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애런 베이츠의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것입니다. <마이 파더>의 시작을 알리는 이 자막은 영화의 뿌리가 애런 베이츠란 한국계 입양아임을 명확히 드러내며 동시에 그 뿌리의 성장 방향이 재구성이란 점을 밝힌다. 결국 <마이 파더>는 엔딩 크레딧에 첨부된 다큐멘터리로도 확인되는 영화적 뿌리, 즉 실화라는 사실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가, 그리고 영화란 매체가 지닌 허구적 연출을 대변한 재구성이 어떤 방식으로 실화와 거리를 두고 있는가에 관심이 생긴다.
<마이 파더>가 지니고 있는 혐의는 재현의 방식이 사실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벌리는지, 그것이 어떤 감정을 매개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에 있다. <마이 파더>에서 눈 여겨 볼 것은 영화의 관점이 누구를 대상으로 이야기하고 싶어하는가의 욕망이다. 애런 베이츠의 영화적 대역이라 말할 수 있는 제임스 베커(다니엘 헤니)는 <마이 파더>의 분수령이 되는 인물이다. 영화는 그의 감정 변화를 유심히 관찰하지만 그것이 극적인 감정의 주체가 되는 걸 막는다. 이런 입장의 위치는 실화에 허구적 살을 바른 <마이 파더>가 짊어져야 할 어떤 혐의에 대한 면죄부가 될만한 사안이다.
<마이 파더>는 허구적 연출을 최대한 자제하고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이는 제임스 베커 혹은 공은철을 주시하는 카메라의 시선이 극적인 포장보단 실사적 재현에 무게를 두며 어떤 사실에 대한 전달을 꾀하는 의도로 활용되고 있음을 뜻한다. 제임스 베커와 공은철의 사이에 놓인 어떤 민감한 사안, 즉 입양이란 현실적 사안이 2개의 이름을 지녀야 하는 인물의 배경으로 와 닿게 될 때, 혐의에 알리바이를 입증해야 할 영화적 소재, 즉 실화의 도덕적 위치는 사적인 의도에서 공적인 주제 의식으로 변모한다. 공은철이 아버지를 바라보는 태도 –영화를 봐야만 알 수 있는 그 어떤 이질적 심정까지 포함한-에서 읽히는 건 단지 아버지를 찾고자 했던 개인적 욕망보다도 더 큰 것이 와 닿는다. 자신의 근본에 대한 본질적 그리움과 그를 낳게 한 입양이란 근본적인 사안에 대한 진중한 주제 의식이 영화적 감정을 형성한다.
배우의 이미지에 맞춘 캐릭터로 소비되는 느낌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던 다니엘 헤니의 연기는 그런 감정의 형성에 한몫을 거둔다. 국적의 정체성을 방황하는 입양아의 심리적 갈등을 통한 영화의 주제 의식이 구체화되는 건 표면적으로도 적당하지만 그를 감정의 발현으로 잘 끌어간 배우의 열연 덕분이기도 하다. 그의 어설픈 한국어 발음이 와 닿는 건 인물의 진심이 투영된 덕분이다. 또한 그와 대비되는 지점에서 극적 감정을 연출하는 김영철의 연기도 전체적인 이야기에 무게감을 형성한다. 또한 신요섭 역의 김인권을 비롯한 몇몇의 조연들은 감초 같은 웃음을 적절히 끼워 넣는다.
다만 공은철의 아버지 황남철(김영철)의 허구적인 에피소드는 <마이 파더>가 실화에 감정적인 개입을 도모했단 혐의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전반적으로 영화가 인물에 대한 미화를 통해 실화에서 재고될 도덕성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는 범인에 대한 진실을 은폐하지 않으며 인물에 대한 도덕적 관점 또한 진실에서 멀리 나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사건에 덧씌워져야 할 부정에 다가서기 위해 영화가 연출한 허구는 그것의 의도와 무관하게 인물에 대한 동정으로 뻗어가며 이는 동시에 허구적 목적 이상의 현실에 대한 동정으로 발효될만한 여지가 있다. 이는 영화 속 허구와 영화 밖 진실 사이의 이성적 판단과 감정적 감상의 분기점을 판단할 관객의 몫으로 생각된다.
<마이 파더>는 극단적인 울림으로 과장하지 않으며 담담한 시선을 유지한다. 그 덕분에 사적인 인생사를 미화하지 않으며 공적인 문제를 환기시킨다. 역사적 상황에서 비롯된 어떤 문제들, 세밀하게는 해외 입양아들에 대한 사유적 개입을, 개괄적으론 한국이란 영토에서 벌어지는 지정학적인 알력의 관계-미국 혹은 미군과의 동반된 역사-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게 한다. 이를 좀 더 확대 해석하자면 이 땅에서 야기되는 정체성의 혼란이다. 한 민족이란 우월주의는 과연 민족주의적 성과인지 혹은 폐단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혈연의 개념이 아닌 어떤 종속의 개념에서, 관계적 약속의 개념이 아닌 진심의 수긍이란 개념에서 <마이 파더>가 묘사하는 가족상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어째서 이 땅의 아이들은 해마다 해외로 수출되고 있는가, 이는 한민족의 긍지 아래로 드리운 대한민국의 딜레마가 아닐까.
2007년 8월 31일 금요일 | 글: 민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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