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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할아버지의 의기투합 <비밥바룰라> 신구, 박인환, 임현식, 윤덕용
2018년 2월 1일 목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신구, 박인환, 임현식, 윤덕용. 네 배우가 노인 영화 <비밥바룰라>를 선보였다. 일흔 살 넘은 네 할아버지가 서로의 버킷리스트 실현을 돕는 이야기다. 평생 꿈에 그려온 공동의 주택을 짓기 시작하고, 오래전 헤어진 연인을 찾아가 용기 내 사랑을 전한다. 아내의 기억을 잠시나마 되살리기 위해 갖은 작전을 구사하고, 어려운 상황에 빠진 친구는 힘 합쳐 구해낸다.

누군가의 부모나 조부모로 작품 주변부에만 머물기 쉬운 나이, 네 배우는 한 작품의 주된 이야기를 책임지는 주연으로 모처럼 관객 앞에 섰다. 노인, 그리고 할아버지. 시대의 변화 앞에서 자꾸만 좁아지는 자신들의 입지를 피부로 느낀다고 말하는 그들이기에, <비밥바룰라>의 의미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응원하게 되는 의기투합이다.



<비밥바룰라>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임현식(이하 ‘임’): 할아버지가 네 명이 주인공인 작품입니다. 우리 모두 70살이 넘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재미있는 모습이 영화에 나옵니다. 나는 2편과 3편을 찍을 수 있는 가능성을 봤습니다. 예컨대 20년 전을 회상하는 식이라든지… 그러면 20년 젊게 나올 수 있겠지요.(웃음)

신구(이하 ‘신’): 아마 분장사가 애를 먹을 거예요.(웃음)

박인환(이하 ‘박’): 요즘에는 70대와 80대가 너무나 흔합니다. 과거와 달리 여유도 있고 시간도 많죠. <비밥바룰라>는 그들이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예요. 우리가 나이를 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렇게 따뜻하고 편안한 작품이 참 좋습니다. 얼마 전 아내와 <범죄도시>를 봤는데, 재미는 있었지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도끼로 팔을 자르고… 몇 분에 한 번씩 자극적인 신이 나오더군요. 저렇게 자극적인 영화만 관객이 즐겨 찾게 된 건가 싶었습니다. 현실 세상에는 아직 아름답고 진실한 이야기도 많습니다. 나는 이른바 ‘쟁이’들이 사람 냄새 나는 작품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아직은 우리 사회가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네 분은 본래 친분이 있으셨나요. 영화에서는 서로 간의 호흡이 아주 좋습니다.

신: 배우는 다들 마찬가지일 거예요. 같은 작품을 하면 만날 시간이 많고 그렇지 않으면 힘들지요. 이번에는 나이 든 노인네들끼리 모여서 작품을 하니 참 좋았습니다. 아, 미안해요. 노인네라는 말을 써서.(웃음)

임: 신구 선배님처럼 80살 넘어서까지 활발하게 일을 하는 걸 보면, 우리도 형님 나이까지는 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임현식 선생님은 극 중에서 노래 ‘비밥바룰라’를 맛깔나게 소화하셨죠. 영화의 상징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장면입니다.

‘비밥바룰라’는 우리 같은 노인이 청소년 시절일 때 자주 듣던 노래입니다. 그 노래가 나오면 신나게 트위스트를 췄죠. 교복 입고 놀던 추억을 떠올리며 영화 제목을 지은 모양입니다. 주어진 장면을 최대한 재미있게 만들어내는 게 배우의 운명이니까, 참 열심히 불렀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았겠지요. 입으로는 ‘비밥바룰라~’ 하면서도 내가 지금 뭘 하는 건가 싶을 때도 있었지만요.(웃음)
촬영이 끝나고 난 뒤에는 거의 빠짐없이 술잔을 기울이셨다고 들었어요.

윤덕용(이하 ‘윤’): 아쉽게도 저는 술을 전혀 하지 못합니다.

박: 신구, 임현식, 나 세 사람은 술을 거의 매일 먹다시피 했어요. 촬영장 근처 시장에 통닭집이 있어서 생맥주를 한두 잔씩 했죠. 몇십 년 간 술을 먹어왔으니 서로 특별히 말 하지 않아도 술잔을 잡죠. 그건 연기가 아니라 생활입니다.(웃음) 그래서 술자리 연기도 감독의 코치 없이 상황만 주어지면 편히 할 수 있어요.

임: 술 안 마시는 날은 좀 섭섭할 정도였어요. 통닭집에서 술을 먹을 땐 시장 장돌뱅이 아저씨들이 다 모이는 바람에 일고여덟 명씩 어울려 먹게 되더군요. 우리끼리 오붓하게 먹으면 좋았을 텐데 사람이 많으니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고요.(웃음)

신: 나는 술을 집에서 혼자 마시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술 먹자고 친구를 불러도 잘 나오지 않아요. 운전을 해야 한다 그러고, 건강을 생각해야 한다니 한 번 모이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면 괜히 고생할 것 없이 집에서 한 병 마시면 돼요. 요즘엔 ‘혼술’이라는 게 많지 않나요.

임: 형님, ‘혼술’하면 외롭지요.

신: 뭐가 외로워. 당신, 친구들에게 술 마시자고 하면 그들이 나와주나요?

임: (시무룩한 표정으로) 안 나오죠.

신: 그것 봐요. 어쩌다 작품으로 만나서 이렇게 의기투합해 술집을 가면 모를까, 쉽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배우 생활을 해오셨으니 건강 관리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실 텐데요.

신: 늘 말하는 거지만 살아있는 사람은 건강이 제일입니다. 특히 배우는 누가 대신 일해줄 수 없으니 꼭 현장에 있어야 해요. 그런 점에서는 부모님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네요. 건강은 타고난 편입니다. 꾸준히 많은 운동을 해오기도 했고요. 과거에는 양재천을 주로 걸었는데 환경이 바뀌고 난 후로는 체육관에서 트레드밀을 한 시간씩 합니다. 그럼 개운해요.

박: 나는 아주 단조로운 생활을 합니다. 일주일에 두 세 번은 테니스를 치고, 보통은 동네 운동장을 걸어요. 혈압이 좀 높기는 하지만 건강은 잘 체크하고 있어요. 물론 술도 열심히 먹습니다.(웃음)

임: 시골에 살다 보니 아파트에 사는 사람보다는 좀 더 걷는 것 같아요. 하지만 특별히 반복하는 운동은 없습니다. 몸을 좀 움직여야하지 않을까 싶으면 친구들과 가끔 둘레길을 걸어요. 그러다가 건강이 조금 떨어진다 싶으면 술을…!(웃음)

윤: 다들 말씀하신 것처럼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지요. 하지만 욕심을 내려놓으니 건강해진다는 걸 가장 크게 느낍니다. 젊었을 때는 나보다 옆 사람이 더 좋은 배역을 맡으면 질투하고 시기했는데, 마음을 내려놓으니 참 좋더군요. 그래서 아직은 건강한 것 같습니다.


영화 촬영 현장이 고되지는 않으셨는지요.

신: 집에 있는 것보다야 힘들지요.

임: 그래, 진짜 영화 찍는 것보다는 (이런 인터뷰 자리가) 더 힘들어요.

신: 아니, 집에 있는 것보다 촬영이 더 힘들다고요!

박: 가는 귀들이 먹어서 원…(웃음)

이해합니다.(웃음) 오랜 시간 배우 생활을 하셨어요. 과거와 가장 크게 변화한 점이 있다면요.

신: TV를 보면 요즘 우리 연배 노인 역할은 여자분들이 더 활발하게 맡습니다. 최근에는 강부자 씨가 조금 뜸하긴 하지만 김영옥 씨, 나문희 씨 등 많지요. 그런데 남자 노인이 나오는 드라마는 그리 많지 않아요.

박: 현실을 반영한 게 아닌가 싶어요. 할머니는 가정에서 역할이 있죠. 손주들을 봐주고 집을 지켜주고 하다못해 청소와 빨래라도 돕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쉽게 말하면 백해무익이에요. 짐입니다. 청소를 하나요, 아니면 세탁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나요. 애도 볼 줄 모르고 밥때 되면 밥만 차려 주길 기다리니 완전히 천덕꾸러기입니다. 자연히 안방극장에서도 할아버지 역할을 보기 힘든 것 아닐까요.

임: 하지만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신발부터 닦습니다. 밥과 설거지를 하고 모든 집안일을 완벽하게 끝냅니다. 마치 식모나 머슴처럼 일하지만 그런 걸 서글퍼하지는 않아요. 난 죽어도 행주를 놓지 않고 죽겠다는 심정입니다.(웃음) 그런 역할로 한 15분짜리 작품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신: 아무튼 남자 노인들이 상대적으로 쓰임새가 없어진 거겠죠. 우리 젊을 때는 남자 작가들이 많았고, 그런 친구들이 사극이나 시대극 같은 대작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 양반들이 다 죽었습니다. 이제는 소위 밥상머리에 앉아서 수다 떠는 이야기가 많아요. 작가들도 전부 여자고, (기자들을 바라보며) 여기도 말이지. 왜 이렇게 여자들이 세졌는지.(웃음)

박: 그런 면에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행운입니다. 변두리 역할이 아니라 작품의 축이 되는 인물을 맡았으니까요.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오랫동안 한 길을 걸어오셨지요. 그 삶에 만족하시나요.

신: 태어나서 다른 일은 해본 적 없기 때문에 배우일 말고는 아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후회할 일도 없지요. 만약 다른 일을 했다면 어땠을까 상상도 해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좀 아쉬운 건 있어요. 우리가 젊었을 때는 요즘처럼 촬영 여건이 좋지 못했습니다. 야외 촬영을 해도 의상부터 모든 걸 혼자 구하고 챙겨야 했으니까요. 참 고생스럽게 일했는데 요즘 젊은 배우들은 도와주는 사람이 두세 명씩 따라다니더군요. 환경이 많이 좋아졌다는 걸 느낍니다.

임: 1969년 MBC가 개국할 때 1기로 입사했습니다. 당시 TBC, KBS, 영화계와 연극계 선배들이 많이 어우러져서 활동했죠. 그때는 비록 흑백 TV 시대이기는 했지만 전국적으로 다 같이 방송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변화였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연기를 했으니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이 없는 게 다행입니다.(웃음) 재미있었습니다. 술만 많이 먹고 연기는 아무렇게나 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은 엄청 노력했어요. 차 안에서, 화장실에서 대본이 걸레가 되도록 읽었습니다. 드라마 애드리브를 너무 과하게 해서 방송국에서 쫓겨날 뻔한 위기도 있었고요.(웃음) 그런데 한 7~8년 전부터 상암동으로 방송국들이 옮겨가기 시작했고, 방송계 문화가 엄청 발전했습니다. 나는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어요.(웃음)

박: 현재에 만족하는 편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고생을 너무 많이 했어요.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연극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수 없이 많은 역할을 맡았습니다. 천막을 치고, 바닷가 앞에서 숱한 공연을 했죠. 그렇게 다진 실력 덕분에 지금까지 TV나 영화에 출연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나이에 이런 인터뷰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건 정말 행운입니다. 내 경우에는 워낙 화려하지 못한 시작을 했기 때문에, 일거리도 오히려 나이 들어 더 많은 편입니다.

신: 신성일처럼 타고난 조건이 뛰어난 사람이 불쑥 스타가 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대개 자기 분야에서 10년은 고생해야 합니다.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예요.

박: 배우는 그런 시간을 거치면 작품 해석력과 표현력이 좋아지죠. 고생을 해본 사람만이 기회의 소중함을 압니다. 절대 적당히 연기하지 않죠. 애초에 영화판이 연극배우를 많이 캐스팅한 이유도 비슷합니다. 이름 좀 날렸다 하는 탤런트는 역할에 대한 불만을 말하기도 했지만, 연극배우 출신은 워낙 굶주려왔기 때문에 늘 고마운 마음으로 열심히 임했습니다.(웃음)


과거와는 많이 다른 환경을 실감하시겠어요.

신: 요즘은 자기 능력이 있으면 프리랜서가 됩니다. 계약을 거쳐 개런티를 받아요. 방송국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원래 생각한 수준의 수십 배라도 주고 씁니다.

임: 하지만 예전에는 배우가 한 방송국의 전속으로 월급을 받았습니다. 다른 회사에 갈 수도 없었죠. 당시 월급이 2만 원 정도였는데 지금으로 치면 200만 원쯤 되는 돈입니다. 1년에 한 1,000원쯤 올려줬을까요. 경력이 쌓이고 나서는 개인적으로 방송국 부국장을 만나서 “이번에는 10만 원은 올려줘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겨우 그 정도를 올려주면 좋아서 술 한잔씩 사 먹었죠. 과거에는 출연료가 그렇게 형성됐는데 요즘 친구들은 몇천씩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종종 붕 떠서 지내는 젊은 배우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인생은 살아봐야 아는 것이니 그러다가 정신 차릴 수도 있겠지만요.(웃음)

신: 아마 ‘요즘 젊은것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이야기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웃음) 하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은 우리 때보다 훨씬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입니다. 일도 잘 하고요. 나는 그렇게 느낍니다.

임: 나에게도 출연료를 몇 천씩 받는 기회가 있을까요?(웃음)

박: 과거에는 배우에게 등급을 매겼습니다. 그 등급을 올리면 개런티도 올라갑니다. 그런데 오히려 등급을 내려달라는 배우도 있었죠. 개런티가 비싸면 자기를 쓰지 않을 테니까요.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예나 지금이나 배우는 선택 받아야 하는 숙명을 지닌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 말씀 잘 들었습니다. <비밥바룰라>를 기대하는 관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말을 건네주세요.

박: 이런 따뜻한 영화가 우리 영화계에 필요하다는 걸,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봐 줬으면 합니다.

임: 한 영화계 관계자가 그러더군요. <비밥바룰라>가 100만 관객을 모은다면 앞으로 노인 영화가 자주 나오게 될 거라고 말이죠. 잘 나가는 영화는 1주일 만에 300만, 400만 관객이 들기도 한다는데… 우리 영화는 한 15일 정도 상영하면 100만 관객은 되지 않을까요?(웃음) 엄청난 숫자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노인 영화도 잘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게 우리의 바람입니다. 앞으로는 여자 노인도 좀 여러 명 등장시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여자 노인 너덧 명 정도를 캐스팅해서 조합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웃음)


2018년 2월 1일 목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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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영화사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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