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루(ゆれる) : 흔들리다. 동요하다.
흔들리는 다리가 있다. 그곳에 있는 한 남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이 남자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저 아래 물 속.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저편 숲 속에서 그를 보고 있었을지도 모를 또 다른 남자. 그들은 형제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꿈에서 출발했다고 하는 <유레루>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살인 사건에 관한 미스터리도, 이어서 진행되는 법정 드라마도 아니다. 닮아있는 동양적 사고 때문인지 우리에게도 낯설지만은 않은 형제 관계–부모에게 순종하며 가업을 이어온 조금 소심해 보이는 듯한 장남과 자유분방하게 자기 길을 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 제멋대로인 차남-가 기반에 깔린 이 드라마는, 서로 너무 다르지만 형제라는 끈으로 묶일 수 밖에 없는 이들을 살인 사건이라는 장치를 계기로 극단의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이들에게 번지는 파장을 섬세하고도 담담한 관찰로 담아낸다.
사람에게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 영화는 심지어 일어난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그것조차 그대로 제시해주지 않는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온화해보였던 형 미노루(카가와 테루유키)는 피해 의식과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하고 어딘가 불안정해 보였던 동생 타케루(오다기리 죠)는 오히려 가장 정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대한 판단 기준 역시 주관적이고 유동적이다. 영화는 판단의 단서가 될만한 것들을 여기저기 흘려 놓을 뿐. 영화 속 타케루가 찍는 사진들처럼 그 안에 있는 정지된 현실은 때론 단서가 되고 때론 추억이 되기도 하지만 모든 것들은 표면적 사실만이 존재할 뿐 내면의 진실은 어느 한 순간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카메라는 낮은 시점에서 타케루의 일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빨래를 개고 있는 미노루의 뒷모습, 빨래 널기에 집착해버린 아버지 등 세밀하고도 침착한 관찰자의 시선을 대변한다. 감독이 보여주는 섬세한 시선, 인물에 대한 담담하고도 소소한 묘사, 그리고 복합적인 역할을 인상적으로 연기한 카가와 테루유키, 거기에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자기 몫을 해내고 있는 오다기리 죠는 영화의 훌륭한 안착점이 된다. 중반의 흐름을 짐작하게 하는 약간의 평면적 흐름과 군데군데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쉽긴 하지만 결말-특히 마지막 장면-의 처리와 이어서 흐르는 엔딩곡은 <유레루>라는 영화의 새로운 미덕을 발견하게 해 준다. 낯익은 듯 하면서도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접근법. 고정되지 않은 모든 것을 고정된 시선으로 잡아내는, 진실과 기억, 관계 그리고 영화 안팎에서 가능성이 보이는 새로운 시선이 바로 그것이다. | | - | 오다기리 죠의 얼굴만이 아니라 연기가 보고 싶은 분 | | - | 대조적인 성격의 형제 관계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분. |
| | | | - | 한여름 ‘살인 사건’이라고 하면 미스터리나 스릴러만 떠올리는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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