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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아래> 기자간담회, 비탈리 만스키 감독 “북한, 부모도 도시도 거짓된 나라”
2016년 4월 27일 수요일 | 이지혜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지혜 기자]
<태양 아래> 언론시사회가 26일(화) 왕십리 CGV에서 열렸다. 이날 시사회에는 감독 비탈리 만스키가 참석했다.

<태양 아래>는 국민의 삶조차 거짓으로 꾸며내는 북한 당국을 고발한 작품. 영화를 연출한 비탈리 만스키는 러시아의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아트독페스트’ 영화제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가 소련연방국가였을 때 태어난 비탈리 만스키 감독은 공산주의 사회와 자유의 개념을 탐구해 왔다. 쿠바에서 촬영한 <머덜랜드 오어 데스>(2011)는 감독의 사상이 집약된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에는 2008년 달라이라마 14세의 하루를 담은 다큐멘터리 <선라이즈 선셋>으로 이름을 알렸다.

<태양 아래>는 4월 27일 개봉한다. 아래는 비탈리 만스키 감독과의 일문일답이다.

첫 인사
<태양 아래> 개봉 차 한국을 방문하게 되어 기쁘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태양 아래>는 남북한 민족의 재앙을 이야기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비록 영화에서 명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진 않지만 <태양 아래>를 통해 내가 느낀 안타까움을 관객들이 공유하길 바란다.

작품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난 소련에서 태어났다. 공산주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공산주의는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렇기에 북한에서 영화를 촬영한 것 같다.

<태양 아래>는 ‘진미’라는 소녀와 그 가족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북한 사회의 위선을 폭로하는 작품이다. 진미와 가족들의 신변이 위험할 것 같다. 감독으로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했나?
그저 진미가 건강하고 무탈하게 지내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또한 영화를 촬영할 때 진미나 그녀의 부모가 북한 당국이 시키는 대로만 행동했길 바란다. 불행히도 내게는 진미와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다. 어쩌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태양 아래>에 보내는 관심이 진미와 그 가족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남한의 많은 언론이 영화에 관심을 갖는 것도 이들을 보호하는 데 기여할 거라 믿는다.

북한의 어린 아이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봤을 텐데 이들을 바라보며 무엇을 느꼈나?
나도 한때 소년단에 가입해 행군에 참여하거나 레닌에 대한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소련 통치기가 끝난 건 나에게 그야말로 행운이다. 그렇기에 북한 어린아이들의 삶이 무척 슬프게 와 닿았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에 살지 않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태양 아래>를 촬영했다. 북한에서 반인륜적인 범죄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알도록 만드는 게 이 영화의 목표다.

혹자는 북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의식을 바꾸어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거란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북한에서 1년 간 머무른 사람으로서 북한 주민들의 인식이 자발적으로 변할 수 있으리라고 보나?
예술가로서 이런 질문에 답하기가 어렵다. 정치적인 편견이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북한 주민들의 삶을 전쟁처럼 폭력적인 수단으로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는 건 확신한다. 북한 주민들은 전 세계가 자신들을 폭력으로 굴복시키려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들의 삶을 바꾸려면 수 십 년을 들여서, 천천히 체제와 시스템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아마 두 세대에 걸쳐 서서히 인식이 변화하겠지. 예컨대 소련에서는 60년 전에 스탈린이 사망했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스탈린을 그리워한다. 스탈린은 여전히 사람들의 머릿속에 살아 있는 거다. 아마 북한 주민들 역시 그럴 것이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국제 사회로부터 고립을 자처한 마당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비단 북한 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자국의 좋은 모습만을 뽑아서 홍보하는 경우가 있다. 북한 역시 그러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질문의 의도는 이해한다. 나 역시 손님을 초대하면 손님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집을 청소하니까. 하지만 북한이 하는 행동을 홍보라는 명목으로 합리화 해서는 안 된다. 북한은 사람을 죽이고 괴롭히는 일이 자행되는 감옥으로 사람들을 꼬드기고 있다. 감옥을 마치 휴양지나 5성급 호텔인 양 속이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본모습을 왜곡하고 있다. 이건 한국이 관광객의 방문을 유도하기 위해 홍보 영상을 제작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일이다. 북한에서는 지금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촬영을 하기 위해 북한 당국을 어떻게 설득했나?
북한은 러시아, 중국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나는 러시아의 감독이잖나. 이 점이 내 신원을 증명해줬다. 그들에게는 내가 러시아에서 입지가 있는 감독이고 푸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적이 있다는 정보만 제공됐다. 북한에는 내 페이스북 페이지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 같다. 만일 그 페이지를 봤다면 절대로 날 초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의 폐쇄성 덕분에 내가 영화를 촬영할 수 있었던 셈이다.

1년 동안 북한에 머물렀다고 들었다. 실제 촬영 분량은 어느 정도였나? 필름을 매번 검열했을 텐데 어떻게 해외로 필름을 갖고 나올 수 있었나?
우린 다행히 촬영분의 100%를 가지고 나올 수 있었다. 촬영 첫날 북한 당국은, 우리가 매일매일 촬영분을 제출해야 하며 당국이 허락하지 않은 부분은 다 폐기될 것이라 말해줬다. 그래서 촬영이 끝난 직후 모든 촬영분의 복사본을 비밀 리에 만들었다. 제출본은 촬영분의 약 70%를 삭제한 것이었다. 놀랍게도 북한 당국은 이런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눈치 챘다면 우리를 막았겠지.

북한에 체류하며 가장 놀랐던 점은 무엇인가?
북한에는 인간적인 반응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촬영분을 검열 받아야 했다면 상당히 위험했을 것 같은데.
그랬다. 우리는 24시간 내내 북한 당국에 걸릴까봐 두려움에 떨었다. 몰래 촬영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면 촬영분을 뺏기는 것은 물론 제작진 전체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우리가 한 것보다 더 미약한 죄로 10년, 15년 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 있다. 난 평생을 북한 감옥에서 살고 싶진 않다.

통제된 상황 때문에 정말로 담아내고 싶었던 장면을 촬영하지 못했을 것 같다. 영화에 담지 못해 아쉬운 장면이 있다면?
내가 찍고 싶었던 것은 하나도 찍지 못했다. 모든 장면을 북한 당국의 통제 하에 촬영해야만 했다. 촬영하면서 이렇게까지 통제를 받아 본 건 처음이다. 오직 호텔 창문 밖 풍경과 마지막 장면에서 진미가 우는 장면만 통제 없이 찍을 수 있었다. 처음에 내가 의도했던 대로 촬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다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평양의 모습이 모두 다 연출된 것이며 이것이 북한의 진상이란 걸 깨달았다. 모든 게 거짓된 북한을 영화로써 전달하고자 했다.

끝인사
현재 <태양 아래>는 세계 각국에서 성공리에 상영되고 있다. 500석 이상의 극장을 사람들이 꽉 채우고도 모자라 구석에 서서 영화를 보는 모습도 봤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상영되는 건 내게 있어 무척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오늘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한국의 수많은 영화관들이 이 영화에 관심 갖지 않고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태양 아래>의 상영시간을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으로 배치하는 식으로. 영화의 상업성만을 생각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부끄러워 해야 하지 않을까.

2016년 4월 27일 수요일 | 글_이지혜 기자 (wisdom@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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