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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이 구원받는 이야기’, <불신지옥> 세계관의 확장 <서복> 이용주 감독
2021년 4월 21일 수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인간 이상의 비범한 능력을 지닌 소녀 ‘소진’(심은경)에게 구원받으려던 주변 사람들의 잔혹한 비밀을 다룬 공포물 <불신지옥>(2009) 이후, 이용주 감독은 <서복>으로 다시 한번 그 세계관을 확장한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기헌’(공유)과 영생을 얻었지만 불행한 복제인간 ‘서복’(박보검)의 이야기는 ‘죄인과 구원자’라는 공통된 테마 안에서 전개된다. 개봉 이후에는 장르를 특정하기 어려운 연출 측면의 변화나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연달아 대사로 내뱉는 ‘서복’ 캐릭터의 활용법을 두고 이런저런 지적도 따른다. 다만 <건축학개론>이라는 빛나는 흥행작이 잠시 가려둔 이용주 감독의 본질적 고민과 두려움을 재차 드러낸다는 점에서, <서복>은 <불신지옥>에서 다 펼치지 못한 그의 세계관을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했다는 의미를 지닐 것이다.

흔히 <서복>이 ‘<건축학개론>을 연출한 이용주 감독의 신작’이라고 표현되는데, 창작 순서로 보면 ‘<불신지옥> 이후의 신작’으로 부르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기자 주: 이용주 감독은 <건축학개론> 시나리오를 가장 먼저 썼지만 영화가 한동안 제작되지 못해 이후에 집필한 <불신지옥>으로 데뷔하게 된다. <건축학개론> <불신지옥> <서복> 순서로 시나리오를 썼다. )
재수를 해서 건축학과에 갔다. 어릴 때부터 건축학을 꿈꿨다. 지금도 주변 친구들은 다 건축을 한다. 그러다가 나만 영화 분야로 넘어온 거다. 내게는 일종의 ‘믿음’을 바꾼 순간이기도 하다. 건축일 하는 사람들도 영화일 하는 사람들처럼 자기들 일을 종교인 듯 신성시하거든. 주로 급여가 충분치 않은 직업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지.(웃음) <건축학개론>은 그랬던 내 30대를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쓴 작품인데, 제작이 무산되면서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당초 영화계에 입문한 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연출부로 알고 있다.
서른 넘어서 늪에 빠지듯 영화를 찍게 됐다. 건축설계 사무소를 다니면서 단편 영화 작업을 병행하다가 <살인의 추억> 연출부에 들어갔는데, 그때 나와 봉준호 감독님의 나이가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연출부 막내치고는 너무 늙은 사람이 들어온 거지.(웃음)

그래도 <살인의 추억> 연출부에 뽑혔을 때는 어떤 능력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비화를 말씀드리자면… 내가 스틱 운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때 봉 감독님 차가 스틱이었다. 당시에는 전부 오토면허를 따기 시작할 때라서.(웃음) 그런 이유로 엄청난 인연을 만나게 된 거지. 프리프로덕션 기간을 포함해 근 2년 동안 연출부 생활을 했는데, 작품 하나를 하고 나니 30대 중반이 돼 버리더라.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감독 데뷔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조급함이 생겼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40살이 넘어가면 입봉을 포기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다가 데뷔작 <불신지옥>을 선보이게 된다.
<건축학개론> 제작이 무산된 뒤로 너무 힘들었다. 과연 영화감독이 될 수 있을까? 굉장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던 차에 집에 큰 우환까지 생겼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질병) 선고를 받았고 <불신지옥>이 개봉하는 해 돌아가시게 된 거다. 인생에서 가장 불안하고 괴로웠던 시기다. 영화를 포기할까, 더 써볼까 고민하다가 만든 작품이 <불신지옥>이다.

<불신지옥>은 신들린 소녀 ‘소진’(심은경)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공포물이다. <서복>의 테마가 <불신지옥>의 세계관에서 이어졌다고 봐야 하나.
그렇게 말하는 게 나로서도 편할 것이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영화를 보신 분들은 ‘소진’이라는 인물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영화에 그를 통해 구원받으려는 이들의 욕망이 담겨 있었다는 것도 알 것이다. 인생을 돌아보면 <불신지옥>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내게는 강렬한 작품이기도 하고, 당시 예산이 워낙 적어서 구현하고 싶은 이미지 면에서 자신을 제한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불신지옥>의 확장판을 써보겠다는 욕망이 있었다. ‘죄인이 구원받는 이야기’가 <서복>에서 (비로소) 확장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장르적 유사성은 거의 없는데. 서복은 시한부 인생과 복제인간을 주인공으로 한 SF물이다.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로서 장르를 규정하지는 않는 편이다. 장르는 관객을 위한 편의적인 가이드다. SF라는 건 장르라고 말하기엔 좀 이상한 것 같다. 오히려 이야기의 ‘배경’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SF멜로도 가능하고 SF공포도 가능하다. SF라는 배경과 ‘이야기’(가 어떨 것이냐)는 전혀 상관이 없다. 복제인간이라는 단어가 나오니 SF라는 말을 자석처럼 끌어당긴것 같은데, 마케팅 과정에서 그런 지점을 세심하게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

장르가 관객을 위한 가이드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최초로 접하고 관객에게 소개하는 입장에서는 장르 구분이 의미 있는 잣대가 될 수도 있다. <서복>의 경우에는 ‘이런 장르의 재미를 기대하고 가라’는 의견을 공유하는 게 쉽지 않더라. SF 기반의 미스터리 스릴러, 혹은 브로맨스물, 아니면 히어로물? 어떤 쪽도 입에 딱 붙지는 않는다.
장르에 대한 기대를 따라가면 전형적인 이야기가 되고, 안 따라가면 낯선 이야기가 된다. 어찌 보면 내 영화는 그 외줄타기에서 뒤뚱뒤뚱 걷는 이야기들이다. <불신지옥>은 공포 영화인데 ‘쇼크’가 너무 없고 귀신도 안 나온다는 지적이 있었고, <건축학개론>은 멜로영화지만 치명적이고 불같은 사랑이 없어서 싫다는 분도 있었다. 장르에 대한 기대를 적절하게 (무언가로) 대체하면서 관객을 충족시키는 게 작가이자 감독으로서 해야 할 역할일 것이다. 물론 <서복>이 그런 영화냐고 한다면… 반성을 많이 하고 있다.


‘서복’의 입을 빌려 주제의식을 곧장 대사로 뱉어낸다는 지적도 있다.
‘서복’은 질문의 형식을 빌려 ‘기헌’을 구원하기 위한 조언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리뷰를 보니 그 대목에서 힘들어하신 분들이 많더라. 좀… 그랬나?(웃음) 한국 배우가 한국말로 그런 대사를 했을 때 (유독) 참기 힘들어지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대사를 자막으로 보는 외국 관객의 반응이 어떨지도 궁금하다. 외국 영화에는 그런 장면이 많지 않나.

덕분에 삶과 죽음에 관한 고민이라는 메시지는 명확하게 드러났다.
17년 전쯤 친한 친구가 먼저 가버렸다. 30대 초반에 갑자기 그런 일을 겪으니 너무 충격적이고 비현실적이었다. 집안에 큰일까지 있고 나니 40대에는 나까지도 건강 염려증으로 고생이 심했다. 죽음이 두려워서 사주도 보고, 점도 보고 그랬다. 사람이 태어나면 죽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모든 일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똑바로 응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남보다 깊었던 것 같다.
죽음에 연관된 이야기를 하면 보통은 그런 얘기 하지 말라며 외면한다. 하지만 죽음은 영화로 치면 소중한 사람들이 맞는 엔딩이다. 러닝 타임이 끝나는 지점을 사람들은 왜 그렇게 외면하려 하는 걸까. 꼭 살아야만 해피엔딩일까? ‘서복’의 마지막 대사는 “형, 저 졸려요”다. 그 결말이 꼭 나쁜 의미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비로소 안식을 찾은 것이다. 마치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장면처럼 의연한 느낌을 원했다.

<서복> 제작비는 160억 가량이라고 들었다. 전작인 <불신지옥>과 <건축학개론>의 제작비를 모두 합쳐도 40억이 안 된다는 기사를 봤는데.
<불신지옥> 13억 원, <건축학 개론> 23억 원. 두 작품을 합쳐도 40억 원이 안 된다. 지금 다시 그 돈으로 같은 영화를 찍으라고 하면 아마 절대 못 찍을 거다. 스태프 인건비도 올랐고 52시간 근무도 지켜야 하니까. 제작 환경과 시대상이 바뀌었고,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서복>에서는 <불신지옥> 당시 한두 번 정도밖에 쓰지 못했던 특수효과를 여러 차례 활용했고 총기 사용 신도 찍었다. 지금까지는 해보지 않은 작업이었다는 점에서 데뷔작을 찍는 기분도 들었다.


<서복>만의 강점이라고 자부할 만한 대목은.
공유와 박보검이 나온다는 것. 그것만큼은 명징하다. 그들을 캐스팅한 게 무엇보다 큰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사실은 한 번도 무언가를 자부하면서 영화를 개봉해본 적이 없다. 작품이 내 손을 떠난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항상 두려웠고 괴로웠다. 영화를 만들면 대부분 욕을 먹는다. 모두가 좋아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10명 중 9명이 좋아하는 영화보다는 10명 중 6명이 열렬히 좋아하는 영화가 더 좋다. ‘내 것’과 ‘관객이 즐길 수 있는 것’ 사이의 접점이 뭘지 항상 고민해야 하는 게 내게 주어진 역할이자, 즐거움이자, 두려움이다.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도 있나.
아이템보다는 ‘2시간짜리’(영화)를 할지 ‘6시간짜리’(시리즈물)를 할지를 아직 정하지 못했다. 2시간을 넘어가는 포맷은 익숙하지 않은 대신 시간 때문에 불가능했던 걸 비로소 가능하게 하는 측면도 있다. 그 양날의 검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무엇보다 <서복>의 결과를 좀 봐야 할 것 같다. 진지한 자세로 임했고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부터 갈등과 고민도 많았다. 세 번째 장편이기는 하지만 <건축학개론>의 흥행 이후 알게 모르게 큰 부담이었는지, <서복>에서 소포모어 징크스 같은 걸 느끼기도 한다.

관객이 현명한 반응을 내어놓으리라 믿는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 영화를 시작해서 항상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식사할 때 외에는 영화와 관련되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내가 영화만 보고 있으면 ‘정신 나간 놈’이라며 그게 무슨 공부가 되냐고 하셨지만.(웃음) 그런데 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긴 것 같다. 다음번 작품을 고민할 때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사진 제공_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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