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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품 하는 요즘, 행복해” 넷플릭스 <모범가족> 박희순 배우
2022년 8월 24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마이 네임>의 ‘무진’으로 시선을 사로잡으며 인기몰이한 박희순이 또 다른 조폭인 <모범가족> ‘광철’로 돌아왔다. 캐릭터 중첩 혹은 이미지 소모라는 일각의 시선도 있지만, 잘하고 어울리는 역할을 굳이 피할 이유가 있을까! 좋은 작품과 좋은 캐릭터를 단지 ‘겹친다’는 이유로 마다할 수는 없다는 박희순, 자칭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이라는 그를 화상으로 만났다. 섹시하다는 말에 당혹스럽고, 콤플렉스인 목소리가 매력 포인트로 꼽히는 이유도 잘 모르겠다는 그의 말을 들어본다.

같은 조폭이라도 결이 달라

“<마이 네임>을 한창 촬영하던 중 <모범가족>의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잠시 고민했지만, 캐릭터도 다르고 작품 분위기도 달라서 하기로 했죠. 배우가 작품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좋은 캐릭터, 좋은 작품이 들어왔는데 겹친다고 안 하기는 힘들어요.”

<마이 네임>의 무진으로 ‘섹시 중년’이라는 애칭을 받은 박희순, 이번 <모범가족> 역시 조폭 캐릭터인 ‘광철’을 연기한다. 이미지 소모나 고착화를 우려하는 물음에 이같이 답한다. “아마도 <마이 네임> 오픈 후라면 안 했을지도 몰라요. 다행히 무진과 광철을 다르게 봐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후회는 없고요, 다만 건달 역은 당분간 좀 쉬어야죠.”라고 웃으며 덧붙인다.

그의 말대로 무진과 광철은 ‘결’이 다른 조폭이다. “무진은 굉장히 뜨거운 인물이에요. 감정의 폭이 큰 데다 가슴 속에 많은 비밀과 욕망, 생각을 숨겨두고 있어요. 반면 광철은 그냥 메마르고 건조한 사람 같아요. 가족을 가져본 경험이 없는 그는 ‘가족’과 ‘행복’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반문해요.” 한마디로 광철은 가족의 존재를 갈구하는 인물이다. 연출을 맡은 김진우 감독은 ‘광철은 결핍에서 기인한 악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가족에 의한 사랑과 행복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막연한 동경이 있어요. 그 동경이 가족을 갖고 싶다는 욕망으로 발전합니다. ‘용수’(최무성)를 형님으로 모시고 맹목적으로 수용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다 결국에는 배신당하죠.”

“결핍만이 아니라 그가 느끼는 외로움, 쓸쓸함, 공허함 등 모든 감정이 가족에 대한 동경에 기인해요. 잘 보면 그가 가족사진을 물끄러미 보는 신이 많은데요, 이런 장면을 통해 그의 내면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돈가방을 훔친 ‘동하’(정우)를 죽이지 않고 마약 운반책으로 삼은 것도 단지 돈벌이를 위해서라기보다 동하네 가족을 깨지지 않게 지켜주고 싶은 심리의 발동이라는 것이다.

“광철은 자기의 바운더리 안에 동하를 넣고 계속 지켜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이러니한 상황이죠. 단선적이 아닌 복합적인 인물로 보이려 노력했어요.” 직접적인 언급이나 대사는 없지만, 동하의 조력자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등 다층적인 면을 보이는 것을 큰 방향으로 삼았다.

결핍에서 비롯한 악인이라는 점에 감독과 뜻을 같이했다는 박희순, 그가 이번에 연기하는 데 있어 중점을 둔 지점은 바로 ‘힘 빼기’이다.

“감독님께 ‘열연’하지 않고 힘 빼고 대충하겠다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알다시피, 모든 일이 그렇지만 힘을 뺀다는 게 사실 어렵잖아요. 너무 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또 대충하는 거로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그 선을 지키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적절한 선을 지키고자 조금, 많이 고민했다는 그이다.

코엔 형제와 가이 리치 사이 어딘가

“가족얘기인 줄 알고 대본을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점점 사건이 커지면서 너무 흥미로운 거예요. 돈가방을 놓고 벌어지는 이야기는 그간 많은 영화에서 다뤄졌기 때문에 과연 어떤 ‘폼’으로 가져갈지 굉장히 궁금했습니다.” 박희순이 <모범가족>을 접한 순간 매력을 느낀 지점이다.

“가령, 완전히 소동극같이 가이 리치 스타일의 빠른 화면으로 갈지, 코엔 형제의 <파고>처럼 묵직하게 갈지 또 오락성과 작품성 사이에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 궁금했어요. 저는 양쪽이 조금씩 섞였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과연 보니 <파고>쪽으로 가닥을 잡으셨더군요.”

<모범가족>은 소심하면서도 고집이 센, 돈이 절실히 필요한 중년 가장 ‘동하’(정우)가 얼떨결에 마약 조직에 상납할 돈가방을 가로채면서 촉발되는 이야기다. 조직의 이인자 ‘광철’은 돈가방의 행방을 쫓다 동하를 발견하고, 그를 파묻기보다는 마약 운반책으로 이용하기로 결정한다. 속사정이야 어쨌든 대학교수인 동하네 가족은 겉보기로는 완벽한 모범시민이니까!

“정우씨는 정말 연습벌레예요. 모든 장면에서 자기 열정을 불태우는 친구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카메라를 들이대도 본인의 연기가 나올 준비가 돼있어요. 제가 어떤 연기를 하더라도 받아줄, 흔들림 없는 매우 단단한 배우라고 생각해요. 호흡이야 뭐, 당연히 좋죠.”

“최무성 형님과는 영화 <세븐 데이즈>(2007) 이후 정말 오랜만에 뭉쳤는데요, 여전히 너무 좋은 분이죠. 연기도 좋고요. 근데 그때에 비해서 두 배로 커지신 것 같아요. (웃음) 김성호 배우는 연기를 얼마나 얄밉게 잘하는지 정말 한 대 때려주고 싶었습니다.”

‘개 키우겠다고 가족을 버릴 수는 없지 않겠냐’는 ‘용수’(최무성)의 말에 ‘광철’(박희순)이 허탈하게 웃는다. 가족을 갖고 싶어서 조직에 투신해 형님께 충성했건만 돌아오는 건 한낱 개 취급이다.(feat 강준(김성호) “매형(최무성)! 저 자식 묻어버립시다!”)

동하의 아내 ‘은주’(윤진서)는 ‘광철’의 조직에 잠입했다가 죽은 언더커버 형사와 모종의 관계에 있고, 그의 행방을 애타게 쫓는 또 한 명의 형사 ‘주현’ (박지연)이 있다. <모범가족>의 등장 인물은 모두 삶에 찌들었고, 퇴로는 오리무중이다. 이런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인물의 절망에 가식적인 희망을 주입하려 하지 않는 점이 <모범가족>의 매력적인 서사 중 일면이다. 흥미로운 캐릭터와 내러티브 외에도 뛰어난 영상미와 이질적인 컨트리풍 음악은 이야기를 한층 풍성하게 이끄는 빼놓을 수 없는 공신이다.

“새벽과 해질녘 촬영이 많아서 찍을 때는 좀 힘들었는데 결과물을 보니 정말 만족했습니다. 무엇보다 음악이 이질적이면서도 캐릭터의 감정과 내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것 같아요. 굉장히 한국적이면서도 약간은 이국적인 느낌이 혼재된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섹시하다는 말 부끄러워

글로벌 히트 친 <마이 네임>의 ‘무진’역으로 박희순은 ‘섹시 중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섹시라는 게 저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어요. 지금도 ‘왜?’라는 생각이 들어요. 상의 탈의를 했다고 해도 저보다 몸 좋은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분들이 훨씬 멋있는데 말이죠.” 섹시하다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쑥스럽고 창피해 죽겠다는 박희순이다. 그럼에도 어찌됐든 관심에 감사하고, 덕분에 좋은 작품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그, 쑥스럽지만 ‘섹시’를 받아들이기로 했단다.

“목소리에 콤플렉스가 많아요. 저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제 독특한 목소리를 매력 포인트로 꼽아주는 분들이 계셔서 (그 이유가) 저도 궁금합니다.”(웃음) 매력을 자평해 달라는 질문에 어렵게 꺼낸 답이다.

“배우는 대중 예술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연기가 직업이잖아요. 여러분이 직장을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공백이 생기면 한마디로 백수예요, 굶어 죽죠. 이렇게 일이 끊이지 않고 들어와서 고맙고, 또 들어올 때 해야 하는 부분도 있어요. 일이 없으면 하고 싶어도 못 하잖아요.” 1970년생으로 1990년 연극으로 데뷔한 이래,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온 그이다. 연기를 계속하게 하는 동력에 대해 그는 ‘직업’이라고 답한다.

“젊었을 때는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성격은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지만, 일에 있어서 만큼은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이 먹으니 조금 겁이 많아진 건 확실해요. 반면 조금 더 내려놓은 부분도 생겼어요. 앞으로 정말 하고 싶고, 너무 좋다고 생각하는 작품이 있다면, 용기내서 도전할 것도 같아요.” 도전을 위한 도전은 지양하지만, 이전보다 좋은 작품이 조금 더 많이 들어오는 요즘,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박희순’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대체로 좋은 사람이고 싶어요. 사실 좋은 사람이라는 건 상대적이라, 어떤 사람한테는 내가 좋은 이미지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나쁜 이미지일 수도 있잖아요. 마냥 좋게 보이려고 하진 않고요, 그냥 제 있는 대로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2년 8월 24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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