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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동안 정지된 카메라는 마치 자화상같이 포커스된 그녀의 얼굴을 세심하게 어루만진다. 그녀의 여왕 같은 몸가짐과 금욕적인 표정에선 인내하는 사람 특유의 위엄과 결의가 나타난다. 아니, 형용할 수 없는 독특한 호소력과 강인함이 발산된다. 그 짧은 시간, 귓가에는 텐션이 상당히 높게 잡혀 있는 릴라 다운스의 ‘Benediction And Dream'이 울려 퍼지면서 굵은 전율 하나가 마음을 온통 뒤흔든다. 우는 듯 절규하는 선율 속에 마치 그녀의 영혼이 만져질 듯 다가선다. ‘그녀의 눈빛엔 왠지 모를 관능과 어두운 아이러니가 뒤섞여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어림도 없지, 아직은 아니야!’라는 질책을 하듯 갑자기 ‘쌩’하는 경쾌한 몸놀림과 함께 젊은 그녀가 튀어나온다.
과거의 그녀를 보여주기 위해, 영화 <프리다>가 취하고 있는 이 인상적인 ‘플래시 백’은 줄리 테이머 감독의 재치가 돋보이는 장면 중 하나다. 이런 재치가 여기서 멈춰버리냐구? 아니, 절대, 절대로 아니다. 작년 베니스 영화제 개막작이며, 올해 오스카 작곡상과 분장상을 수상한 <프리다>는 우리에겐 다소 생소하지만 멕시코의 유명한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를 다루고 있다.
1907년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태어난 그녀는 일곱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를 절긴 했지만, 최고 명문이었던 국립예비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의사를 꿈꾸던 소녀였다. 하지만 열여덟 살 때 타고 가던 버스가 전차가 충돌하면서 척추와 오른쪽 다리, 또 무엇보다 파괴된 기둥이 왼쪽 옆구리를 거쳐 질 부분을 관통하면서 끔찍하게 다친다. 이 사고의 후유증으로 그녀는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된 것은 물론, 일생동안 35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 프리다는 사고 직후 지루하고 힘겨운 회복 기간 동안, 어머니가 병원 천장에 설치해준 거울을 보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그녀의 열정을 진정으로 자극하고 북돋운 계기는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 이미 멕시코의 유명한 민중벽화작가였던 21살의 연상 디에고는 그녀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작품 활동을 독려해 준 멋진 스승이자 연인이었지만, 두 번의 이혼 경력에다 나중엔 프리다의 여동생까지 탐할 만큼 숱한 여성 편력으로 유명했다. 거기에 공산당 입당과 탈당의 반복, 미국생활에의 환멸, 트로츠키와의 염문과 세 번의 유산으로 만신창이가 된 프리다의 불안정한 정신상태 등이 맞물리며, 그들은 수차례의 별거와 재결합을 거치며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을 보냈다. 그로 인해 프리다의 삶 속엔 다양한 색채가 펼쳐졌다. 때로는 눈부시게 밝은 색이었고, 때로는 슬픔에 잠긴 어두운 색이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살을 파고들 듯한 생동감이 넘쳤다.
이렇게 숨가쁘게 흘러간 프리다의 일생을 물론 영화 <프리다>가 모두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헤이든 헤레라의 평전을 원작으로, 감독의 위트넘치는 해석과 연출력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화가로서의 프리다보다는 개인으로서의 내밀한 프리다의 모습에 보다 많은 장면을 할애했다. 특히 <프리다>는 관습을 뛰어넘는 행동과 독특한 관계로 사랑이란 불확실한 모험 속에 자신의 전 존재를 바친 묘한 커플-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이 펼치는 파괴와 탄생, 환희와 절망이 교차하는 흥미진진한 멜로 영화다. 그들 연인은 여러모로 다르면서도 서로 닮았다. 절박한 사랑으로 묶여있는 연인들이 대개 그렇듯, 둘은 서로의 차이 속에서 더 강한 밀착감을 느끼는 동시에, 거울을 보듯 명징하게 대비되는 서로의 음화에서 영혼의 깊은 우물을 발견했다. 비슷한 하중을 지닌 영혼의 격정성에 자신도 모르게 끌리는 그런 원시적인 밀착성과 정신적 함몰은 때때로 폭력의 색깔을 띠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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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디에고와 이혼 후 작품 <짧은 머리의 자화상>이 탄생할 때의 상황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장면은 프리다의 사고 장면과 더불어 가장 탁월한 이미지의 파노라마를 선사한다. 디에고에 대한 복수로 머리를 자르는 프리다, 그녀의 잘린 머리채는 살해된 동물처럼 방바닥을 뒤덮고, 자신의 여성성을 제거해 버린 프리다는 반항적이고 고독하며 섬뜩한 기운에 둘러싸여 있다. 그것은 그녀의 다른 작품들의 이미지에서 나타나는 핏방울과 핏자국만큼이나 섬뜩하다.
초기에는 남편의 명성에 가려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지만, 개인적인 고통의 경험을 자양분으로 상처를 받을수록 작품 속에 더욱 굳건한 세계관을 구축했던 그녀는 남편의 후광 없이 자신만의 힘으로 뉴욕과 파리에서 성공적인 전시를 치러냈다. 이러한 부분이 영화에서 드러나진 않지만, 영화의 첫 장면은 이런 전시회들과 무관하지 않다. 1953년 4월, 그녀는 고국 멕시코에서 첫 개인전을 열게 되는데, 병세가 매우 악화돼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가 참석하리라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침대에 자신을 고정시킨 채 전시실을 찾았던 것. 그녀의 험난한 인생을 모두 대리 경험한 뒤 전시실로 향하는 마지막 장면이 되면 관객들의 느낌은 무척 남다르다. 영화 <프리다>의 수미쌍관 구조는 그러한 효과를 유발하기 위해 정교하게 고안된 장치다.
“웃음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다. 웃음을 터뜨리는 것, 자기를 내던지고 가벼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힘이다. 비극처럼 우스꽝스러운 것도 없다.”라고 말하며 상처를 농담으로, 고통을 익살로 달랠 줄 알았던 여자, 프리다 칼로. 그녀를 전혀 몰랐다면, 혹은 그녀를 대강 밖에 몰랐던 관객이라면, 지금 <프리다>의 내면의 방을 노크해 볼 것. 그녀는 흔쾌히 그녀의 삶을, 작품을 우리에게 눈물보다 슬픈 웃음으로 보여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