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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내면에 초점 맞춘 <고요의 바다> 배두나 배우
2022년 1월 3일 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SF 시리즈 <고요의 바다>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여느 할리우드의 작품과는 달리 시각적 볼거리보다는 캐릭터 각각의 내면에 자리한 공포와 상처를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관객의 기대치와는 조금 다른 접근일 수도 있지만, 폐쇄된 달 기지로 향해 중요 샘플을 회수해야 하는 ‘송지안 박사’ 역을 맡아 연기한 배두나는 그런 특성 자체가 <고요의 바다>의 매력일 수 있다고 말한다. “히어로물처럼 인류를 구하는 얘기가 아니라 ‘정’이라든가, 사회적 메시지 같은 다른 종류의 얘길 한다. 난 그게 더 좋았다”는 배두나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본다.

<센스8> <킹덤>에 이어 넷플릭스와 세 번째 작품이다.
넷플릭스와 상의 중이라고 하면 좀 안심된다. 내가 같이 일했던 넷플릭스는 창작하는 사람에게 많은 부분을 맡긴다. <킹덤> 김은희 작가님도 그래도 투자자인데 이렇게 코멘트가 없어도 되나? 싶었다고 얘기하셨다. <센스8>도 그랬다. 감독이 하고 싶은 얘기를 맘껏 펼칠 수 있는 장을 열어주니까 호감이 간다. PPL이 없겠구나, 싶기도 하고.(웃음)

해외 활동을 꾸준히 해온 만큼 최근 K-콘텐츠의 세계적인 인기를 더 체감할 것 같다.
서서히 된 거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배우들이 내게 먼저 와서 <부산행> 봤냐고, 죽인다고 했었으니까. 다만 이렇게까지 대중적으로 K-콘텐츠가 세계에 알려진 건 처음인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피부로 느낄 것이다. 그래서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지만, 굉장히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오징어 게임>이 잘 된 건 내 일처럼 기쁘게 생각한다. 이런 일이 있네, 너무 잘됐다! 싶었다. 물론 1등이 최고는 아니지만 그래도 진짜 대단하다.


<고요의 바다>는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
배경은 달이지만 세트가 화려하거나 아주 전문적이지는 않다.(웃음) 오히려 배우 클로즈업이 많다. 캐릭터 내면과 심리묘사에 집중한 것이다. 관객이 배우의 눈빛이나 공포심 같은 감정에 집중하도록 하고, 이야기에 더 깊이 들어가서 능동적으로 그 내면을 보고 싶게 하는 면이 탁월하다. 연기도 시원시원하게 내가 먼저 표현하기보다는 관객이 더 들여다보게끔 여백을 두고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했다. 6, 7부에서 ‘송지안 박사’의 서사가 밝혀질 때까지 계속 (감정을) 눌러 담았다. 너무 딥했나?(웃음)

관객으로서는 SF장르 특유의 볼거리를 기대했을 수도 있는데.
SF 공식을 따라간다기보다는 인간에게 초점을 더 맞춘 작품이다. <킹덤>같은 작품을 사람들이 좋아해 준 이유는 서양의 좀비 세계관에 우리나라 조선 시대 사극을 끌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고요의 바다>는 (할리우드 SF물에서 많이 등장한) 달이 배경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한국인의 얘기가 들어있다. 히어로물처럼 인류를 구하는 얘기가 아니라 ‘정’이라든가, 사회적 메시지 같은 다른 종류의 얘길 한다. 난 그게 더 좋았다.

신예 최항용 감독과 처음 만났다. 배우를 믿고 연기를 맡기는 스타일인가, 섬세하게 디렉션을 주는 스타일인가.
믿고 맡기는 척하면서 세세하게 디렉션을 주는 스타일?(웃음) 감정적인 부분은 배우에게 맡긴다. 그런데 워낙 탐미적인 분이라 미술적인 디테일에서는 본인이 원하는 게 딱 나와야 하시더라.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감독님이 ‘컷!’ 하시고는 “너무 좋았구요, 눈 좀 작게 뜨고 다시 갈게요” 라는 거다. 내가 연기하다가 눈이 커지나 보다.(하하) 시리즈를 몇 편 보다보면 의무실 장면 등에서 내가 눈을 살짝 작게 뜨려고 노력하는 몇몇 시퀀스를 찾을 수 있다.(웃음)


꽤 묵직해 보이는 우주복을 입고 내내 촬영한 거로 안다. 당시의 경험을 더 듣고 싶다.
기본적으로 무거운 의상이었다. 한 번 입으면 벗기가 힘들어서 그게 좀 어려웠다. 더울 때 촬영을 시작해 추울 때 촬영을 끝냈는데, 더울 때는 에어컨에 호스를 꽂고 우주복 안에 넣어 놓을 정도였다.(웃음) 그래도 연기할 때 몰입에 도움을 주는 구석이 있다. 그렇게 무겁지 않았으면 내가 진짜 우주에 와 있는 기분은 안 들었을 것 같다. 사실 그 정도 고생은, 고생도 아니다. 20년 동안 작품 하면서 한 고생에 비하면 고생 축에도 못 낀다.(웃음)

어떤 고생이 ‘찐’ 고생인가.(웃음)
더 혹독한 일이 많았지. <킹덤>은 영하 17도에서 한복을 입고 있어야 됐다. <센스8>는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수중 촬영을 해야 하는데 그게 진짜 무섭다. 2주에 한 번씩 대륙을 횡단하면서 15개국을 돌며 촬영할 때도 있었고,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고요의 바다>는 몸이 고생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웃음) 파주에 있는 2600평가량의 스튜디오 세 채를 통째로 전세내 찍었다. 정예 대원들이 달에 가는 이야기이다 보니 보조 출연자도 없었고, 딱 우리만 움직이면 돼서 이동도 적었고 모든 게 준비돼 있었다. 야외 로케이션 촬영을 하다 보면 돌발상황이 굉장히 많게 마련인데 이번에는 편안하게 찍었다. 추울 땐 난방 틀어주고, 더울 땐 에어컨 틀어주고.(웃음)

<복수는 나의 것>(2002) <괴물>(2006) 등 지난 20년 동안 굵직한 작품에 출연해왔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선보일 신작 <브로커>에도 출연했다. 연기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을 꼽아본다면.
몇 편 있다. 첫 번째는 <플란다스의 개>(2000)였다. 그 이후로 10년 동안 (출연작의) 방향성을 제시해준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두 번째는 <공기인형>(2009)이다. 2009년에 찍고 2010년에 개봉했는데 그때부터 SF의 길을 가기 시작한 것 같다.(웃음) 세 번째는 <도희야>(2014)라는 작품이다. 내게는 또 다른 새로운 영화였다. 요즘 느끼는 건데, 아이가 나오는 영화를 연이어서 하고 있다. <도희야>도 그렇고 <킹덤>도 막판에 그렇고 <고요의 바다>도 그렇고, 내 흥미가 닿는 이야기가 바뀐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미래의 희망이 되는 어린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은가보다.(웃음)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본 적 있나.
조카가 생기고 나서 더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다. 조카들이 내게 굉장히 큰 영감을 주고, 내가 살아가는 힘이 돼 줄 정도다. 그래서 그런 얘기에 더 끌리고 몰입이 잘 되는 것 아닐까. <고요의 바다>에서도 김시아 배우의 연기를 보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건지 좀 놀랍더라. <우리집>(2019)을 다들 보셨겠지만 정말 발군의 연기 아닌가. 연기를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그 눈빛을 보면 빨려가는 듯 자연스러운 흡인력이 있다. 그때부터 빠져있어서 <고요의 바다> 때 잘보이려고 엄청 노력했다. 우리 김시아 배우님이 앞으로 꽃길만 걸으셨으면 한다.(웃음)

현장에서 본 김시아 배우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다른 배우보다 훨씬 힘들었을 수 있다. 피부색 자체가 다른 역할이었기 때문에 기본 분장이 2시간 정도 걸렸다. 야생 소녀와 같은 느낌을 주려고 손톱과 발톱을 실제로 이만큼 길러서 왔더라. 그 디테일을 다들 보셨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누비로 된 우주복을 입고 있었지만 김시아 배우는 맨발, 맨다리로 뛰어다니는 신도 많았는데 불평불만 한마디 하는 걸 본 적 없다. 정말 대담하고 담대하다. 특히 다리가 문에 껴서 우는 장면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보다 김시아 배우가 연기했을 때 완전히 색다른 영감 줬다. ‘이게 이런 느낌이구나’ 하면서 인간으로서 연민이 가게 됐다.

본인이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보면 알겠지만, 되게 고지식한 편이다. 화장을 안 해야 되는 장면에서 화장하는 걸 이해 못 하는 사람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보면 그런 면에서는 좀 철저하다. 배우는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관객에게 잘 전할 수 있도록, 가상의 공간과 이야기를 현실에 있을 법한 것처럼 보여주는 사람이다. 더도 덜도 아니고 딱 그게 배우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이 그걸 재미있게 보다 보면 그간 당연하게 생각하느라 놓치고 지나간 무언가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해보게 되는 게 영화의 순기능인 것 같다.

다음 작품 일정은.
차기작은 2022년 1월 중순에 들어간다. <도희야>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의 두 번째 작품에 함께한다.

사진 제공_넷플릭스


2022년 1월 3일 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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