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화에서 스토리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배경이다.
90년대 초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맨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것은, 만화가 튼튼하다는 느낌이었다.
너무나도 유명한 토토로의 나무자라는 장면을 예를 들면,
결국 줄거리는 애들이 기지개를 펴면서 나무도 함께 자란다는 것인데. 이 부분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냈다.
'배경맨'이 배경이 되는 소품을 제대로 그려주면 스토리가 더 살아난다. 배경이나 의복이 제대로 그려져 있다면 만화의 느낌이 더 살아 나지만, 이 부분이 약하게 표현되어 있으면, 느낌이 죽는다.
라스트 사무라이는 이 부분이 흠잡을 데 없이 탄탄하다. 복색과 건축물을 완벽하게 신경을 쓴 것인지는 개인적으로 고증할 능력이 없으므로 알 수 없으나, 일개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는 화면이 딱 짜여진 느낌이 든다.
영화의 한 장면을 묘사해보자.
1. 스님들이 일렬로 서서 예식을 행하고 있다.
2. 가츠모토가 조용히 걸어나온다.
3. 마을에 번개가 친다.
4. 비를 바라보며 칼을 차고 먼 곳을 응시한다.
5. 톰크루즈가 누운 곳에 낙수물이 떨어진다.
6. 아이가 문을 닫느다.
7. 톰크루즈가 지긋이 눈을 뜨고 바깥을 본다.
8. 아이들이 식사를 한다.
9. 일본인 부인이 문을 닫는다.
10. 드디어 "왜 저런 미개인을 들였는가" 라는 한 마디가 나온다.
(2) 사람이 그 사람의 운명을 뛰어 넘을 수 있는가.
너무나 식상한 주제일 수 있고, 영화의 대부분이 다루는 주제이기도 하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자리잡고 있는 주제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과연 나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가.
이 부분을 뛰어난 개연성을 바탕으로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라스트 사무라이의 주인공들은 우리들 처럼, 사회적 굴레에 속박되어 있다.
예를 들어서 다음의 주인공들은 개인적 선택의 영역에서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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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의 네오 - 파란약을 먹으면 그만이다.
슬램덩크의 강백호 - '단호한 결의'라는 것이 안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 얼마든지 있다.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 감옥을 탈출하지 않을 수도 있다.
등등의 사람들은 개인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이건 하나의 해프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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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라스트 사무라이의 주인공들은 우리들 처럼, 사회적 선택을 하고 있다.
내가 가츠모토라 하더라도 그런 결정을 할 수 밖에 없다.
전세를 뒤집을 수 없으면 도망을 가야 하는데, 도대체 도망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내가 톰크루즈라 하더라도 그런 결정을 할 수 밖에 없다.
'네가 여기서 죽을 필요는 없다'라고 하지만,
'나는 이미 예전에 죽었어야 했다.'라는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이가 그렇게 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위해 나간다'라고 말해놓고 나왔다.
자기가 죽인 사람의 부인이 자신을 위해 직접 옷을 입혀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을 사무라이라고 인정해준다.
그 상황에서 자기가 빠질 수는 없다.
가끔 물고문을 당하고 전기고문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나라면 그냥 빨리 불어버린다. 왜 뻔히 괴로와서 자백을 할 것을 알면서도 고문을 당하는가.
왜냐하면,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직업을 가진다는 것도 일종의 고문이다. 나가고 싶지만, 나갈 수 없는 것
과연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거스를 수 있을 것인가. 뻔히 보이는 죽음앞에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 점이 이 영화에서는 아주 잘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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