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저마다 소소하게나마 자신의 육체 안에 오롯이 몇 가지의 추억 정도는 담고 있다. 유년시절 동네친구와 롤라장에 가 이성친구를 꼬시려고 쌩쇼를 했던 자그마한 추억에서부터 그 쌩쇼를 통해 만나 인생을 평생 같이 할 동반자로 골인하는 결혼식과 같은 큼지막한 기억까지. 하지만 이 같은 추억의 되새김은 개인이라는 틀 안에 종속되어 있기에,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 꺼냈다 뺐다 할 수 있으며 때로는 변형도 가능한 그것으로 존재한다. 그렇지만 자신의 품을 멀찌감치 떠난 거시적 기억들은, 그 거리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기에 함부로 잘라 내거나 포개면서 재단할 수 없다.
그러기에,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듯, 많은 이들은 굳이 시대의 공기 안에서 유령처럼 부유하며 때에 따라 소환됐다가 다시금 탁류에 휩쓸려 흘러가도록 방치하는 사회적 이슈의 추억들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게다가, 정겹고 흥겨운 일이 아니라 몸서리칠 만큼 떠올리기 싫은 그 무엇이라면 그건 추억이 아니라 악몽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봉준호 감독은, 기존의 형사물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이 연쇄극에 접근하며 공을 들인다. 영화안의 시간이야 사건의 추이를 중심으로 흐르지만 정작 <살인의 추억>은 그보다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과 인물의 풍경을 묘사하는 데 놀라울 정도로 세심한 배려를 쏟아 붓는다. 보이지 않는 범인을 잡아야만 하는 절박함에 놓인 토박이 형사 박두만(송강호)과 서울에서 파견 나온 서태윤(김상경)의 피말리는 내면을 영화는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동물적인 즉감으로 수사를 탐문하는 두만과 논리적인 서류의 정황에 따라 과학 수사를 펼치는 어울리지 않는 두 사내는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지면서 서로를 닮아간다.
난제로 흘러 버린 범인의 행각을 쫓고자 점쟁이를 찾아가거나 엽서 한 장을 거머쥐기 위해 잿빛 자욱한 난지도를 찾아가는 그들의 수사 과정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처연하다. 그러한 배경에는 어두운 시간으로 충만한 시대가 꼿꼿이 거대한 벽처럼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오만한 벽이 이들을 옥죄기에 태윤의 냉철한 이성은 서서히 광기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고 그 정 많고 능청스러운 두만은 열패감에 휩싸인 무력자로 전락해 가는 것이다. 그네들 말마따나 레드 컴플렉스에 미쳐버린 나라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전 병력을 다 소진하고, 그 사이 농촌의 여인네는 참담한 비명에 소리 없이 죽음을 당해야만 했던 시대가 바로 그 당시였다.
결국, 우리가 <살인의 추억>을 접하며 추억하게 되는 것은 살인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면에 가린, 그것이 가능하게끔 방조한 광포한 시대와 그 안에 유폐돼 점점 쇠락해가는 두 형사의 처절함 그리고 부조리한 시대의 희생자로 내몰린 피해자들의 피맺힌 흐느낌이다.
여기까지만 보자면 영화는 둔중한 주제로만 무장한 작품 같다. 하지만 <살인의 추억>이 몇 번씩 보고 싶을 만큼 수작이라는 사실은, 이러한 소재와 주제를 송강호를 필두로 한 맛깔스런 웃음의 정서와 함께 기가막히도록 조합을 잘해 일구어 놓았다는 점이다. 극의 팽팽한 긴장감과 치밀어 오르는 분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은 채 말이다.
한 농촌의 한가로운 황금빛 들녘에 내던져진 싸늘한 주검을 마주 대할 때 엄습되는 기이한 충돌감이 지속적으로 교차되는 <살인의 추억>은, 분명 당신의 사지를 절박하게 조였다 유쾌하게 풀어줄 것이다. 기억과 추억을 모조리 잡아먹는 시간의 포악성에 굴하지 않고 끈끈한 우정을 맺은 친구의 그것처럼 오래 동안 가슴 한켠에 명징하게 남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