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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가 칼을 뽑은 사연 황혼의 사무라이
kharismania 2007-01-24 오전 4:10:23 788   [2]
흔히 우리가 아는 사무라이는 일본의 무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그 사무라이가 애초에 귀인의 경호원을 지칭하는 근원적 의미로 해석하자면 그리 틀린말은 아니다. 하지만 헤이안 시대 이후 지위가 높아지기 시작한 무사계급, 즉 사무라이들은 그 의미 역시 지위의 상승과 함께 상승하여 단순히 형태를 의미하는 단어가 아닌 지위를 상징하는 단어로 쓰이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양반처럼 사무라이는 메이지 유신 전까지 일본의 사회에서 하나의 고위 계급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이게 되었다.

 

 시대극에 정통한 후지사와 슈혜이의 원작을 동명 그대로 극영화한 이 작품은 사실 02년 일본에서 이미 개봉되어 평단과 일반 관객들에게 큰 찬사를 받으며 그 이듬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까지 노미네이트된 작품이다. 하지만 일단 이런 외적인 효과만으로 이 영화를 선택하는 것은 일단 금물이다. 그것은 일본과 우리의 문화적 정서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문제다.

 

 일단 이 영화를 선택하려 한다면 몇가지 동의가 필요하다. 타문화의 낯선 모습을 존중할 줄 알 것, 심각할 정도로 진중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견뎌낼 수 있을 것, 마지막으로 이것이 사무라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다고 해서 "자토이치"류의 액션 활극으로 채워져 있다고 오해하지 말것. 물론 왜색짙은 영화에 대해 혐오감을 지닌 이에게 경고는 무의미하다. 애초에 보지도 않을 테니까.

 

 시작부터 영화는 죽음을 알린다. 죽은 이의 남편같은 남자는 담담하다. 정적인 고요함 속에 흐르는 곡소리는 이 영화가 감정을 만개시켜 관객에게 극적인 향을 풍기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것이 아님을 직감하게 만드는 것만 같다. 그리고 고전적인 인트로가 지나고 아까 그 죽은 여자의 남편, 세이베(사나타 히로유키 역)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리고 그 흐름을 3인칭 관찰자의 시점에서 설명하는 여성의 목소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그녀의 회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흘러간 과거에 대한 회상. 이미 옛것이 된 무사에 대한 추억. 그것은 마치 이 영화자체가 지니는 과거적인 성격과도 맞물리는 모양새다. 

 

 아내를 잃고 두 딸과 늙은 어머니를 돌보는 세이베이는 가난하지만 나름대로 삶을 꾸리며 살아간다. 그는 황혼의 세이베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것은 집안의 어린 두딸과 노모때문에 황혼이 질 무렵 창고지기 일이 끝나면 집으로 칼같이 퇴근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 남자의 단조로운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 와중에 그와 어린시절 알고 지내던 토모에(미야자와 리에 역)와 재회하게 되고 갑작스럽게 그의 삶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바람 한점 불지 않던 그의 삶이 갈대처럼 미묘하게 흔들린다. 물론 무언가 큰 변화가 일어나거나 그의 감정이 격정적으로 돌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럴 법한 기대감이 무색할 정도로 영화는 그 정적인 감정의 구도를 유지하고 인물 스스로가 자신의 삶이 변화될 가능성을 억제하고 만류해버린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재회 뒤에 닥친 한번의 대결이 그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다. 황혼의 세이베이는 황혼의 사무라이로 불리게 되고 그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퍼진다. 그를 조롱하던 이들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정점에 있는 것은 세이베이라는 인물의 품성 자체다. 그것은 영화가 지니는 분위기 자체를 가늠하게 하는 잣대가 되고 영화의 감정선을 결정짓는 요인 그 자체이다. 사무라이로써 성공하겠다는 욕망보다는 가정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는 걸출한 검술에도 불구하고 살생이 무의미하다는 진리를 바탕으로 조용히 살아간다. 그런 그의 성향은 친구 이이누마의 말처럼 고지식할 정도다. 

 

 영화는 정통 시대극의 외양을 그대로 재현하지만 정극의 내면 묘사에서는 한발짝 자리를 옮긴다. 사무라이라는 신분안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켜가는 세이베이의 모습은 시대적인 명예보다는 개인적인 안위와 가정적인 평온함을 선택하는 인물이다. 물론 그것이 시대를 뛰어넘었다는 식의 이해로 와닿기 보다는 그 시대의 전형적인 인물상과 다른 구도를 취하고 있음이다. 그것은 급진적이진 않지만 약진적인 성향의 변화다. 결국 그것은 시대라는 구도의 평면적 기질을 인물로 인해 입체적으로 변화시키는 것과 같다. 또한 그것이 정적인 인물을 통해서 이뤄진다는 것도 꽤나 이색적이다.

 

 물론 그 시절의 명분을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하는 세이베이는 결국 성주의 명을 받고 검을 들게 된다. 자신의 삶이 죽음으로 귀결될 지 모르는 순간을 앞두고 그는 문득 로맨스를 꿈꾼다. 그토록 자신이 만류하고 외면했던 사랑이라는 욕망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꿈틀대기 시작한다. 생의 욕구보다도 사의 직전에 명예적 신념을 위해 억압했던 개인의 욕망, 즉 사랑에 대한 절실한 감정이 그 머리를 들기 시작한다.

 

 후반부의 대결씬은 이 영화의 백미인데 세이베이와 요고(다나카 민 역)의 결투는 갑작스러운 전개와 함께 그 긴장감의 증폭을 통해 정적이던 영화의 흐름을 일순간 역전시켜버리는 묘수로 작용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지극히 일본적인 영화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과거사를 통해 재현하는 사극을 타국인들이 보는 심정과도 엇비슷할 것이다. 이 영화는 분명 우리의 환경과 다른 이국의 문화안에서 이해될 여지가 많은 영화지만 그 내면에 담겨진 이야기의 중심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정서는 분명 우리가 이해못할 부류의 이국적 정서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사랑이라는 보편적 정서, 결국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가는 이 영화의 진중한 태도에 동참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그 남자의 검이 칼집을 벗어나지 않아 지루한 이들에게 이 영화는 고문이 되겠지만 그 남자의 검이 칼집을 벗어날 수 밖에 없는 사연을 목도한 이들에게 이 영화는 하나의 반향이 될 것이다.

                                                     -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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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사무라이(2002, The Twilight Samurai / たそがれ淸兵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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