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명량>,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까지 이순신 3부작을 완성했다. 처음부터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찍었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두 편의 속편이 단순히 <명량>의 흥행에 힘입어 만들어진 게 아니다. <한산>, <노량>이라는 작품이 존재해야 한다는 뚜렷한 의식이 있었다. 적들이 퇴각을 앞두고 있고 모두가 다 끝난 전쟁이라고 하는 상황에서 이순신 장군이 왜 고독하고, 집요하고, 치열하게 이 전쟁을 끝까지 수행하려고 했는지가 매우 중요한 화두였다. 그래서 꼭 <노량: 죽음의 바다>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명량>에서는 최민식, <한산>에서는 박해일, <노량>에서는 김윤석을 이순신 장군에 캐스팅했다.
<명량>이 개봉할 때까지만 해도 속편이 결정된 바 없었다. 사실 <명량> 때 최민식 배우가 이순신 장군을 했으니 속편에서도 그렇게 하려 했다. 그런데 최민식 배우가 "<명량> 한 편에 에너지를 온전히 다 쏟았다"고 말씀하시더라. 그러면서 각각의 작품에 걸맞은 배우와 함께하는 게 좋겠다고 결정했다.
<명량>에서는 용장의 모습을, <한산>에서는 지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혜로운 젊은 이순신 장군의 모습에 박해일이 적합했다. <노량>에서는 후대를 생각하는 혜안을 가진 현장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김윤석 배우가 가장 먼저 떠오르더라. 비교적 젊은 박해일 배우가 출연했던 <한산>에서는 주변 장수들도 연령대를 그에 맞춰 캐스팅하면서 배우들 밸런스를 맞추려고 했다.
영화는 북소리로 시작해, 북소리로 끝을 맺는다. 북소리가 상징하는 바가 무엇일까.
북소리가 이순신 장군의 뜻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자'는 이순신 장군의 뜻을 북소리에 담았다. 북소리가 들어오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괴로워하는 모습이 등장하고, 북소리를 들으며 ‘시미즈’(백윤식)가 괴로워한다. 그렇게 배치하는 게 맞는 거 같았다. 또, 북소리로 더욱 심기일전해 싸우게 되지 않나. 북소리와 함께 전쟁이 마무리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모습을 담아내는 데 고민이 컸을 것 같다.??
모두 다 아는 역사이고, 모두 다 아는 결말이다. 사실 이순신 장군이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을 찍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그런데 그 장면은 아무리 잘 찍는다 해도 밑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하지만 이순신 장군의 진정성과 진심이 담긴 그 말을 담지 않으면 이 영화 자체가 사상누각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그 장면을 넣되 어디에 배치할지를 많이 고민했다.
해전 시퀀스만 2시간에 달한다. 시리즈 사상 최장 시간이다. 이렇게 해전에 공을 들인 이유는?
노량 해전은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와 배가 부서진 해전이다. 밤에 시작돼 아침까지 전투가 이어졌고, 수많은 지휘관급 장군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렇기에 이 해전에 영화적으로 많은 부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고, 전투를 따라가는 시선이 명징하게 전개되어야 했다.
전쟁의 한중간에 이순신 장군이 고독하게 서 계시면 좋을 것 같아서 롱테이크 기법을 선택했다. 이름 없는 명나라 군사부터 시작해 이름 없는 조선 군사, 이름 없는 왜군, 그리고 그 끝에 이순신 장군이 보이도록 장면을 설계했다. 홀로 선 이순신 장군을 향해 카메라가 점진적으로 나아가도록 연출했다.
촬영도 힘들었지만 사운드 설계도 쉽지 않았다. 박진감 넘치고 비트 있는 사운드는 이 장면에 과했고, 너무 서정적인 음악도 어울리지 않더라. 악기, 음색, 사운드 길이의 밸런스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 전쟁 도중에 이순신 장군이 세상을 떠난 동료들을 회상하는 장면에선 과감하게 사운드를 뮤트하고 선택적으로 소리를 넣으면서 앞의 사운드와 대비가 극명하게끔 설계했다. 어떤 분들은 이 지점이 ‘너무 과감하다, 실험적이다’라고 하시더라. (웃음)
원래 외국인 배우를 쓸 의향도 있었는데, 캐스팅 보드에 붙여놓고 보니까 몰입이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웃음) 적장이지만 우리나라 배우들이 맡는 게 맞는 거 같더라. 그래야지 관객 입장에서 더 몰입도 되고 적장들이 더 카리스마 있게 표현될 거 같았다. 감정 연기도 쉽지 않은데 외국어로 대사를 읊느라 배우들이 고생 많았다. (웃음) <최종병기 활>(2011)에서 청나라 장수로 류승룡 배우를 썼을 때는 본능적으로 그랬는데, 이번 3부작을 하면서는 그 이유가 명확하게 정리되더라. (웃음)
영화 마지막에 광해(이제훈)가 깜짝 등장한다.
광해의 등장을 통해 이순신 장군의 유지가 당시 정치 위정자들에게도 확장되는 효과를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의 우리에게도 닿기를 바랐다. 이제훈의 캐스팅은 친분으로 진행됐는데, 차분하면서도 지적이고 약간은 반골적인 면모가 광해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웃음)
10년 만에 이순신 장군 3부작을 완성시켰다. 감회가 남다를 거 같다.
참 운이 좋았다. 지방 무대인사를 다니면서 ‘언젠가 만들어져야 할 작품을 내가 만들게 됐고, 보여드려야 할 작품을 보여드리게 되어서 참 감격스럽다'고 말씀을 드렸다. 딱 그런 심정이다. 3부작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건 천행 같다.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는 <노량>으로 마무리됐지만, 이순신 장군을 전면에 세우지 않아도 또 이순신 장군을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나. 우리가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웃음)
<명량>, <한산>, <노량>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
이순신 정신의 리마인딩인 것 같다. <명량>에서의 이순신은 모두가 두려움에 빠진 상태에서 그걸 용기로 전환시키는 중심에 있었다. 그런 정신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산>에서는 수세에 빠진 전장에서 능동적인 공세로 바꾸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순신 장군이 집중력 있게 전쟁에 임하지 않았다면, 그 승세를 잡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 정신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노량>은 부당한 침략을 통한 올바른 전쟁의 종결이 무엇인가에 대해 중요한 지점을 시사한다. 우리 역사 속에 제대로 종결이 되지 않아서 지속적인 불행을 낳는 사례들이 있지 않나. 영화를 통해 이순신 장군의 정신이 우리 후대에게 다시 한 번 명확하게 전달되게 하고 싶었다.
사진제공_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