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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안내! 영화는 달아나도 현실은 제자리다.
안경 | 2007년 11월 30일 금요일 | 민용준 기자 이메일


어딘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안경>의 그곳은 마치 시계바늘이 잠시 한눈을 판 것마냥 정적이 지배하는 땅만 같다. 세속적인 물욕도 구체적인 의지도 넘실거리는 파도의 부서짐처럼 공허할 따름이다. 대신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 아래 시원한 빙수 한 그릇이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여유의 포만감이 가득하다.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곳을 찾아왔다는 타에코(고바야시 사토미)는 세속의 분주한 일상에 싫증을 느낀 현대인, 그 중에서도 도시인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그런 그녀에게조차 사색을 재능이라고 표현하는 그 이상한 땅의 원주민들은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대상들이다.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메르시 체조로 시간을 공유하고 심상치 않은 미소를 지닌 사쿠라(모타이 마사코) 씨가 만든 빙수를 남녀노소 가리지 않으며 항상 사색에 빠져있다. 사람들이 몰려들까 봐 큰 간판을 달지 않는다는 민박집 주인 유지(미츠이시 켄)는 나태함을 넘어 기괴하기까지 하다. 그 와중에 ‘귀여운 남자 없는 세상에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속마음을 심드렁하게 드러내기도 하고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생물 선생 하루나(이치카와 미카코)는 타에코와 그 이상한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처럼 보인다.

<카모메 식당>의 나른한 기운과 안온한 심정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듯한 <안경>은 느림의 미학을 영화 속에 전시하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느슨한 의욕처럼 보인다. 푸른 바다와 투명한 백사장을 배경으로 한 <안경>은 원광으로 잡아낸 정지된 풍경의 숏을 가로지르거나 서서히 다가서는 인물들의 동선을 한발자국 물러서서 바라보곤 한다. 마치 풍경화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물들의 동선은 분주해질수록 무력해 보이며 의욕적일수록 불순해질 것만 같다. 그 반면, 푸짐하고 맛깔스럽게 차려진 밥상 앞에서의 국소적인 동작은 의욕적이며 동시에 인위적인 동작보다도 자연의 흔들림이 더욱 생동감을 부여한다.

<안경>은 너그러운 자연의 풍광과 함께 스며드는 삶의 여유 속으로 짙게 배어드는 인간적 감수성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그 나른함에 자연스럽게 동화되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풍성한 자연과 대비되며 나열된 한적한 삶의 동선들은 마치 사물화되는 것처럼 무의미한 흐름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단순히 먹고 마시는 순간의 활기는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관망하는 순간을 위한 충족감처럼 그려질 뿐이다. 이는 삶이 무언가를 찾아가기보다 기다리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는 오해를 낳으며 삶의 무력감을 여유로 위장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현실에서 버거운 삶의 책무에 시달리는 이들이라면 <안경>의 여유로운 삶의 풍경에 도취될만하다. 슬로우 템포의 찰나적 여유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도시의 각박함 속에서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안경>의 대지는 마치 비현실의 상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편해지려면 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타에코의 삶이 부럽지만 이 끈질긴 소유의 집착에서 해방될 수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우리에게 <안경>은 위안이기보다 영화적 위화감의 상으로서의 거리감을 부여하는 것만 같다. 마치 벗어 던지고 싶어도 무언가를 보기 위해 써야만 하는 안경처럼, 삶은 그렇게 내팽개치고 싶어도 끈질기게 발목을 잡는 법이다. 결국 우리는 영화를 통해 일시적으로나마 도피할 수 밖에 없다. 그 짧은 꿈 뒤에 찾아오는 것은 상영관 밖의 딜레마일지라도.

2007년 11월 30일 금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정말이지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 곳에 가고 싶다.
-살이 꽉 찬 바닷가재, 육질 좋은 바베큐, 시원한 빙수, 그리고 맥주 한잔. 시원하다. 크~~~!
-사색하기 좋다. 모든 일상의 번뇌는 여유속으로 침전한다.
-인터넷은 무슨, 핸드폰도 안 터진다. 3일도 못 버틸지도 몰라.
-사색해야만 한다. 고로 사색하는 재능없는 당신이라면 통증없는 고문이다.
18 )
gaeddorai
정말 너무 좋아하는 영화.
귀농의 마음가짐을 갖게해주었다   
2009-02-16 21:30
callyoungsin
대중적으로 인기끌진 못할것같네요   
2008-05-09 16:13
kyikyiyi
예술영화처럼 보이네요   
2008-05-08 10:46
rudesunny
기대됩니다.   
2008-01-14 13:33
ewann
좋아요   
2008-01-11 13:03
gt0110
음...   
2008-01-06 02:23
kki1110
웅~~ 공감~   
2007-12-28 18:01
lee su in
일본 영화는 여전히 대중적 감성보다는 매니아적 취향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2007-12-09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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