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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22일, CGV왕십리에서 <용서는 없다>의 시사가 있었습니다. 김형준 감독과 5명의 배우 - 설경구, 류승범, 한혜진, 성지루, 남경읍 - 이 무대에 나와 인사를 했습니다. 영화의 제목과 달리, 감독은 “용서와 화해의 2010년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고, 배우들은 2010년의 시작을 알리는 한국영화니까 흥행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영화가 첫 공개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많이 가라앉아 있었어요. 이럴 때 저는 긴장하게 됩니다. 영화가 안 좋을 확률이 높거든요.
 
<용서는 없다>는 <살인의 추억>으로 시작해 <복수는 나의 것>, <유주얼 서스펙트> 같은 영화들을 흉내 내다 <세븐>으로 끝나는 영화입니다. 이것저것 가져다 붙일 건 많고, 할 이야기는 태산인데, 결과는 아쉬운 그런 영화라는 말입니다.
 
<용서는 없다>의 시작 5분에서 영화의 만듦새는 바로 들통 납니다. 이유 없이 흔들흔들 어지러운 카메라, 어색한 줌, 엑스트라의 딱딱한 연기로 구성된 도입부는 본 영화가 남의 영화를 대충 카피한 기성품임을 스스로 밝히고 있어요. 시체를 보고 깜짝 놀랄 게 빤한 상황인데, 과다한 액션으로 경악하는 표정을 짓는 두 엑스트라를 보노라면 김이 팍 새버립니다. 그게 영화 내내 계속되고요.
 
그런데 영화는 뜬금없이 새만금, 4대강 개발에 관한 이야기로 번져갈 조짐을 보여요. 권력층이 어쩌네, 하는 이야기도 하죠. 그래서 설령 영화를 좀 못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런 주제라면 좋게 볼 마음을 품었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다리를 뻗는답니다. 거창한 주제는 다 사라지고, <용서는 없다>는 개인의 복수극으로 끝나고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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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에게 국한된 이야기라면 봐줄 수 있어요. 하지만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의 차원으로 강등시키고, 개인의 복수극으로 대충 마감하려는 자세를, 영화는 가지면 안 되는 겁니다. 아주 나쁜 해결방식이니까요. 스포일러 때문에 까발리진 못하겠으나, 여성과 여성의 신체를 묘사하거나 말하는 방식 중에서도 불쾌한 부분이 많습니다. 꼭 정치적으로 올바른 잣대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그렇습니다. 급기야 어처구니없이 삽입된 섹스신까지 보게 되면 '맙소사'라는 말이 절로 나와요.
 
<용서는 없다>는 전체적으로 안 좋은 작품일 뿐만 아니라, 세부 묘사가 엉성하고 이야기 전개에 너무 많은 허점이 드러나는 영화입니다. <용서는 없다>는 스릴러나 추리극이 아니라 그냥 드라마입니다. 그런데도 온 천지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걸 찾을 수 있는 영화죠.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주인공은 수상한 인물이 들어 있는 사진을 발견합니다. 당연히 그는 그 사람을 찾아야합니다. 어떻게 찾을까요? 주인공은 차를 몰고 갑니다. 길옆의 파출소를 보게 됩니다. 안으로 들어갑니다. 팩스로 어디론가 사진을 보냅니다. 아래위를 제대로 넣지 못하자 옆에 있던 경찰이 도우러 옵니다. 그리고 사진을 보며 말해줍니다. “어 이 사람 내가 아는 사람인데, 어디어디 살아요.”라고요. 주인공은 그 인물을 바로 찾습니다. <용서는 없다>의 전체 구성이 이렇다고 보면 됩니다.
 
감독은 흡사 “나는 저지르고 다닐 테니, 당신들은 믿고 따라오면서 보세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여요. 관객이 초딩인가요?
 
<용서는 없다>는 2010년에 첫 개봉하는 한국영화입니다. 원래 12월에 개봉하려다 막강한 적수들을 피하느라 시기를 바꾼 모양입니다만, 이 영화는 스케줄대로 선보였어야 했어요. 그랬다면 연초부터 찬물을 끼얹는 일은 없겠지요.
(2010년 1월 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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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uti

익스트림무비 편집위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고 싶은 이상한 사람임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