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라고 하면 거의 가리는 것이 없는, 말 그대로 잡식성이라고 할 수 있는 편이지만 왠일인지 뮤지컬 영화 만큼은 그다지 재미있는 줄을 모르겠더군요.
배우들이 중간에 대사를 하다 말고 갑자기 춤을 추고 노래하는 것이 저에게는 너무 비현실적이고, 그래서 몰입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이 뭥미...' 하게 만드는 뮤지컬 특유의 씨퀀스들이 저는 정말 싫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주로 디즈니가 뮤지컬로 작품을 내놓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유명한 인기작들이 저에게는 모두 흥미롭지가 않더군요. 그리하여 차라리 무대 위에서 공연되는 진짜 뮤지컬이라면 모를까, 뮤지컬 형식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은 내겐 영 아니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하게 되었죠. 급기야 '제가 뮤지컬 영화에 알레르기가 있어서'라는 표현을 거의 관용구처럼 사용하곤 했었는데 그러던 와중에도 예외가 되었던 작품이 하나 있었습니다.
호주 출신인 바즈 루어만 감독의 2001년작 <물랑 루즈>가 바로 저의 오랜 '뮤지컬 영화 알레르기'를 처음으로 잠재워주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영화가 너무 좋아서 3일만에 다시 극장을 찾았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미 본 영화를 두번 보는 경우가 1년에 한번이라도 있을까 말까인데 제가 뮤지컬 영화를 보고 두번이나 극장을 찾게 되다니, 저 스스로 생각해도 참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OST 앨범까지 사서 참 많이도 들었습니다. 이제 나도 뮤지컬 영화를 즐길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헤드윅>(2001)도 제가 100% 즐길 수 있었던 뮤지컬 영화였습니다. 이 작품은 원래 98년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이었는데 원작자인 존 카메론 미첼이 직접 감독과 주연을 맡아 영화화하기에 이른 히트작이죠. 애니메이션 씨퀀스로 만들어진 The Oringin of Love나 Wicked Little Town과 같은 곡들은 지금도 즐겨듣는 편인데 막상 국내 무대에 올려진 뮤지컬 공연은 한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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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정말 재미있게 보았던 최근작까지 하나 더 소개하겠습니다. 줄리 테이머 감독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2007)입니다. 새롭게 편곡되어 불려지는 비틀즈의 곡들이 70년대 초반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반전 메시지와 맞물리면서 제 입맛에 착착 달라붙더군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뛰어난 작품성과 완성도에 비해 국내 상영기간이 너무 짧아 아쉬움을 주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DVD와 블루레이로 출시된 작품이니 기회가 되시는 분은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완전한 뮤지컬 영화의 팬이 된 것은 아닙니다. 위의 세 작품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봐왔던 많은 뮤지컬 영화들 가운데 저 자신이 굉장히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일부에 불과합니다. <시카고>(2002), <드림걸즈>(2003), <헤어스프레이>(2007) 등이 모두 춤과 노래 참 잘하고 영화도 잘 만든 건 알겠지만 나는 그리 좋은 줄 모르겠다는 영화들이었고, 특히 팀 버튼 감독과 조니 뎁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스위니 토드 : 어느 잔혹한 이발사의 이야기>(2007)는 다시 한번 '나는 정녕 뮤지컬 영화들과는 좋은 인연을 맺을 수가 없는 것일까'라는 심각한 고민에 빠뜨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케이블 TV에서 <물랑 루즈>를 방영해주는 것을 잠시 시청한 일이 있었는데요, 이완 맥그리거와 니콜 키드먼의 춤과 노래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초반의 오두방정을 떠는 몇몇 장면들은 처음 극장에서 보았던 몇 년 전에 비해 이제는 다소 유치해보이긴 했지만 영화 속에서 불려지는 노래는 지금도 변함없이 제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죠. 이 경험은 그때까지 제가 뮤지컬 영화에 대해 갖고 있었던 수수께끼를 마침내 풀 수 있게 해줬습니다. 뮤지컬 영화는 줄거리 보다 음악 취향에 따라 좌우되는 장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결국 특정한 뮤지컬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그 영화 안에서 불리워지는 음악에 대한 호불호에 따라 결정된다는 겁니다. 제가 좋았던 뮤지컬 영화는 그 음악이 좋았던 것이고 그다지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작품은 그 음악이 제 취향에 맞지 않았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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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뮤지컬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비결이란 다른 영화들을 보기 전에 갖게 되는 기대, 즉 내러티브나 배우들의 연기가 구현해내는 사실성 보다는 그 작품에 담겨진 음악을 최우선적으로 즐기고자 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이것은 결국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그다지 좋아라 하지도 않는 음악들이 주로 나오는 뮤지컬 영화는 왠만해선 재미있게 보기가 어렵다는 얘기도 됩니다. 하지만 좋은 음악 레퍼토리를 갖춘 작품인데도 뮤지컬 영화에 적합하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다가 춤과 노래를 전혀 즐기지 못하게 되고, 그리하여 작품 전체를 실망스럽게 받아들이는 안타까운 경우는 최소한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영화를 통해 전에 몰랐거나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음악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기회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아바의 음악으로 만든 그 유명한 뮤지컬이 드디어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된다는 소식입니다. 극장에서 <맘마 미아!>(2008)의 예고편을 여러번 봤는데 출연진이 참 화려하더군요. 메릴 스트립을 필두로 피어스 브로스넌, 콜린 퍼스, 스텔란 스카스가드가 '아빠 후보들'로 출연하고 결혼을 앞둔 딸로는 <퀸카로 살아남는 법>(2004)과 <나인 라이브즈>(2005)에 출연했던 왕눈이 아만다 세이프리드입니다. 어떤 분들은 <맘마 미아!>의 개봉을 학수고대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고 또 어떤 분들은 그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예고편만으로도 이미 고개를 돌려버리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우리가 일반적으로 영화를 고르고 보는 잣대에서는 그다지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편은 못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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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고르는 일이야 각자의 선택이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이제 보게 될 영화가 뮤지컬이라면 뮤지컬 영화를 보는 좀 더 나은 된 방법을 따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맘마 미아!>도 현실적으로 저게 말이 되냐 안되냐를 따지기 보다는 배우들의 춤과 노래에 우선적으로 집중해서 즐기는 수 있도록 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음악을 즐기다 보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됩니다. 뮤지컬이란 본래 단순한 내러티브와 뻔한 엔딩을 목표로 달리는 장르입니다. 단순한 골격을 세워놓고 그 안을 음악으로 채워넣은 장르랄까요. 심지어 내용을 다 알고도 보고 또 보곤 하지 않습니까. 뮤지컬 <맘마 미아!>가 전세계적으로 크게 인기를 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소재나 줄거리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다름아닌 아바의 음악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영화 <맘마 미아!>의 경우도 기본적으로 아바의 음악을 들으러 간다고 생각하시면 최소한 실망스러운 경험으로 남을 일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영화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작품이 하나 있는데, 퀸의 음악으로 만들었다는 뮤지컬 <위 윌 락 유>입니다. 아바의 음악으로 만든 뮤지컬 <맘마 미아!>가 대성공을 거두자 따라쟁이들처럼 만든 또 하나의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죠. 뮤지컬을 좋아하는 지인은 2년 전에 이미 런던에 가서 보고 왔고 OST도 갖고 있더군요. 최근엔 국내에서도 공연을 하던데 좀 기다리지 않고... 물론 오리지널 팀의 공연을 본다는 의미는 있겠지만요. 아무튼 이 작품도 스토리는 전혀 기대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퀸의 음악은 듣고 싶습니다. 퀸의 음악이 새롭게 연주되는 광경을 보다보면 내용도 따라가게 될테니까요. 뮤지컬은 공연 예술 자체의 아우라가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얘기입니다만, 뮤지컬 영화란 설령 다 아는 줄거리라 할지라도 그 음악 때문에 여전히 즐거울 수 있는 장르입니다.
글_신어지 (엑스캔버스 홈씨어터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