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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삶에 대한 천진한 예찬
그녀에게 | 2003년 4월 14일 월요일 | 박우진 이메일

“오늘 공연을 보고 있는데, 옆에 있는 남자가 눈물을 흘렸어요. 당신을 위해서 포스터에 싸인을 받아 왔죠.” 그러나 눈을 감은 그녀는 입을 떼지 않는다. 표정 없이 누운 그녀. 한 남자의 애틋한 마음만 벽을 치고 방 안 공기를 울린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신작 <그녀에게>.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감독도 이제 나이가 들었구나, 싶다. 다듬어지지 않은 욕망이 불쑥불쑥 날것으로 튀어나오던 그의 전작들에 비하면 <그녀에게>의 숨소리는 너무나 고르고 차분하다. 식물인간이 된 여자들, 알리샤와 리디아는 말이 없고 그녀들을 돌보는 남자들, 베니그노와 마르코의 목소리는 나직하다. 불면 날아갈까, 쥐면 깨질까 세상에서 이보다 더 소중한 존재는 없다는 듯이 손길 하나 하나가 조심스럽다.

“어리석은 짓이오. 듣지도 못할 텐데...” 그녀에게 말을 하라, 는 베니그노의 충고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던 마르코는 남몰래 그녀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그는 미처 듣지 못한 리디아의 진심이 마음에 걸려 미안하고 그립다. 강렬한 태양 아래서 힘찬 몸짓으로 투우장을 누비던 그녀의 육체가 온종일 그의 곁에 다소곳이 누워있는데도 그는 그녀가 자꾸 그립다.

사랑에 빠지면 혼잣말이 많아진다. 길을 걷고 누군가를 만나고 책을 읽다가, 일과를 마치고 불을 끈 후 잠자리에 누워서도 문득 문득 그에게 말을 거는 내가 느껴진다. 이런 일이 있었어, 이런 생각이 들었지... 모두 건네지는 못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숱한 언어와 감정이 차곡차곡 마음에 고여 간다. 그 물결이 출렁거릴 때 사랑에 빠진 가슴은 풍요로워지고 비로소 살아 있다. 베니그노는 바로 이런 사랑을 겉으로 보여준다. 그는 사랑을 혼자 간직하지 말고 자꾸만 말하라고 가르친다. 그리하여 남자들이 꺼내 놓는 소소한 독백은 쌓이고 쌓여 마침내 진심으로 관객의 가슴을 두드린다.

알리샤를 대하는 베니그노의 태도는 성스럽다. 그는 거의 예술가이거나 성자처럼 보이며 남성의 육체에 여성적 자아를 지닌 양성적 존재다. 그가 오랜 시간에 걸쳐 아름답고 섬세한 여성성을 알리샤의 굳은 육체에 불어넣자 그녀는 잉태를 하고 깨어난다. 이 지점에서 베니그노가 알리샤를 강간했는지의 여부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그러나 알리샤가 잉태를 하게 되는 과정은 은유적으로 처리되어 선뜻 현실적 잣대를 들이댈 수 없게 한다. 그 모호함은 신성하고 무엇보다 천진하고 귀하고 따뜻한 베니그노의 캐릭터는 천박한 인간성을 뛰어넘는다. 어머니와 알리샤, 두 여성에게 생애를 바치고 세상 사람들의 핍박 속에서 속세를 떠나는 그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희생하는 성스러운 존재처럼 비춰진다.

감독은 마치 천진한 소년처럼 여성성을 예찬한다. 알리샤의 부드러운 굴곡, 그 유연한 자태가 빚어내는 섬세한 몸짓을, 리디아의 태양빛 피부, 그 윤기 있는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찬 카리스마를 동시에 우러러본다. 그녀들은 알모도바르 특유의 열정적인 색채가 넘치고 리듬감 있는 역동적인 화면을 통해 심장 박동을 얻는다. 아름다운 것, 추억과 마주치면 눈물을 흘리는 마르코 역시 여성성을 얻어 더욱 매력적인 캐릭터로 태어났다. 여성성은 눈물을 차단 당한 남성들에게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을 터주며 생명력을 부여한다.

영화를 열고 닫는 무용극 ‘까페 뮐러’와 ‘마주르카 포고’, 영화 속 영화인 독특한 상상력의 <애인이 줄었어요>가 <그녀에게>를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브라질 음악가 카에타노 벨로소가 최선을 다해 불러주는 ‘쿠쿠루쿠쿠 팔로마’에는 그의 이마에 새겨지는 여러 개의 굵은 주름만큼이나 세월이 배어있어 애잔한 감동을 준다.

이 영화는 완벽한 소통의 불가능성에 이르러서도 좌절하지 않는다. 두 쌍의 남녀들 중 각각 한 명씩이 죽은 후, 남은 남자와 살아난 여자를 다시 만나게 하며 희망을 내비친다. 공연장에서의 끝 장면은 처음과 맞물리며 순환되지만, 그 자체로 또 다른 시작이다. 설사 아무런 반응도 보여줄 수 없는 식물인간에게 하는 독백일 지라도 그것이 진심이라면 대화가 아니겠느냐고, 그 노력이 계속되는 한 삶은 신성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느냐고 속삭이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감독의 연륜과 여유가 있다.

2 )
ejin4rang
내용이 괜찮네요   
2008-10-16 14:49
js7keien
사랑을 가장한 편집증일까? 아님 애절한 사랑일까?
영화 내내 남성중심의 시각이 느껴짐은 왜일까?   
2006-10-0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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