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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와 견해는 달라도 그리울 <노회찬6411> 민환기 감독
2021년 10월 20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민환기 감독은 故 노회찬 의원 3주기에 맞춰 제작한 다큐멘터리 <노회찬6411>을 준비하며 43명의 인터뷰이를 만나 200시간 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민 감독은 그 과정에서 고인의 어떤 고독함을 발견했다.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지인과 즐거움은 나눠도 괴로움은 털어놓지 않던 사람, 원칙과 신념에 충실하고 어떻게든 고수하려고 노력했던 사람, 그렇기에 외로웠을 사람. 극이 진행될수록 그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가 살았던 세상과 꿈꿨던 진보정치의 가치를 돌아보길 바란다는 민 감독을 만났다.

먼저 어떤 마음으로 연출을 맡았는지 묻고 싶다. 혹시 고인과 친분이 있었는지.
그분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을 뿐 사적으로 전혀 친분이 없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깊거나 그분의 팬도 아니어서 오히려 부담없이 맡았다. 제작사 측에서 평소 하던 방식으로 하면 된다고 해서 평소대로 객관적으로, 한 발자국 물러나서 바라보는 방식을 취했다. 한데 그에 대해 공부해 나가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힘든 임무를 맡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떤 점에서 힘들다고 생각했나.
그의 주장이 한국사회에서는 소수의견에 속하고, 그 소수의견을 정치를 통해 관철하는 과정에 따른 논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른 부분이 있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거대 정당의 논리, 즉 거대 정당이 국민들의 지지를 많이 얻으려고 힘쓰는 데 비해 작은 정당은 그와는 또 다른 논리가 있더라. 한국사회에서 오랜 시간 동안 저항 운동을 한 이들이 모여 정파적인 이해나 주장하는 바를 관철시키려다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모습이 많았고, 이를 다루는 데 부담됐다. 그들이 융합하고 실천하는 과정을 지켜보는데 과연 내가 그런 걸 볼 자격이 있나 싶기도 했고, 그 과정을 노회찬 의원을 통해 드러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고인의 면모 중 특별히 부각하고자 한 측면이나 작품의 방향성을 짚는다면.
<노회찬6411>은 노회찬 의원의 이야기이자 진보정당 운동의 태동과 발전, 그 발자취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 길 고비고비에 고인의 매우 고독하고도 쉽지 않은 선택이 있었고, 그 선택을 보여주는 게 그의 진면목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보면 그는 매우 원칙적이고 원론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으로 자기 세력을 불리기보다 자기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해야 제대로 된 정당의 모습을 갖추고 그래야만 차후에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분이라 원칙을 지키는 데 있어 한 번도 양보하지 않았다. 그만큼 고단한 삶이었을 테고 어떻게 보면 그 고단함을 자처한 부분도 있다.

이런 고단함 속에서 자기의 신념을 놓지 않는 게 고인의 참모습이라고 생각해서 여과없이 드러내려 했다. 극 중 중학교 동창분이 고인이 평소 ‘사람은 다 똑같다’고 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동의를 끌어내는 방식에서 이해관계와 생각이 다를 수는 있지만, 옳은 말을 한다면 어떤 사람이든 어떤 상황이든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 분이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깊고 그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려 한 분이더라.

영화를 공동으로 제작한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 조돈문 이사장은 회한과 슬픔보다는 긍정적인 울림을 전하고 싶었다고 영화의 의도를 전했다.
영화를 보고 바로 긍정적인 울림을 느낄 수 있다기보다는 처음엔 슬픈 감정도 생기고 복잡한 마음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러다 되짚어 그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단한 삶을 택했는지 생각해 보면 긍정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한다. 선택의 순간마다 원칙을 버리지 않으려 노력하고, 수확보다는 씨앗 뿌리기를 택한 그의 신념과 역할에 대해 말이다.
<노회찬6411>
<노회찬6411>

극 중 인물들은 ‘지금’이라서 고인이 더욱더 그립다는 말을 한다. 왜 지금일까.
특정 정당에 속해 있고, 이에 따른 정치적 견해가 확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보편타당한 이야기를 설파했기 때문이 아닐까. 공허해지기 쉬운 보편타당한 이야기를 실질적인 삶에 대한 태도의 문제로 이야기를 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어떤 정당이든 ‘행복하고 잘 살게’ 해주겠다고 공언하면서도 과연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가에 대해선 아리송하다. 한데 고인은 보편적이지만, 추상적이고 공허하지 않게 행복하기 위한 길(방법)을 시종일관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 온 거지. 그렇기 때문에 보수 성향을 지닌 사람도 인정하고 그리워하는 것 아닌가 한다. 더불어 고인은 의견이 다른 사람이라도 어떻게 포용하고 또 어떻게 친절하게 대할 수 있을지 몸소 알려준 분이기도 한다.

극의 많은 부분을 인터뷰 영상과 자료화면으로 구성하면서 연출적으로 신경 쓴 지점은.
노회찬 의원의 연설이나 토론 또 그가 시민들과 만나는 모습 등 영화의 반 이상이 자료 화면인데, 여기에 담긴 그의 이야기가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됐으면 하는 생각이 컸다. 관객이 직접 공적 및 사적인 자리에서의 그의 목소리를 들다 보면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의 진심이나 본심에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맥락이 형성되도록 자료를 배치하는 데 신경 썼고, 관객이 차근차근 그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인터뷰 역시 배치했다.

봐서 알겠지만, 6411버스 연설 앞에 아내 김지선씨의 인터뷰가 나온다. 가정에 소홀한 남편에게 실망하기도 했지만, 결국 어떻게 설득당한지에 관해서 말이다. 그가 진심으로 활동했고 또 그렇게 다 해내려다 보니 가정에 소홀해진 것인데 미안해하면서도 아내를 이해시키는 이야기 뒤로 6411번 연설을 배치함으로써 단순한 달변의 연설이 아니라 버스의 주요 승객인 청소 및 버스 노동자를 향한 진심이 느껴지도록 노력했다.

43명의 인터뷰이와 200시간 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들었다. 촬영하면서 처음의 의도(기획)와 달라진 면이 있다면.
인터뷰를 하면서 고인의 약점 혹은 실수 등에 관한 일화가 하나쯤은 있을 거로 예상했는데, 없더라. (웃음) 원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분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그만큼 관리에 철저한 분일 수도 있을 거다. 정치인으로서 관리를 잘했고, 실제로도 바른생활 사나이 같은 측면이 있는 분이더라. 그래서 인터뷰보다는 공개된 영상을 통해 그의 마음으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인 김지선씨는 처음에는 인터뷰를 거절하다가 나중에 허락하셨다. 사적인 얘기는 못 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찾아갔는데 김지선씨가 허락해줘서 좀 더 감성적인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다.

고인의 말과 행동 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을 꼽는다면.
인터뷰를 하면서 고인이 외로웠겠다 싶었다. 지인들과 즐거운 이야기는 해도 괴로운 일은 나누지 않는 것 같았다. 평소 지인들은 고인과의 약속을 기다렸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만나면 우울했던 마음이 즐거워져서 돌아오기 때문이라는 거다. 토론에서 보듯이 매우 달변에 분위기 메이커였다고.

기억에 남는 말은 서울시장 선거운동을 하면서 ‘지금 이 표는 사표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표’라고 한 이야기다. 왜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를 아무도 안 했을까, 우리가 좀 더 미래를 위한 투표를 해왔다면 한국사회가 조금은 다른 모습이 아닐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에 와닿았다. 모든 정치인은 자기에게 투표하라고 하지 않나. 가장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제작 기간과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지난해 8월에 착수해 인터뷰 촬영은 12월부터 2개월 정도 진행했다. 전주국제영화제 제작 지원작이라 영화제까지 기한을 맞춰야 했는데 물리적으로 가능한 시간이 아니라서 일단 영화제 버전을 만들어 상영했다. 이후 다시 한 달 넘게 촬영을 이어갔고, 김지선씨 인터뷰도 이때 진행했다.

이번 개봉 버전과 영화제 버전의 차이점이 있다면.
영화제 버전은 거의 3시간 분량으로 이번 버전과는 사실상 다른 영화라고 봐도 좋을 정도다. 진보정당 운동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조금 더 거리를 두고 고인을 바라본다. 평소 진보정당 운동과 이를 이끌어온 사람에 대해서 뭔가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국사회, 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버티어 온 분들인데 극히 일부의 사람만 조명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누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자기의 인생을 바쳤는지 궁금했다. 이렇게 표현하면 좀 그렇지만 사실 인생을 갈아 넣은 거니까. 쉽지는 않겠지만, 그들의 삶과 역할을 조명하는 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노회찬6411> 개봉 즈음하여 전작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이야기>(2010), <미스터 컴퍼니>(2014) 최근 개봉한 <청춘선거>(2021)를 모아 특별상영을 한다고 들었다. 다큐에 담고 싶은 또 다큐를 통해 전하고 싶은 주제는 무얼까.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을 통해 좀 더 추상적이고 거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간 만든 다큐멘터리 모두 주인공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그에 감정이입하기보다는 극을 따라가면서 그 개인이 속한 세상이 보였으면 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고, 또 어떻게 세상 속에서 우리의 마음(선택)이 흘러가는지에 관심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는 재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웃음) 그런데 이번엔 극이 진행될수록 그분의 안으로 들어가고자 했다. 평소와는 반대의 흐름이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그가 살았던 세상이 좀더 보이겠더라.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한다.
명필름과 함께 김대중 대통령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다. 김 대통령을 다룬 다큐가 그간 두 편이 나왔는데 나는 이전 작품과는 다른 결의 이야기, 그러니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간적인 면모보다는 좀 더 한국사회에 근접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진보정치란.
사람이 살면서 어떤 불만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한데 어떤 사람들은 그 불만족함을 대변해줄 사람과 방법, 즉 창구가 충분한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진보정당은 상대적으로 불만을 토로할 곳이 없는 사람들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좀 더 추상적으로 말한다면 현재 세상은 불친절한 것 같다. 20년 전 길거리의 사람들이 더 친절했다고 느껴지기도. (웃음) 과거보다 물질적으로 더 잘 살게 됐는지는 모르나 정신적인 풍요는 이에 미치지 못해서가 아닌가 한다. 진보정당 활동이 확산되어 사람들에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할 어떤 여유를 심어준다면, 좀 더 친절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이번 연출을 맡기 전 사전 미팅에서 정치적 성향을 물어보길래, ‘다른 건 모르겠고, 사람들이 불친절한 건 진보정당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사진제공. 명필름

2021년 10월 20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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