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적인 열정으로 시작된 소노 시온의 작은 실험
집단 자살을 소재로 해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영화 <자살 클럽>은 소노 시온을 독보적인 컬트 감독의 자리에 올려 놓았다. 신주쿠 역 철로 앞에 삼삼오오 손을 잡고 늘어 선 54명의 여고생들이 달려 오는 전철을 향해 뛰어들고, 순식간에 온 스크린이 피투성이 살점들로 뒤범벅되는 충격의 오프닝씬은, 컬트 영화 매니아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영화들은 형이상학적 코드와 화려하고 탐미적인 영상, 그리고 엽기적이기까지 한 하드 고어의 요소를 버무려 그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형식으로 일본 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자살 클럽>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직후, 이것과는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들자고 작정하고 만든 영화가 바로 <헤저드>이다. <청춘☆금속 배트>의 쿠마키리 카즈요시가 써온 각본에서 단 세 줄, 주인공이 미국에서의 일을 회상하는 부분에서 영감을 받은 소노 시온은 무작정 뉴욕으로 건너 가 영화를 찍을 장소를 구하며 전혀 새로운 영화의 내용을 구상해 나간다. 뉴욕에서의 무리한 일정으로 프로듀서도 중도하차 해버린 이 작품은 그래서 더욱 실험적이고 열정적인, 소노 시온만의 기세로 가득 찬 청춘 영화로 탄생했다.
공허한 젊음을 질주하는 청춘의 몸부림!
충동적인 계기에서 출발하고,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그 안에는 일본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날카롭게 파헤치던 소노 시온 특유의 시선이 담겨 있기도 하다. 지루한 일본, 그런데 잠이 오지 않는다고 읊조리는 신은 대학 생활을 비롯해 자신의 주변 그 어디에서도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다. 활주로를 미끄러져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는 비행기의 이미지가 머리 속에 가득해, 언제나 날아 오르는 것만을 생각한다. 결국 이것은 규격화되고 정체된 일본 사회를 향한 비판인 동시에, 그것에 몸으로 부딪혀 나가는 청춘의 이미지로 그 활로를 찾고자 하는 소노 시온만의 역동적인 해법이다. 삶의 희망을 찾고자 하는 세 주인공의 극단적인 몸부림은, 오다기리 죠를 비롯한 세 젊은 육체를 통해 스크린 위에 자유자재로 펼쳐진다. <미드나잇 카우보이>나 <택시 드라이버> 처럼, 오래되고 황폐한 느낌의 어두운 뉴욕 거리를 나타내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대로, <헤저드>의 뉴욕은 더럽고 낙서투성이의 거친 이미지이다. 핸드헬드 카메라를 이용한 원씬, 원컷의 촬영과 다큐멘터리적 터치는 이러한 거친 뉴욕의 거리와 그 안에서 방황하는 청춘을 효과적으로 잡아 내고 있다.
판타지를 거쳐 현실로 돌아오다
일본으로 돌아와 시부야 역에 도착한 신. 이제껏 한번도 보지 못했던 낯선 거리인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의 얼굴에는 묘한 생기가 흐른다. 소노 시온은 이‘돌아옴’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다. 뉴욕에서 방황했던 신의 일탈적인 행동이 일종의 판타지라면, 영화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의 현실이라도 치열하게 부딪혀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소노 시온이 그의 영화에 일관 되게 담고자 했던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이며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감각을 녹여 내었다.
SION SONO + JOE ODAGIRI
이 영화는 소노 시온과 오다기리 죠가 만났다는 점에서도 큰 화제를 낳은 작품이다. 기괴하고 자극적인 작품으로 언제나 센세이셔널한 화제를 몰고 오는 소노 시온과 배우 오다기리 죠의 만남은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상업적 목적을 완전히 버리고 다시 충동적 본능에 의지해 영화를 찍고 싶어하던 4년 전의 소노 시온, 배우로서의 무엇도 보증되지 않았던 시절의 오다기리 죠. 그들이 만나 만들어 낸 영화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청춘의 화석과도 같은 영화라고 할 것이다.
연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오다기리 죠는 이 영화를 몇 번이고 돌려 본다고 한다. 그것은 배우 오다기리 죠의 원류, 라고 할 무언가가 이 작품에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에게서 나오는, 다듬어지지 않은 청춘의 열정을 소노 시온은 그대로 스크린 위에 투사한다. 도도로키 유키오(자유기고가)가 이 영화를‘심플한 액션 페인팅 영화’라고 지적했듯, <헤저드>는 오다기리 죠를 비롯한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움직임, 다큐멘터리적 기법으로 그들을 자유롭게 담는 카메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즉흥적으로 구성해 나간 소노 시온의 멋진 합작품이다. 위험한 곳에 스스로 몸을 내던져 삶의 감각을 되찾고자 발버둥치는 청춘. 치기 어리지만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한 시기의 에너지가 서로의 존재를 의지한 채 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소노 시온과 오다기리 죠는 그 후, 영화 <꿈 속으로>(05)와 드라마 <시효경찰>(06)을 통해 다시 만난다. <헤저드>를 통해 처음 만났을 당시 소노 시온은 오다기리 죠라는 배우가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이제 그는 일본 영화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소노 시온 역시 독특한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한 감독으로 인정 받고 있다. 그들의 청춘이 한번 매듭 지어진 영화 <헤저드>를 되새기며 그들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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