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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부산국제영화제
리뷰 ‘그녀에게’ | 2002년 11월 23일 토요일 | 부산 = 구교선 이메일

성스러운 그녀들에게 바치는 대화

현대무용 '카페 뮬러' 가 공연되고 있는 한 소극장. 나란히 앉아있는 두 남자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그리고 곧이어 한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옆의 남자를 그런 그를 바라본다. 울고 있는 남자는 작가 마르코, 그를 바라보는 남자는 남자간호사 베니그노이다. 그리고 그들은 곧 교통사고를 당한 뒤 식물인간이 된 무용수 알리샤를 돌보고 있는 베니그노의 병원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나이 어린 연인 안젤라와 이별하고 슬픔에 시달리다가 새로운 사랑에 빠진 마르코의 연인인 여성투우사 리디아가 투우경기 중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된 것. 시체와 다름없는 상태로 누워있는 두 여성을 사랑하는 두 남자의 감정의 공유는 이렇게 해서 시작된다.

스페인의 대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는 기묘하게 뒤틀린 사랑의 감정을 통해 여성에 대한 찬미적인 시각과 믿음이 있다면 언어가 없어도 가능한 소통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남자를 통해 이야기를 시작한 알마도바르 감독은 리디아와 마르코의 관계, 베니그노와 알리샤의 관계, 그리고 마르코와 알리샤의 관계로 나누어가며 하나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베니그노와 마르코가 사랑하는 여자들은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손끝 하나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 두 여성이 식물인간이 되기 전에는 댄서로서, 투우사로써 누구보다도 그들의 신체를 격정적으로 움직이며 아름다움을 뿜어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삶의 생기를 잃은 후에도 그녀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마르코의 회상 속에서 리디아에게 투우복을 입히는 과정은 하나의 의식처럼, 식물인간 상태의 알리샤의 몸은 살아있는 그것보다 더 치명적으로 매혹적이어서 두 남성은 물론 관객들마저 숨죽이게 한다. 그러나, 리디아가 옛애인과 재결합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마르코가 리디아에게 얘기하는 것을 포기하자, 그의 믿음이 사라진 얼마 후 리디아는 죽음에 이른다. 반면, 알리샤와 대화하는 것만이 인생의 낙인 베니그노는 알리샤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에 더욱더 깊이 빠지게 된다.

"뜨거운 열정은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네."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대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서글픈 존 빔의 노래처럼 알리샤에 대한 베니그노의 사랑은 그를 죽음으로 이끈다. 잘못된 약을 마시고 몸이 줄어든 후에 사랑을 이루기 위해 사랑하는 여인의 성기 속으로 들어간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무성영화 <애인이 줄었어요> 는 알리샤에 대한 베니그노의 억눌린 욕망, 그리고 그가 마침내 알리샤와 사랑을 나누었음을(사람들은 그것을 강간이라며 경악한다.) 암시한다. 결국 알리샤의 임신이 밝혀지면서 그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베니그노를 감옥으로 보내지만, 관객들과 마르코는 그의 행동이 변태적인 광기라고 규정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을 갖게 된다.

<그녀에게>를 위해 알모도바르가 창조한 인물들은 어느 때보다도 확고한 정서를 지니고 있다. 헤어진 연인과 감동적인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한다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는 마르코는 눈물의 남자이다. 감정이 동요되는 순간에 언제나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4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알리샤에게 말을 건네는 베니그노는 대화의 힘을 믿고 그런 그의 믿음은 결국 현실이 된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여성투우사가 되었지만 원하는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리디아는 외로움으로 가득하다. 누구도 의지할 수 없는 투우장에서 그런 그녀의 고독과 외로움은 더욱 극적으로 나타난다. 식물인간이 된 상태로 4년을 보내고, 베니그노의 아이를 사산하면서 기적적으로 회생한 알리샤는 숭배와 고결의 상징이다. 단지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숨을 멈출 것 같은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그녀는 베니그노와 마르코, 그리고 관객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성스러운 존재로 군림한다.

<그녀에게>는 혼란스러운 영화이다. 과거와 현재, 여성과 남성의 시점을 종황무진 오가면서때로는 에로틱하게, 때로는 성스럽게 여성의 육체를 묘사하는가 하면, 한 남자의 사랑을 기괴한 관음증의 변칙적인 광기, 혹은 모든 편견을 초월한 간절한 믿음의 승화라는 미묘한 경계를 넘나든다. 침묵하고 있는 여성들의 육체를 통해 알모도바르가 우리에게 전하려 한 것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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