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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헤드 그들만의 전쟁 자헤드
sunjjangill 2010-09-28 오전 6:49:08 696   [0]
1961년, 독일에서 아이히만의 재판이 열렸다. 아이히만은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이주 담당자로서 유태인 학살에 앞장 선 사람이었다. 이 재판장에 한 여인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한나 아렌트. 그녀는 유태인 학살을 주도한 그의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 재판장에 나왔다. 호위를 받으며 아이히만이 나왔다. 얼굴엔 악독한 미소가 가득했으며 여전히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은 탐욕스러운 모습이었다……라고 해야 하나 그는 지하철 역에서 구걸하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흰 머리와 주름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으며 겁에 잔뜩 질려 있었다. 악마가 평범한 노인이라니. 재판에서 충격을 받은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하며 <정신의 삶>을 저술하게 된다.

2005년, GOP부대에서 홀로 코스트가 벌어졌다. 북한군이 자행한 학살이 아니었다. GOP내부 반 소속 모 일병이 자고 있던 내무반에 M16을 갈겼다. 잠자고 있던 많은 군인이 죽었다. 그는 M16을 연사 한 뒤, 수류탄을 터뜨렸다. 확실한 홀로 코스트의 한 장면이다. 중대장도 죽인 그는 곧 체포되었다. 조선일보 기사에 그의 얼굴과 이름이 나왔다. 가냘픈 체구에 은테 안경, 뽀얀 피부를 지닌 너무나도 소심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가 내무반 동료들을 몰살시키고자 했던 악마였던 것이다. 아렌트 식으로 얘기하면 이 친구는 사유하는 능력이 없는, 판단력이 부족한 ‘악의 평범성’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GOP란 공간을 살펴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들은 전쟁을 하기 위해 이라크에 왔다. 한국의 청년들도 북한군의 침공을 막기 위해 군대에 간다. 하지만 그들은 실망한다. 전쟁은 없다. 매일 같은 일상일 뿐이다. 40도가 넘는 더위에 방독면 마스크를 쓰고 훈련한다. 굶주린 성욕은 동료들과의 퍼포먼스로 날려버린다. 가끔 술을 마시고 포르노를 본다. 다시 훈련을 한다. 보초를 선다. 그 곳에서 느끼는 지루함은 술을 마시며 광기로 표출해버린다. 일부는 화장실 분뇨를 치운다. 죽이는 건 적이 아니라 낙타다. 한국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북한군의 위협은 없다. 매인 같은 일상이다. 말 그대로 ‘좆뺑이’만 친다. 훈련을 위해 장비를 준비한다. 훈련하고 장비를 정리한다. 다시 준비하고 훈련하고 정리한다. 보초를 선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잡초를 뽑는다. 하지만 그들에겐 술도 포르노도 없다. 일상의 지루함을 밖으로 배출시킬 광기도 표출할 수 없다. 그렇게 ‘갈굼’이 탄생한다. 그들이 술 먹고 표출한 광기를 한국 청년들은 후임 병에게 표출한다. 그 형태는 주로 강한 폭력의 성향을 띤다.

여기서 그들은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 <자헤드>의 주인공들이다. 주인공 제이크 질렌홀은 중령이 싼 똥을 치우다가 미쳐버린다. 술과 포르노로도 방출할 수 없는 광기에 사로잡힌다. M16으로 동료를 죽이려 했다. 영화 <알포인트>의 등장인물들이 서서히 미쳐가듯, <플래툰>의 군인들이 적이 아닌 동료를 죽이듯, <자헤드>의 인물들도 전쟁 없는 전쟁터에서 미쳐간다. GOP의 악마도 마찬가지였을터. 광기를 방출할 길이 없다. 아니, 오히려 배출된 누군가의 광기를 받아줘야 한다. 동료들의 똥도 매일 치워야 했다. 나갈 수 있는 곳은 없다. 제이크 질렌홀이 미쳐가듯, 우리의 악마도 폐쇄적 공간에서 서서히 미쳐간 것이다. 그가 과연 사유의 힘을 기르지 못해서 미쳐간 것일까? 판단력이 굳건하지 못해서? 그렇다면 <7월 4일생>의 주인공 론은? <하얀전쟁>의 한기주는? 제이크 질렌홀은? 모두가 판단력 부족으로 평범한 악으로 환생한 것인가?

제이크 질렌홀은 카뮈의 <이방인>을 읽는다. 해답은 거기에 있다. 그들은 전쟁을 하러 왔다. 한국 청년들도 전쟁을 하기 위해 왔다. 하지만 전쟁은 없다. 정치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인가?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는가? 그렇다. 그들은 모두 시시프스였다. 곧 떨어질 바위를 산 꼭대기에 올려야 하는 시시프스처럼 전쟁이 없는 곳에 있는 군인들도 무의미한 노동, 소위 ‘뺑이’를 계속 쳐야만 한다. 모두가 전쟁 없는 군대에서 부조리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렌트의 이야기를 조금 고쳐보자. 우리 모두는 샤르트르가 아니다. 그런 부조리에서 고매한 이성과 판단력을 발휘할 만큼 정신이 단련되어 있지 않다. 극도의 부조리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리고 그 앞에서 우리는 서서히 미쳐간다. 미치지 않는다면 이미 그 부조리에 익숙해졌을 뿐이다. 그 광기의 형태는 다양하다. 하지만 주로 폭력의 형태를 띤다. 그 때 발생한 폭력, 그것이 바로 아렌트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평범한 악으로 탄생한다. 아이히만도 모르는 일이다. 그가 군대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과 지독한 갈굼 속에 미쳐버렸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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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헤드(2005, Jarhead)
제작사 : Universal Pictur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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