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에서의 호평은 결코 호들갑스런 상찬이 아니었더랬다. 충분히 수긍할 만한 것들이었다. 조잡한 '애들 영화'라는 뿌리 깊은 인식과 거대 괴수가 도시를 초토화시키는 할리우드의 쑥대밭 영화 정도로 헤아리고 있는 괴물영화를 이토록 멋지게 스크린에 출몰시켰다는 사실은, 분명 흥분할 만한 일이다.
한강에 괴물이 나타났다는 발상과 그에 맞서 한 가족이 사투를 벌인다는 이야기는 낯설고 기이하게 다가온다. 제대로 된 괴물영화를 마주한 적 없는 한국영화의 열악한 풍토 탓이지만, 알고 보면 할리우드에서 장르적으로 충분히 소비된 익숙한 내용이다. 얼마 전 개봉한 <우주전쟁>과 그 얼개는 다를 바 없다. 하나, 괜히 봉 감독이겠는가? 장르의 이점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그 토대를 허물며 또 다른 지점으로 뻗어나가는 영민한 연출가로서의 빼어난 솜씨가 당 영화에서도 사정없이 발휘된다. 할리우드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괴물'영화에 방점이 찍힌 게 아니라 '봉준호 감독'의 괴물영화라는 사실이다.
가진 것 없는 한 가족의 고단한 시련을 담은 드라마로, 오금을 저리게 하는 공포영화로, 시대의 공기를 품은 정치적 텍스트로, 팽팽한 긴장감이 곧추 세워진 스릴러로, 비극과 희극이 공존하는 서글픈 코미디로, 보는 이에 따라 <괴물>은 그 성격을 달리한다. 당대의 흐름을 간파하며 직시하는 '작지만 예리한 눈의 소유자인 봉 감독'의 세심한 세공술이 곰비임비 쌓인 결과다.
이 모든 영화적 쾌감들이 한 영화에 녹아나 있기에 순수한 오락영화로서의 기능 역시 가능한 것이다. 할리우드에 비하면 껌 값에 불과한 예산으로 돌연변이 괴물의 움직임을 너무도 자연스럽고 생동감 있게 구현한 점은 풍부한 함의를 담고 있는 이야기와 동반상승을 일으키며 오늘 한국영화의 기술적 최대치를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사이즈다'라는 심히 에로적 캐치플레이를 내걸고, 궁극의 지랄을 보여준 '고질라' 때깔 그 이상이다. 천 오백 마리 대 한 마리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 된 괴물다운 면모다.
특히, 취미인양 다리 밑에서 철골 물을 벗 삼아 텀블링하는 녀석의 재주넘기와 덩치 값 못하고 가파른 언덕에서 나자빠지는 포악하지만 귀여운 혹은 어리보기 한 모습은 압권이다. 종래의 할리우드에서는 구경할 수 없던 봉준호 만의 괴물 이미지다. 괴물한테 죽임을 당한 딸의 영정이 놓여 있는 지극히 한국적 정서로 그득한 합동분향소의 장면 역시 봉 감독 특유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씬임과 동시에 설득당할 수밖에 없는 배우들의 앙상블이 정점에 이르는 순간이다. 연쇄살인이라는 참혹한 현장 속에서 우스꽝스런 인간 군상의 모습을 이끌어낸 <살인의 추억> 초반, 논두렁 시퀀스와 포개지는 장면이다. 지금까지 그 후유증이 지속되고 있는 '잘살아보세'!'의 근대화 프로젝트가 초래한 한국사회의 환부를 유머러스하게 펼쳐내는 그만의 화법 또한 <괴물> 곳곳에서 목도된다. 한강의 기적이 한강에 괴물을 잉태한 셈이다. 웃기면서도 참 부조리하다.
<플란다스의 개> 아파트, <살인의 추억> 농촌에 이어 <괴물>의 배경으로 묘파된 한강의 모습도 관심이 쏠린다. 생활밀착적 공간을 생판 처음 맞닥뜨리는 불길한 장소로 변모시키는 그의 신통한 재주는 한강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단, <살인의 추억>에서는 접할 수 없던, 뜬금없이 출현하는 인물들의 등장과 상황은 다소 엉뚱하게 와 닿을 수 있다. B급적 감수성이 묻어난 장면들이 적잖이 있다는 말이다. 이는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바와 어긋나기에 영화몰입에 방해될 여지가 분명 있긴 하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보면 초면이 아니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마주했던 아파트 지하에 기거하는 노숙자와 옥상에서 떼 지어 열광했던 캐릭터들의 변주다. 어쩔 수 없이 <괴물>은 전작 두 편과 포개지는 측면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역으로, 이는 봉준호 감독이 능청을 부릴 만한, 상당한 내공을 지닌 감독으로서의, 여유가 생겼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일상과 소시민을 전면에 내세우며 한국적 정서로 드리워진 영화 만들기에 전념해온 봉준호 감독의 전작과 <괴물>은 늘 '시대의 침묵'을 일관되게 말해왔고 제기했다. 하나, 과도한 엄숙함과 정치적 색깔만큼은 질색이라고 공공연히 밝혔듯, 장르와 유머를 조화롭게 뒤섞으며 대중의 입맛을 결코 뒷전에 두지 않는 영민한 노동을 그는 펼쳐왔다. 때문에, 해외 유수의 언론이 '컬트적 인기'를 누릴 것이라 언급했던 부분은 동의하기 힘들다. 수천 억 원의 떼돈 제작비가 이제 관례가 된 그들에게는 고작 100억에 육박하는 한국의 <괴물>이 컬트적 정서를 지닌 수작으로 다가올는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괴물>은 불특정 다수가 맘껏 즐길 수 있는 독창적이고 흥미진진한 오락영화인 셈이다.
덧붙여...
미국 애들이 뭐만 했다하면 선착순 1위로 냅다 뛰어 가 달라붙는 한국정부의 찌질이 외교로 인해 한미 FTA 협정이 체결됐고 그에 따라 스크린쿼터 축소가 드디어 시행됐음이다.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앞썰했듯, 국가의 졸렬한 권력과 미국의 야욕이 합작해 빚어낸 생명체이자 돌연변이다. 알고 보면 이 녀석! 불쌍시러운 놈이다. 부모 잘못 만난 죄로 그렇게 욕보며 사는 거다. 작금의 상황이 딱 이 짝이다. 미국의 패권주의 팽창의 도구로 복무하는 FTA 체결과 쿼터 축소가 이내 '괴물'스런 끔찍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음을 <괴물>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거다. 한일 간의 독도문제가 현실화 돼 뜨거운 이슈로 부상한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 못지않게 시기적으로 더 없이 지리멸렬한 현실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영화가 바로 <괴물>이다. 그래서 상업영화 이상의 가치가 <괴물>에게 부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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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5일 수요일 | 글: 서대원 기자
사진: 권영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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