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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인간에게 엄습하는 분열의 공포
엑스페리먼트 | 2002년 3월 23일 토요일 | 박우진 이메일

웬만한 충격에는 꿈쩍 않을 만큼 단련된, 혹은 무딘 심장을 가졌노라 자부했음에도 이 영화를 관람하는 건 일종의 고문이었다. 공포 영화 대대로 물려오는 유혈 낭자한 고어 장치나 쇼크 요법 없이도 두 시간 내내 심장을 뒤척이게 만들었던 영화, [엑스페리먼트].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감상은 '충격적'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그들이 떠올리는 '충격'이란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일을 겪은 '놀람'과는 구별된다. 세상, 즉 정상적인 인간 사회와는 격리된 환경 속에서 간수와 죄수로 나누어져 각각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초기 설정에서부터 우리는 영화의 단계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가 있다. 피실험자들의 심리 변화는 이미 실험자들이 제공한 루트를 따라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무도한 실험에서 경험하는 '충격'은 인간 심리 조작의 명백한 가능성에서 연유한다.

인간은 각각 개별적인 정체성을 지닌 '주체적 개인'으로 사고하지만, 개인이 모여 집단을 형성하게 되면 의식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자아를 획득하게 된다.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보편적(사회 구성원이 공유한다는 점에서) 사상과 역할은 개인의 정체성을 교란시키고 통제하며, 때로는 지배한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은 그들에게 침투되는 이 외부적 압력을 아예 외부의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거나(즉, 발원지가 내부에 자리한다고 착각하거나), 사회를 다지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엑스페리먼트]는 인간에게 부여되는 집단적 페르소나가 자리잡는 과정과, 그것이 개인의 정체성과 섞여 파생되는 혼합적인 인간 심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간수로 선출(?)된 사람들은 간수복을 입는 동시에, 감옥의 안정을 유지하는 역할을-암암리에-부여받는다. 그들이 갖고 있는 '간수'에 대한 강박관념은 사회의 주된 틀을 형성하고 다듬는 권력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그들이 보여주는 폭력적이고 왜곡된 형태의 지배는 인간의 무의식을 억압해 온 사회적 금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금기를 넘나드는 방종한(?) 인간을 처단하는 역할은 이미 암묵적으로 고정되어 있고, 따라서 '간수' 역의 피실험자들의 모습은 다소 전형적이다.

그들의 굴절된 광기가 공포로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이제까지 개인에서 명확히 분리하지 않았던 집단적 페르소나의 실체를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닌 위험을 감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엑스페리먼트]에서 느껴지는 가장 섬뜩한 감정은, 스크린 속에 대입해 보는 '나'에서 기인한다. 즉, '나는 저런 상황에서'라는 가정이 탈출구를 뚫지 못하고 영화 속을 맴돌 때 비로소 자신을 구성하는-그러나 간과해 왔던- 나이면서 내가 아닌 어떤 실체에 맞닥뜨리게 되고, 그 막막하고 생경한 느낌이 공포로 전이되는 것이다.

1971년 실제 행해졌던 실험을 토대로 복원된 [엑스페리먼트]. 이 영화의 생생한 자극은 마음을 깨뜨리고 호흡을 조이는, 불쾌한 경험일 수도 있다. 누가 뭐라 떠들어도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과 선한 천성을 믿고 싶은 순수한 영혼과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영화.

5 )
ejin4rang
분열의 공포 무섭다   
2008-10-16 16:18
volra
재밌다!!   
2008-03-31 00:03
rudesunny
너무 너무 기대됩니다.   
2008-01-21 18:21
theone777
재밌었던   
2007-09-17 01:38
kangwondo77
리뷰 잘 봤어요..좋은 글 감사해요..   
2007-04-2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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