감에 시달릴 것 같아서다. 공룡시대라고 불러도 모자랄 규모와 스펙터클의 대전에 무모하게 뛰어든 <말아톤>이 예상을 뒤엎고 선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진심으로 기뻤다. 경쟁대상이 <공공의 적 2>였기에 더더욱 기뻤다. 그런데도 극장 가기를 서둘지 않았던 이유는 단지 마음이 불편해서였다. 지난 만우절에 올린 <69 식스티나인> 리뷰에서 농담처럼 밝히기를 달리는 것이 징글맞아서 <말아톤>을 보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웃자고 한 얘기 - 아무도 웃지 않았다는 것이 허망하지만 의도는 분명 그랬다. - 였을 뿐 사실은 마음이 불편해서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마음이 불편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초원이나 형진이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과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갇혀사는 세계도 모르고, 그들이 겪는 고통도 모르고, 그들이 이루어낸 성취의 가치도 모른다. 그들이 나에게 영원한 타자인 것처럼 나 또한 그들에게 영원한 타자일뿐이다. 그런데, 그들을 이해하는 척 하는 것도 내꼴스러웠고 그렇다고 해서 타자화시키기도 마땅치 않았다. 오히려 정신장애를 가진 초원/형진을 가학적으로 길러낸 초원엄마/형진엄마의 고통에 공감하기가 수월할 듯 했다. 이것은 분명 체험의 결과다. 그러나, 그것도 완전한 것은 아니다. 육체의 장애만큼 다양한 정신장애, 그 중에서 가족이 겪어야 하는 고통이 유난히 독하다는 자폐 가족의 심정을 내가 어찌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저 내 얄팍한 경험에 기대 그런척 하는 것 뿐이지.

    자폐는 무서운 병이다. 병이 아니라 장애라고 수정해도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왜 무서운고 하니 장애의 당사자보다 가족들이 감당해야할 고통이 더 크기 때문이다. 자폐 아닌 그 어떤 정신과 질환이라고해서 예외일 수 있겠나만 스스로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하는 자폐는 가족에게 끼치는 영향이 남다르다. 알코홀릭의 가족이 제 2, 제 3의 알코홀릭이 될 가능성이 높고, 우울증 환자의 가족이 반쯤은 미쳐서 지낸다고는 하나 그것은 의지의 강약과 애정의 정도에 따라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자폐는 다르다. 자폐는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을 소외시키는 장애다. 대개의 정신과 질환이 이해를 요구하지만 자폐는 이해를 거부한다. 그래서 당사자보다 가족의 삶이 피폐해지는 것이 자폐증이다. 거의 모든 자폐 전문의들이 입을 모아 말하기를 이 영화에서 그려진 자폐는 아주 양호한 또는 우수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엄마나 코치의 말과 행동을 모방하는 수준이라면 사회 생활에도 별반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에는 엄청난 어폐가 숨어 있다. 그들이 다소의 핸디캡을 감수하고라도 사회 생활을 해 나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전제가 따라야 한다. 그 전제는 다름아닌 사회 속 개인들의 용납이다. 그들을 소수자로 분류하고 보편성의 관용으로 끌어 안으려 하는 것은 사회 또는 집단의 의지일지 모르나 집단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들에게 직접적인 차별을 가하는 것은 분명 개인이다. 자신을 평균성이라고 착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갖은 자기 합리화로 의도는 숨기고 노골적인 차별을 서슴치 않는다. 이기적인,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일테다.

    실재 자폐아를 모델로 삼은 영화 <말아톤>은 사회라는 울타리안에서 에고를 담금질하는 개인들을 크게 부각시키지 않는다. 이해하려고도 동정하려고도 하지않는 그들은 현실에서나 영화 속에서나 영원한 이방인일 뿐이다. 할인마트와 지하철에서 벌어진 사건은 자폐가 아닌 그 어떤 정신과 질환 환자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해프닝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건을 진정시키는 일 또한 그리 어렵지 않다. 부언하자면 이 두번의 해프닝은 영화보다는 TV에 어울리는 밋밋한 에피소드일 뿐이다. 이 영화에서 일반인과 초원이의 충돌 또는 오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타인이 아닌 피와 살을 나누었다는 가족과의 문제다. 강박증에 시달리며 신경쇠약직전까지 내몰린 엄마. 초원이의 엄마가 위궤양으로 쓰러진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맞닥뜨린 불행을 감당하지 못하고 지방 근무를 자청한 아버지. 초원이에게 엄마를 빼앗긴 초원이의 동생 중원이. 이들 가족의 화해가 영화가 조작한 감동의 일부라면 미안한 얘기지만 심히 진부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실화를 소재로 삼고 있다. 그래서 감동이 유효하다.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라니 감동받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자폐라는 장애에 대해 생각해보면 초원이는 분명 특별히 양호한 아주 우수한 수준의 환자다. 자기 외의 누구에게도 배려하지 않고, 관심조차 없는 자폐아가 특정 대상에게 경계의 허를 노출시킨다는 점에서 초원이는 분명 특이한 자폐 장애우다. <레인맨>의 레이먼만큼 기깔나는 기억력을 가지고 있고, 백만불짜리 다리까지 가지고 있으니 이 얼마나 엄청난 특혜인가. 그런데, 초원이의 엄마는 평균 이하다. 자폐아의 엄마라는 처지 때문에 무섭도록 가혹해진 또다른 의미의 자폐 장애자다. 아이의 선택을 강요하고, 미끼로 유혹하면서 아이를 힘들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행동장애로 몰고간 몹쓸 엄마다. 직무 유기와 끝없는 희생의 양자택일을 해야할 상황에서 그녀는 두가지의 경우를 모두 포기하고 가혹한 조련사가 되었다. 때때로 그것이 왜곡된 사랑보다 더 위선적이라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녀의 집착은 수긍이 간다. 아들이 자신보다 1년 일찍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 그녀의 말 또한 소름끼치도록 노골적이지만 그 또한 수긍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초원이의 엄마는 한편으로는 용감하고 한편으로는 무모한 인물이다. 미담의 소재가 될법도 한 완벽한 희생대신 아들이 사회가 권장하는 단순노동의 기회 외에 특별한 한가지의 재주를 가지게끔 집요하게 강요한 모진 엄마다. 그 강요의 본질이 숭고한 모성애인지 허망한 보상심리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조건적 희생이라는 강요당한 미덕보다는 강박적인 집착이 더 낳을 수도 있는 일이다.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이 장기적인 노후대책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있지만 맹목적일 수 밖에 없는 모성의 본질을 고려해 보면 그것은 얼마나 불경한 발상이었던가.

    결론적으로 이 영화에 대해 만족을 표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상투적인 휴머니즘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는 척, 그들을 나와 같은 인간으로 끌어안으려는 척 등의 정치적인 제스처가 없다는 점도 만족스럽고, 성공에 대해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는 점도 만족스럽다. 굳이 흠결을 지적하자면 초원 엄마의 감정이 일정한 선을 형성하지 못해 수시로 매듭이 끊겼다는 점, 초원이와 초원 엄마 못지 않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야 할 코치의 역할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한 채 소모적으로 기능했다는 점, 힘차게 출발해서 9부 능선까지 무리없이 달려간 영화가 뒷심을 발휘하지 못해 일차원적 인간승리에 머물고 말았다는 점 정도이겠으나 구구절절 책임을 물을만큼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다. 무리하게 강행된 춘천 마라톤 참가가 완주라는 성취 자체에 머물지 못하고 가족 화해의 수단으로 기능한 것 또한 패착이 분명하나 초원이의 모델인 형진군의 가족이 그리 살고 있다고 하니 현실성 여부를 타진할 필요는 없겠다. 세상에는 분명 무수한 예외들이 존재하니까. 그리고, 그것은 분명 초원이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었던가. 초코파이에 이끌려 산을 오르던 자폐아가 죽도록 달릴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그것을 버린다는 것은 사소하지만 중대한 전환이다. 가볍게 봐서는 않되겠다. 감독은 휴머니즘이 내포하고 있는 감동의 센세이셔널리즘에 휘둘리지 않고 조심스럽고 낮은 목소리로 할 말만 하고 나머지 말은 아낄줄 안다. 그리고, 섣부른 결론도 과장된 후일담도 남발하지 않는다. 다만 사소한 변화들, 작은 진척에 기뻐할 뿐이다. 영화의 전반부 수영장에 빠진 엄마가 사경을 헤매는 것을 단지 엄마가 수영을 하는 것으로 착각한 초원이가 위궤양으로 쓰러진 엄마의 아픔을 공감하는 설정 또한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비가 주룩주룩 내려요." 초원이가 아닌 그 누구도 표현할 수 없는 슬픈 울부짖음. 그 거대한 공명. 육체의 병이, 그리고 정신의 장애가 감정을 충동질하는 연민의 매개가 아니라는 것 만으로도 이 영화의 성과는 충분히 상찬받을만 하다.

2005. 05. 25. 山ZIGI VINA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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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아톤(2005)
제작사 : (주)시네라인-투 / 배급사 : (주)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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