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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실천하세요-'러브 액츄얼리'를 보고
이해경의 무비레터 | 2003년 12월 26일 금요일 | 이해경 이메일

들국화 2집에 ‘또다시 크리스마스’라는 노래가 있죠. 노래 중간에 드러머 주찬권의 굵직한 목소리로 강조되는 가사가 나옵니다. ‘어디에나 소리 없이 사랑은 내리네…’ 또다시,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와서는 어느새 지나갔군요. 청춘은 벌써 지났지만 아직도 철없는 남자로서, 저는 그 가사처럼 따뜻한 영화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딱 걸렸네요. ‘Love actually is all around.’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숱한 사람들의 포옹 장면으로 시작하고 끝나면서, 영화는 ‘사랑이란 실은 어디에나 있다’고 말합니다. 말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주인공들의 다채로운 사랑을 통해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더 이상 따뜻할 수 있겠어요?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포스터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포스터
동의하시겠습니까? 세상에 널린 게 사랑이야… 누군가 당신에게 그렇게 말한다면, 이 메마른 세상에서 불화로 허덕일 당신에게, 별로 다른 처지일 리 없는 누군가가 그렇게 주절댄다면, 눈물을 글썽이며 그(녀)의 손을 맞잡고, 그래 내가 미처 몰랐구나, 우리 널린 그 사랑 몇 개 주우러 나가 볼까, 하시겠습니까? 정신 차려 이 친구야… 말은 그렇게 못할 만큼 마음 약한 당신이더라도, 그(녀)를 바라보는 당신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겠지요. 그 눈빛으로 영화 <러브 액츄얼리>를 본다면, 잘 웃고 나서 이렇게 중얼거리게 되겠지요. 그런데 이건 사기야. 눈을 씻고 찾아봐도 사랑은 없잖아. 있다면 영화 속에만 있는 거라구…

맞습니다. 이 영화는 사기를 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도 말했잖아요. 예술은 사기다… 그러니 예술 영화도 아닌 이 영화만 가지고 너무 나무라지는 마세요. 모름지기 영화란 영화는 죄다 사기를 치고 있는걸요. 어떤 식으로든 말입니다. ‘사기’라는 단어가 거북하게 들릴지도 모르니 ‘환상’이라고 바꿔 부르죠. 환상이 아닌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좀 우아하게 들리나요? 만약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고 주장하는 영화가 있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사기지요. 요컨대, 알고 보면 되는 겁니다. 영화는 불가피하게 환상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되는 거지요. 영화를 보는 동안은 잊고 환상에 빠졌다가도, 불이 켜지고 자막이 올라가면, 음 이제 현실로 돌아왔군,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 환상에서 빠져나오기만 하면 되는데…

바로 그 지점에서 <러브 액츄얼리>와 같은 영화를 비판하는 이들의 근거가 마련될 듯합니다. 영화의 환상이 마치 현실인 것처럼 끝까지 관객을 속여서, 그(녀)로 하여금 거짓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들 위험이 있다고 주장할 법도 하지요. 하지만 다른 영화는 몰라도 이 영화 <러브 액츄얼리>는 그런 공격을 막아낼 방어 장치를 내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뭘까요? 리처드 커티스 감독은 영화 속 현실이 환상이라는 것을 명백히 밝혀 놓음으로써, 속는 관객이 있다 해도 그것은 스스로 속는 것이지 영화 탓은 아님을 분명히 해 두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러브 액츄얼리>는 가상 현실을 다룬 영화죠. 모든 영화가 다 그렇다고 이미 말씀드린 셈이지만, 이 영화는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강조하는 유형에 속하는 영화입니다. 증거가 뭐냐구요? 이 영화를 ‘미래 영화’ 범주에 집어넣을 수도 있다고까지 말하면 힌트가 될까요? 영화 속 현실의 무대는 과거도 현재도 아니고, 그렇다고 언제인지 모호한 그 어느 때도 아니고, 정확히 토니 블레어의 후임으로 다우닝가 10번지에 살게 된 영국 총리가 취임 후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 그 비 내리는 런던의 크리스마스 즈음입니다. 그런 일은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니, <러브 액츄얼리>가 미래의 가상 현실을 다루고 있다는 제 주장이 아주 터무니 없지는 않은 거죠?

영국 총리 데이빗 역의 휴 그랜트
영국 총리 데이빗 역의 휴 그랜트
그 점을 놓치게 되면, 이 영화의 많은 장면들은 유치하고 우스꽝스럽게 다가옵니다. 대표적인 예로, 기자회견장에서 미국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영국 총리의 모습은 비현실의 극치라 하겠지요. 그런데 그 장면을 놓고 말도 안 된다며 불평하는 것은, 꿈 얘기를 듣고 나서 현실과 다르다며 따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죠, 한번 꿈꿔보는 거죠. 말을 바꾸면 희망해보는 겁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남녀의 사랑도, 미남 총리와 서민층 여직원의 사랑도, 친구의 아내에게 정성 들여 고백하는 귀여운 순정남의 사랑도, 그리고 또 이런 사랑 저런 사랑, 이루어지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랑까지… 미래도 현실이므로 거기에는 지금 우리가 살면서 겪거나 접할 수 있는 아픔도 있고, 그 아픔을 다스리는 성숙한 태도의 진실함도 있습니다. 누구도 낙심하고 망가지는 미래를 꿈꾸지는 않겠지요. 그래서,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저는, 그러면 얼마나 좋겠냐는 희망의 전언으로 받아들입니다.

사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용기와 인내도 필요하고, 절제할 줄도 알아야죠. 무엇보다도 두려움이 사랑의 적입니다. 그 중에는 사랑에 따르는 허위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이기심에 대한 두려움이지요. 내가 하는 사랑에, 내가 받는 사랑에, 제 욕심 차리자는 심보가 섞여 있지 않을까… 그 두려움이 지나치게 되면, 사랑이 곧 허위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으로까지 치닫기도 합니다. 혹시 세상의 사랑이 다 가짜로 보이고, 사랑을 주지도 받지도 않고 사는 게 제법 세련되고 진정한 삶의 태도인 양 여겨지지는 않나요? 마치, 나는 어떤 영화를 봐도 절대 안 속을 테야, 그렇게 다짐하는 관객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그러다 속으면 진짜 억울하지 않겠어요? 속는 줄도 모르고 속아넘어가니 억울한 것도 모를까요? 무엇보다, 그렇게 영화를 보면, 그렇게 살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결혼식의 깜짝 이벤트
결혼식의 깜짝 이벤트
왕년의 로커 빌리 역의 빌 나이히
왕년의 로커 빌리 역의 빌 나이히
제가 <러브 액츄얼리>에서 가장 재미있게 본 장면은 영화의 초반에 나옵니다. All you need is love… 비틀즈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결혼식 장면이 저는 정말 좋았어요. 하지만 저야 아내에게 결혼식을 한 번 더 하자고 조를 수도 없고… 미혼의 청춘 남녀라면 그 장면을 보면서 그런 멋진 결혼식을 꿈꿀 만하지요. 그런 이들에게 저건 우리 현실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고, 꿈 깨라고 타이르는 게 좋을까요? 이 영화에는 아주 매력적인 남자 가수가 나오는데요, 영화의 초입에 그가 등장해서 저를 영화 속으로 끌어당겨 주는 순간 저는 안심했거든요. 어, 이런 거라면 마음 놓고 나를 맡겨도 되겠네… 속아도 좋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봐야 진짜 속임수도 보인답니다.

그러니 속을 때 속더라도 사랑하며 살아요 우리. 이 영화가 우리에게 그런 권유를 하고 있잖아요. Love actually is all around. 그 문장에서 뒤를 생략한 것이 이 영화의 제목이잖아요. Love actually. 생략된 부분을 무시하고 제목을 번역하면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요? ‘사랑’이 명사에서 동사로 바뀌면서 일단 명령문이 되나요? 목적어가 없어서 불완전한 문장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우리 식으로 풀이하면, 실제로 사랑하라? 진실로 사랑하라? 그러지 말고 내친 김에 자유롭게 우리말로 옮긴 다음 부드럽게 말해보죠 뭐. 사랑을 실천하세요.

7 )
joe1017
크리스마스하면 딱 생각나는 영화...
이 영화 이후로 이런류의 영화가 많이 생겨났죠..   
2010-03-16 16:07
loop1434
명작   
2010-02-24 11:06
apfl529
ㅍ   
2009-09-21 18:31
qsay11tem
안 본 거 같네요   
2007-11-27 13:26
kpop20
러브액츄얼리 못봤는데 ㅠ   
2007-05-18 23:18
imgold
해마다 크리스마스마다 사랑받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합니다.   
2005-02-01 23:41
imgold
러브액츄얼리..정말 좋은 영화였어요.좋은배우들의 좋은 연기도 그렇고...내용도 찡~하게 와닿고...   
2005-02-01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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