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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신조의 덕택으로 만난 아르젠토의 최신작
슬립리스 | 2003년 1월 25일 토요일 | 서대원 이메일

잔혹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다리오 아르젠토라는 고유 명사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가 위인이라 불러 마지않던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보다 몇 갑절은 더 숭배의 대상이다. 그런 그가 1998년 작 <오페라의 유령> 이후 참으로 오랜 만에 <슬립리스>라는 전성기적 아우라가 번뜩이는 작품을 지니고 귀환했다. 물론 영화는 언제나 그랬듯 극장주변에 발 한번 딛지 못하고 짤 없이 바로 동네 비디오 가게로 즉행됐다.

이탈리아 출신인 아르젠토는 이미 1977년에 제작된 <서스페리아>의 핏빛 가득한 충격적 죽음의 향연으로 널리 그 명성을 떨친 바 있다. 그 후 그는, 일련의 작품을 통해 자신이 이탈리아 호러 영화의 대부라 할 수 있는 마리오 바바의 적자임을 드러냈다. 196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바바는 싸구려 범죄 스릴러 소설의 노란 커버를 딴 지알로(Giallo)를 자신의 영화와 접목시킴으로써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유럽 잔혹 영화의 하나의 경향으로 정착시켰던 인물이다. 아르젠토 역시 지알로의 형식적 구성을 그대로 차용해 피의 미학을 일구어 나가고 있는 바바의 수제자 중의 한 명이다. 다만, 스릴러적인 측면이 좀더 약하다는 것이 다르다.

그만큼 그는 영화의 이야기보다는 비주얼을 중시한 인물이다. 그러기에 아르젠토는 촌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짙은 원색을 캔버스 안에다 뿌리며 죽음을 맞이하는 자의 고결한 자태를 어떻게 하면 고혹적으로 카메라에 담아낼 수 있을까 집요하리만치 집착한다.

아르젠토는 늘상 영화가 탄탄한 이야기 구성으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얼마든지 좋은 작품으로 인정받고 거듭날 수 있다고 설파해왔다. 이 같은 그의 지론은 그리 낯익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첫 작품을 대하는 순간 뭔가 허전하고 세련되지 못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주조해내는 이미지들에 탐닉하게 되는 이유는 상당히 이질적인 감정들이 동시에 촉발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극심한 끔찍함과 역겨움을 끄집어낼, 신체를 훼손하고 난도질하는 장면에서도 강렬한 색감과 조명, 고풍스럽고 우아한 건축물을 이용해 지극히 탐미적인 황홀한 감정 역시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통해 대사보다는 보이는 것으로 왜곡된 그 무엇을 표현해낸 독일 표현주의 계열의 작품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물론, 아르젠토의 영화를 더욱 아르젠토 영화답게 두께를 더해 주는 고블린의 음악은 음산한 금속성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창출하며 극단적으로 단순한 멜로디를 반복함으로써 최면적인 홀림을 영화 안에 한껏 주입시킨다.

이와 같은 다리오 아르젠토의 전성기적 흔적들이 많이 묻어나 있는 작품이 이번에 출시된 <슬립리스>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특히, 이번 영화를 강력하게 보라고 프로포즈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죽음과 매혹이 맞닿아 있는 신들이 거의 잘리지 않은 채 기적적으로 출시됐기 때문이다. 워낙이 영등위 분들이 공사다망하시다 보니 아주 잠깐 80분 정도 졸았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던가 사료된다.

연쇄 살인자의 용의자로 난쟁이를 지목하고 이야기와 이미지를 풀어헤치는 <슬립리스>는 전언했듯 아르젠토의 장기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 가지 더 즐거운 사실은 <엑소시스트>의 신부, 막스 폰 시도우가 등장한다는 것. 밀폐된 공간에서 시작된 선홍빛의 카니발은 진한 핏덩어리가 뚝뚝 떨어지는 '손톱, 가위로 절단하기' 신을 넘어, '만년필로 관자놀이 관통하기', ‘시멘트벽에 얼굴 안면부 부딪혀 이빨 뽀샤버리기’, 잉글리쉬 호른으로 얼굴 짓이기기' 등등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참혹한 장면들이, 차마 눈 안 뜨고는 못 볼 수 없을 정도로 간만에 즐비하게 대기하고 있다.

뭐하시는가? 비디오 가게에 안 가시고. 이번에는 글 마무리 하는, 그런 거 없다. '즐비하게 대기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경고-다리오 아르젠토의 전작들을 온전하게 감상하시고자 비디오 가게를 가신다면, 사뿐히가 아닌, 질끈 이 필자를 즈려밝고 가시길 바란다. 비디오로 출시된 그의 작품들, 시쳇말로 완전 작살났다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길이 있다면 단 하나, DVD를 이용하시길 바란다.

1 )
ejin4rang
그럭저럭 볼만한 영화다   
2008-10-1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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