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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의 허무함에 수많은 것들을 놓치다. 의형제
gantrithor 2010-02-11 오후 9:15:28 1440   [0]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읽지 말아주세요

 

 

 

 

 

 

 

1.외모

 

 대한민국 인간미의 대명사 송강호와 눈망울로 모든 것을 녹이는 강동원. 이 두 케릭터가 처음으로 만났다.

게다가 현실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을 대변하는듯한 이 두 케릭터가 그에 걸맞게 남북의 케릭터를 각각 연기한댄다.

말만 들어도 시선이 집중되고 설레는 조합이다.

게다가 '영화는 영화다' 로 각종 상을 쓸어담은 장훈 감독의 작품.

이 영화, 분명히 작품성과 오락성을 동시에 잡으려는 영화이고, 그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킬 것 같다.

흥분된다.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한국 영화 한 편 나오겠구나.

현 극장가는 아바타의 돌풍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괴물' 기록을 깨는 것도 시간문제라는데 깨질 때 깨지는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외화가 역대 흥행 1위라는건 왠지 모르게 속상하다.

이 영화 보는 사람이 필자 말고도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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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어쨋든 그런 식으로 망설임없이 선택할 만큼, 영화 '의형제' 는 설레는 외모를 가졌다.

 

 

 

2.기대

 

 그런 외모를 가졌으니 이 영화가 막 시작할 때의 기대감을 말로 표현할 수 있었겠는가.

특히나 필자는 영화가 그리는 시대적 현실에 가장 심하게 흥분하는 타입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오래간만에 등장하는 '제법 규모가 있는' 남북 이야기이다.

현실과 환상의 양 극단에 선 이 두 케릭터가 어긋난 남북의 현실을 과연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박찬욱 감독의 '마더' 이후로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가슴이 두근거린건 처음이다. 두근두근두근.

 

 그런데 웬걸, 영화가 중반 이후로 넘어갔을 때 난 깨닫고야 말았다.

이 영화는 전혀 남북 이야기를 주축으로 삼은 영화가 아니었다!

이 영화는 제목의 첫글자 '의' 를 위한 영화였고, 남북관계는 그것을 증폭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두 케릭터를 통해 어긋난 이념의 만남을 보고 싶었던 필자의 최대 관심사는 이 대목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 역시 영화를 볼 때 기대가 크면 안된다는걸 깨닫는 순간이다.

이렇게 되면 이 영화의 주제는 예상하고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될 게 분명하다.

 

 

 

 

 

 

3.배우

 

 이렇게 된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 배우에 집중해서 영화를 보는 수밖에.

그나마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한국 최고 중 둘이다. 설마 남은 시간을 지루하게 하지는 않겠지.

필자는 영화의 중반 이후부터 모든 신경을 두 배우에게 쏟는다.

과연, 내용 생각 안하고 배우의 얼굴만 봐도 빠져든다. 

 

 언제나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송강호는 이미 평가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대가' 에 속하니

강동원을 좀 더 주의깊게 보자. 제법이다. 일관된 눈빛은 여전하나 표현하는 감정은 결코 한가지가 아니다.

연출의 도움도 어느정도 받았기에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플 때 아플 줄 알고, 즐거울 때 즐거울 줄 아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눈물이 가득 고인 눈망울에서는 더이상 초짜 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극 중 송지원을 살리는 데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단 강동원의 외모가 도무지 처자식이 딸려있는 가장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기도 하고 

이 송지원이라는 인물 자체가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궁극적 이유는 어설픈 해피엔딩 때문인데 이것은 이후에 설명하겠다)

 

 

 

 

 

 

4.조합

 

 어느 정도의 불협화음을 예상했었는데 의외로 괜찮다.

때가 충분히 묻었음에도 죽지 않은 송지원의 순수는,

처음부터 따스했기에 차가워질 수 없는 이한구의 '인간' 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 대목에서 느낀 것이 있다면, 강동원이 작품에서 겉돌지 않은 이유가 바로 송강호 덕분이라는 것이다.

송강호란 배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미스테리다.

모두를 자신에게 녹이고, 모두를 자신보다 높게 두면서, 모두를 자신보다 낮게 만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두 배우가 자연스럽게 조합된 것은 미스테리한 송강호의 힘이다.

송강호가 평가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레벨의 배우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어쩔 수 없이 손해보는 것은 강동원 쪽이다.

 

 

 

 

 

 

5. 송지원

 

 강동원이 연기한 송지원은 이한규 옆만 벗어나면 자의식을 잃은 혼란스러운 인물이 되어버린다. 

일단 자수를 하지 않고 버티는 이유가 정확히 뭔지를 모르겠다. 

작품 속에서는 아직 북측의 처자식을 탈출시키지 못해 그렇다고 설명하지만 

그것으로는 변절자를 만날 때 '배신자' 라고 부르짖는 광기어린 눈빛과 양립할 수가 없다.

송강호와 함께 지내면서 서서히 간첩의 임무를 벗고 남측의 소시민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영화의 최종반부 생사의 기로에서 '나는 조국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에게 주입된 북측의 사상, 간첩의 임무, 처자식을 보고 싶은 인간적 욕망, 한규에게서 느끼는 '의'......

그 모든 것들 사이에서 계속적으로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해야 했던 송지원.

 

그는 과연 조국을 위해 움직이는 냉혹한 간첩이었을까?

아니면 처자식을 사랑하고 의를 지키려는 따뜻한 인간이었던 걸까? 

이도저도 표현해내지 못했는데 죽지도 않고 살아남아 행복해하니 이건 또 뭘까?

 

 

 

 

 

 

 5. 결말

 

 정체를 드러낸 이한규를 인정함으로서

자신이 어느정도 간첩의 의무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증명한 이후에도

송지원은 '그림자' 가 행하는 암살작전에 또 한번 참여하게 된다. 

북측에 아직 딸과 아내가 억류되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한 것이기도 하고,

아직 당을 배신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정원 직원들의 설득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송지원은 암살작전 도중에 '그림자' 가 당의 명령으로 남파된 것이 아니라

독단적으로 왔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내 '그림자' 에게서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

그리고 그 와중에 아내와 딸이 죽었다는 말을 듣는다 (죽었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그런 뉘앙스로 말한다) 

 

송지원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극의 모든 주제가 결정되는 이 순간,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그림자' 와 함께 죽는 것을 택한다. 

하지만 이후 죽는 것은 '그림자' 뿐이며

그는 생사에 기로에서 피를 잔뜩 머금은 목소리로 '나는 조국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한다.

 

 그리고 그 이후는 다들 말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해피엔딩이다.

송지원은 영국행 비행기에서 아내와 딸과 함께 행복하게 웃는다. 새롭게 생긴 의형제 이한규와 함께.

 

아 도대체 송지원이 원하는 건 뭐였단 말인가.

아내와 딸이 아무 탈 없이 잘 살아있다는 것은 그렇다 쳐도,

죽는 순간까지 조국을 배신하지 않았다고 고집부리는 송지원이

저렇게 행복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웃을 수 있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냥 살아있다는 것, 행복한 것만이 중요한 것인가?

 

 

 

6.정리

 

 영화에서 최종 20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정도일까? 

필자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반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길어야 3시간 남짓인 단막극에서 최종 20분을 제외하고 호불호를 따질 수 있다면

건 극에서 스토리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하물며 이 영화는 이야기의 결말에 모든 힘을 쏟아붓는 스릴러 장르에 속한다.

이는 영화 '의형제' 가 내용 전개가 어쨋든, 구성이 어쨋든, 배우의 연기가 어쨋든간에

결말 부분이 부족하다면 영화로서 부족하다는 얘기다.

 

소외받은 자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

송강호와 강동원의 조합이 보여주는 예상 외의 괜찮은 기류,

집중도를 올리는 화려한 비주얼과 스케일,

이 영화는 분명히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강동원이 보여준 단적인 케릭터로는 송지원을 표현할 수 없었다는 점, 

더 높은 작품성을 위해 이야기의 주체가 되었어야 했을 남북의 이념이

단순히 '의' 를 돋보여주는 장치에 불과했다는 점, 

그리고 혼란스러운 송지원을 아예 묻어버린 어설픈 해피엔딩은

이 영화를 (필자가 말하는) 수작에 반열에 올릴 수 없게 만들었다.

 


(총 0명 참여)
naredfoxx
재밌게 잘 봤어요~ 강추~!!   
2010-02-15 13:08
onesik
잘 읽었습니다   
2010-02-14 13:29
boksh3
감사요   
2010-02-12 15:12
snc1228y
감사   
2010-02-12 10:33
kim31634
이거 잼있던데 ㅋ   
2010-02-11 22:38
foralove
잘 봤습니다. 수고 많으셧습니다.   
2010-02-11 22:06
1


의형제(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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