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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광 야구 인생, <스카우트> 감독 김현석
2007년 11월 9일 금요일 | 유지이 기자(무비스트) 이메일


한 가지를 깊이 있게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면 행복해진다. 또는 한 가지를 깊이 있게 좋아하는 감정을 공유하는 것 역시 즐겁다. 그래서 우린 사랑에 빠진 사람을 그린 영화를 좋아한다. 사랑이 반드시 사람을 향해 있지 않더라도.

닉 혼비의 소설 (혹은 1997년 동명 영화) 〈Fever Pitch〉에서 축구팀 아스널에 미쳐 있는 주인공 폴이나, 헐리웃식 개작인 〈날 미치게 하는 남자〉에서 야구팀 보스턴 레드삭스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주인공 벤처럼 〈스카우트〉의 감독 김현석은 충무로에서 널리 알려진 야구팬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야 흔하고, 연예인 야구단처럼 영화계에서 야구를 즐기는 것 또한 드문 일은 아니지만, 김현석 감독은 필모그래피에 선명하게 새겨진 야구공의 솔기 자국이 말해주듯, 자신의 야구 취향을 영화를 통해 표현하였던 작가다.

야구 심판을 주인공으로 쓰는 발상

감독 데뷔 이전에 시나리오 작가로 충무로 생활을 시작한 김현석의 이름은 박찬욱 감독의 출세작 〈공동경비구역 JSA〉에 올라있다. 깐느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후 대한민국 대표감독에 등극한 박찬욱의 개성이 드러난 작품이라기 보다는, 명프로듀서 심재명의 절묘한 조율이 돋보이는 영화였던 〈공동경비구역 JSA〉 각색에 김현석의 이름이 올라있는 것은 제작사 명필름과의 밀접한 관계 때문이다. 부인 심재명과 함께 명필름을 설립한 이은이 유일하게 감독으로 나선 영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시나리오를 쓴 이가 김현석이기 때문.
 믿지마, 해는 서쪽에서 안 떠.
믿지마, 해는 서쪽에서 안 떠.

노골적인 제목과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고소영을 임창정과 매치 시킨 캐스팅, 예고편 만 보아도 단번에 알 수 있을 만큼 명쾌한 구조를 가진 상업 영화인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은, 제목 그대로 현실에서 거의 있을 법하지 않은 로맨스를 그린 장르 영화다. 당대 인기 여배우인 현주(고소영)와 교통의경이었다가 야구 심판이 된 범수(임창정)가 사랑을 이루는 과정을 그린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은, 영화적 욕심이 넘치는 작품은 아니지만 한국 영화에 드문 장르 영화였고, 능란하게 장르적 도구를 이용할 줄 아는 영리한 영화였다. 무엇보다도, 야구를 좋아하는 시나리오 작가가 아니라면 그릴 수 없는 섬세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작품.

주인공 범수의 직업이 야구 심판인 것도 특이하지만, 야구 심판 양성 과정이나 구장에서 경기 중 벌어지는 에피소드까지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야구 심판 묘사는 영화 속 연애와는 정반대로 매우 사실적이다. 특히 전날 과음한 해태 타이거즈의 코치 김성한(당시 김응룡 감독 아래에서 실제 코치를 했던 해태 출신 타격왕 김성한이 직접 까메오 출연한다)이 심판 범수와의 친분을 이용해 보기 좋게 숙취 해소를 하러 경기장 밖으로 나가는 장면이 압권. 장르 영화의 기반에 탄탄한 취재 결과로 만든 사실적인 묘사를 깔아 놓은 솜씨는 영리한 장르 시나리오 작가를 발견할 실마리가 되었다.

최초의 야구단에 대한 상상

이 영리한 시나리오 작가의 감독 데뷔 역시 탁월하다. 자신이 직접 쓴 시나리오를 가지고 입봉한 김현석 감독은, 역사 속 몇 줄의 기록으로 남아있는 대한민국 최초 야구단에 상상력을 발휘한다. 처음 YMCA 주도로 만들어진 최초의 야구단이 일본에 건너가 벌인 친선경기에서도 훌륭한 결과를 얻었다는 희박한 기록에 촘촘하게 다양한 캐릭터를 심어놓고 당시 시대상까지 접목한다.
 공포물 아냐, 코미디야.
공포물 아냐, 코미디야.


그 결과가 바로 〈YMCA 야구단〉이다. 한자식으로 해석하여 소화하는 야구 용어라던가, 반상에 대한 구별을 스포츠 영화에 흔히 쓰이는 갈등 요소로 이용하는 위트 있는 시나리오와 자신의 각본을 잘 이해한 안정감 있는 연출은 영화 개봉 전 시사에서 관객과 평단 모두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었다. 아쉽게도 실제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지만.

일제가 본격적으로 조선에 개입하고 신문물이 들어오는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여기에 야구를 중심으로 〈메이저 리그〉같은 스포츠 코미디의 장르 성격을 도입한 이야기는 무리 없이 하나로 녹아 들었고 송강호와 김혜수, 김주혁과 황정민 같은 배우를 적역에 맡겨 영화는 높은 완성도로 마무리 되었다. 아쉬운 상업적 실패와 별개로 김현석 감독의 데뷔작은 한국 장르 영화에 보기 드문 수작이었고, 감독 자신의 야구 사랑이 진하게 드러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장르 영화를 좋아하고 워킹 타이틀을 의식하는 작가

대학시절 쓴 시나리오 〈사랑하기 좋은 날〉이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되고, 당시 최민수와 지수원을 주인공으로 영화화 되며 충무로에 들어온 김현석 감독은, 두번째 작품 역시 직접 시나리오를 쓴 〈광식이 동생 광태〉를 연출하며 돌아온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야구 이야기가 거의 들어있지 않은 작품인 〈광식이 동생 광태〉는 대신, 소박하고 과장이 없는 김현석 스타일 로맨틱 코미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평소 영국 워킹 타이틀의 작품을 좋아한다는 감독 취향처럼 〈광식이 동생 광태〉는 얌전하지만 은은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시나리오 데뷔작 〈사랑하기 좋은 날〉 역시 당시 대단히 감각적인 방식으로 사랑하는 남녀를 그려낸 로맨스 영화였고, 김현석 감독은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그리 멀리 간 것은 아니었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오히려 시나리오 데뷔작 〈사랑하기 좋은 날〉은 여주인공 시정(지수원)이 야구장 장내 아나운서를 하며 프로야구 선수와 깊은 관계로 나온다는 점에서 여전히 김현석 감독의 야구에 대한 관심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게다가 야구에 대한 영화를 쉬고 로맨틱 코미디 〈광식이 동생 광태〉를 만드는 동안, 역시 실존 야구선수가 즐비하게 등장하는 〈수퍼스타 감사용〉에 해태의 타격왕 오리궁둥이 김성한 선수 역할(그가 시나리오를 쓴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에 직접 까메오 출연한 코치!!)로 깜짝 출연하기도 한다.

팬이었던 선동렬 선수의 자서전을 읽다가 아이디어를 얻어 고3 괴물투수 선동렬의 스카우트를 소재로 영화를 찍어보고 싶었다는 몇 년 전의 인터뷰가 이제 현실이 되었다. 감독의 야심작은 〈스카우트〉라는 제목으로 개봉을 앞두고 있고, 야구선수 출신이었다가 대학의 스카우터가 된 이호창(임창정)이 30년이 다 되어가는 1980년 광주에 초고교투수 선동렬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나타난다. 시대상에 대한 사실적 묘사와 야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영리한 장르 틀에서 소화한 데뷔작 〈YMCA 야구단〉처럼, 민주화 운동이 있었던 1980년의 광주를 배경으로 로맨스와 야구를 넘나드는 절묘한 영화라는 후문. 광주를 들끓게 했던 초고교급 투수 선동렬은, 순돌이로 아역을 평정했던 이건주가 맡는다는 캐스팅 비화는 보너스.

글_유지이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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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lby8318
또 야구영화?   
2007-11-09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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