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레이서>에 정지훈의 캐스팅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워쇼스키 형제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지만 그 당시 그들이 기획하는 새로운 영화 <닌자 어쌔신>의 단독 주연 확정이라는 소식은 더 놀라운 충격이었습니다. 정지훈은 가수이자 연기자로 우리나라 TV 드라마에서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기도 했지만 백댄서에서 월드스타가 되기까지 그가 보여 준 열정은 새 영화에서도 분명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란 점에는 확신이 있었죠.
어쩌면 다행스럽게 정지훈이 연기해야 하는 배역은 내면의 연기에 비해 몸으로 보이는 연기가 더 필요한 배역이었습니다. 부모를 잃고 암살 집단에서 닌자로 커가는 라이조(정지훈)는 '오즈누파' 중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가진 채 성장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념과 행동에 반기를 든 인간미를 갖춘 기리코의 죽음을 통해 오즈누파임을 거부하고 서로간에 칼을 겨누는 복수의 대상으로 바뀌어 피튀기는 잔혹극의 서막이 오르지요. 이를 연기하는 정지훈은 그가 만든 몸의 완성도에 비해 연기력과 대사 능력은 보완할 점이 있어 보이긴 합니다.
최고의 강렬한 오프닝으로 유명한 <고스트 쉽>과 최근 작품 <데스트 네이션 4>처럼 야쿠자의 머리가 가로로 잘리는 것으로 시작한 충격적인 오프닝은 앞으로 <닌자 어쌔신>이 어떤 영화일지를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굳이 이렇게 까지 피로 채울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이지만 제임스 맥티그는 최고의 암살집단인 '닌자'라는 존재의 강렬한 인상을 서양인들에게 심어 주기 위한 의도로 잔혹한 영상을 선택한 듯 보입니다. 그러나 홰손된 신체가 정신력만으로 복원되거나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움직임은 지나치게 동양 무술이나 정신세계를 과장하여 신비주의 존재로 몰아가는 것은 동, 서양의 시각차를 절감하기도 하지요.
영화 배우들이나 스토리를 보면 알 수 있듯 <닌자 어쌔신>은 작품성을 기대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가령 라이조가 오즈누의 복수를 위해 살리려 고군분투하는 미카의 존재는 그리 강력하거나 권력을 갖지 있지 않습니다. 무술 실력에서 라이조가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가졌어도 오즈누파의 수많은 사람들과의 대결 장면도 그렇고 막강한 타케시(릭윤)와의 대결이나 최강 오즈누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과정도 사실적이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닌자 어쌔신>은 작품성 이상의 희열을 줍니다. 정지훈이 연기해야 하는 캐릭터가 일본을 대표하는 고유 무술 집단이라는 점이 국민 감정을 해친다는 우려섞인 시선도 있지만 그런 역할을 일본인을 제치고 우리 배우가 연기해 전 세계에 알린다고 생각하니 그리 나쁘지만은 않게 보입니다. 또한 정지훈이 한국배우 최초로 할리웃 단독 주연을 했다는 의미에서도 기분 좋은 일이구요.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열정을 높이 본 다른 영화 감독의 더 작품성있는 영화에 출연하게 되겠지요. 그 때엔 다른 나라의 것이 아닌 우리 고유의 캐릭터를 정지훈이 직접 연기해 전 세계인에게 알리게 될 날도 머지 않았다고 보니 조금 아쉬운 이번 영화가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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