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이라는 참혹한 현실에 대한 반작용으로 환상이라는 도피처를 택한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2006)와 일정 부분 맥락을 같이 하는 영화는, 마약에 쩔어사는 히피 부모를 둔 질라이자 로즈(조델 퍼랜드)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영화다. 로즈는 여느 또래아이들과 같은 평범한 아이가 아니다. 로즈에겐 정서적 유대를 교감할 상대인 친구 하나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이라곤 로즈 하나였지만 생전에 딸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다 마약 과다투여로 부모 두 사람은 모두 불귀의 객이 되고, 로즈는 홀로 남겨진다.
하나 로즈는 부모가 살아있을 때부터 혼자 놀기의 대가. 정서적 교류를 나눌 인격체가 가정과 주위 이웃에 전혀 없었기에 로즈는 머리만 달랑 남은 바비인형에게 애착을 갖고 이들 무생물과 정서적 유대감을 공고화함으로 상상력을 키워왔다. 로즈는 죽은 아버지를 잠든 걸로 상상하고 썩어가는 시신에 가발을 씌우고 땅콩잼을 입 안에 넣어준다. 아버지의 죽음마저 현실로 받아들인다면 천애고아라는 비참한 정체성이 부여되기에 이를 부정하는 시퀀스이다. 로즈의 주위에 배치된 사물들은 을씨년스러운 들판과 허물어져가는 폐가와 폐차들로, 하나같이 활기찬 생명력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로즈의 황량하고 쓸쓸한 정서를 반영하기에 그렇다. 로즈와 정서적 유대를 공유할 수 있는 상대는 중반부 이후 나타난다. 디킨스(브랜든 플레처) 역시 정서적 유대를 공유 가능한 상대가 없었기에 로즈와는 연령대를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인간 본성에 관해 가장 잘 아는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는 작가 미치 컬린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는, ‘비참한’ 나라의 앨리스가 빚어내는 현실극복형 투사기제로서의 판타지 천국이다. 조실부모한 로즈가 감내해야 할 현실의 짐은 무겁기만 하다.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필요한 도움은 어떻게 받아야 할까, 당장 끼니 걱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등 해서 말이다. 로즈는 이러한 어려움을 판타지의 초월성으로 극복코자 한다. 로즈가 추구하는 판타지는 머리만 남은 바비인형과의 의인화를 통한 대화, 디킨스와 꿈꾸는 바다 판타지와 부부애의 구현 등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판타지가 현실과 만나게 될 때 판타지는 괴롭고 비참한 현실이 괴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현실의 아픔을 꽁꽁 묶어놓는 매력을 지닌다. 판타지를 통해 현실을 투과할 때면 아버지의 죽음이나 배고픔, 외로움 따위의 괴로운 현실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하나 영화는 거기까지가 마지노선이고 그 이상의, 상상력의 진척을 구축해내지 못한다. 현실을 초극하려는 몸부림 이상의, 로즈에게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판타지로 구축되지 못한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성적 판타즘이 미성년자인 로즈의 주위에서 구축된다는 점이다. 이는 델과 디킨스를 통해 두 번 정도 개별적인 시퀀스로 표현된다. 무엇보다 죽은 자에게조차 편한 안식을 허용하지 않는 델과 디킨스의 행보로 인해, 영화는 로즈의 판타지라는 단순한 축으로만 구축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심리적 붕괴가 로즈 안에서 일어난다는 파국 이전에, 영화는 나름대로의 해피엔딩을 맺는다. 그리고 로즈의 행복한 결말은 열린 결말에 속하며, 로즈에게 행복을 제시하게끔 만들어주는 간접적인 원인 제공자는 디킨스임을 알게 된다.
2009년 2월 6일 금요일 | 글_박정환 객원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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