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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 母子 사이에 끼어든 백색공포 레퀴엠
datura 2002-07-14 오전 1:32:18 2288   [12]
"레퀴엠"(Requiem for a dream)은 여성 나신(裸身) 묘사의 수위 등이 문제가 돼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수입 추천이 한차례 거부됐던 영화이다.

당초 미국에서도 마약 복용과 혼음파티 등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등급외"와 "R등급(17세 이하 부모 동반)" 두 가지 버전으로 공개됐다.

우리나라에서 상영되는 필름은 혼음 장면이 빠진 R등급 버전이며
여주인공 제니퍼 코넬리의 체모노출 부분은 모자이크 처리된다.

그러나 이러한 지엽적인 시비와 말초적인 화제에 집중하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기 십상이다.

관객이 주목해야 할 대목은 감독의 감각적인 화면과 현대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
그리고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다.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됐던 이 문제작은,
마약 중독 혹은 약물중독이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극명하게 묘사한다.

마약 다이어트 끝에 전기충격 치료를 받는 사라(엘렌 버스틴),
마약으로 한 몫 잡아보려다가 만신창이가 되는 사라의 아들 해리(자레드 레토),
금단 현상을 이기지 못해 매춘까지 감행하는 해리의 연인 마리온(제니퍼 코넬리)이
나락으로 급전직하하는 동안 관객들은 숨 돌릴 틈을 찾지 못한다.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위반 뒤에 어떤 것이 올지를 한 번 꿈꿔보라고 관객에게 권한다.

강렬한 시각과 청각 이미지들은 100분 내내 관객의 눈과 귀를 현기증이 일만큼 중독시킨다.

배경은 뉴욕의 코니 아일랜드.

남편을 먼저 보낸 사라(엘렌 버스틴)는 TV쇼를 보며 초콜릿을 먹는 게 유일한 낙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해리(자레드 레토)는 그 TV를 고물상에 팔아 마약을 사고,
엄마는 다시 그 TV를 되사오는 게 일이다.

사라는 다이어트 프로그램의 출연 섭외 전화를 받게 된뒤,
급하게 살을 빼려다 약물 다이어트에 빠져든다.

아들 해리 역시 연인 마리온(제니퍼 코넬리)과 마약을 함께 하면서
마약 딜러로 큰 돈까지 벌려고 하나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든다.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를 쓴 미국 작가 허버트 셀비 주니어의
동명 소설에 바탕한 "레퀴엠"은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한다.

1998년 6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든 데뷔작 "파이"로 선댄스를 휩쓴 애로노프스키는
수많은 연출제의를 물리치고 셸비 주니어의 소설을 영화화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중독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처절한 삶을 그린 이 작품은
파격적인 영상과 힘있는 연출로 수많은 찬사를 받았다.

"레퀴엠"은 내용과 형식의 불협화음에서 빚어지는 색다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다.

미국 현대사회의 병폐를 드러낸다는 묵중한 주제를
경쾌하고 재치 넘치는 영상으로 소화한 감독의 수완이 십분 느껴진다.

"레퀴엠"은 위반에 관한 영화이다.

개성있는 화법으로 마약 중독의 세계를 그렸다는 점에서
대니 보일의 "트레인스포팅"(1996)을 연상시키지만
신예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그리는 중독의 세계는 훨씬 충격적이다.

마약은 중독자의 신체와 의식, 그리고 행복을 철두철미하게 짓밟는다.

그러나 이 영화의 매력은 위반이라는 주제를 몰고 가는 강한 추진력에 있다.

"레퀴엠"은 환상에 중독된 영혼을 위한 진혼곡이자,
깨어진 꿈의 잔해에 그린 암울한 그래피티다.

대중매체의 성공신화에 중독되든 약물에 중독되든 주입된 환상은 깨어날 때 환멸로 변한다.

"레퀴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원제를 알아야 한다.

진혼곡을 뜻하는 "레퀴엠" 뒤에 "꿈에 대한"(for a Dream)이 따라붙는다.

영화는 바로 이 꿈의 실체를 파고들고 있다.

그런데 영화의 꿈은 장밋빛 희망과 거리가 멀다.
아니, 백일몽 혹은 악몽에 가깝다. 아예 꿈은 없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더욱 비극적인 건 우리가 그 악몽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헤어나려고 몸부림칠수록 오히려 더욱 깊게 빠져버리는 늪지대와 비슷하다.

영화 속 꿈이 깨진 것은 마약 탓이다.

악몽의 실체는 중독이다.

영화는 미디어에 함몰되고 약물에 절어 사는 현대인의 우울한 초상에 진혼가를 부르고 있다.

"레퀴엠"은 마약이 인간을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 지를 일사천리로 그렸다.

그러나 비슷한 주제의 90년대 마약 영화와 그 경계가 다르다.

"트레인스포팅"(1996년) 등이 마약에 기대야했던 젊은 세대의 갈등과 불만에 집중한
청춘 마약 영화였다면, "레퀴엠"은 이들의 마약 탐닉과 그로 인한 파멸을 직접 겨냥한다.

세대나 계층의 구분도 없다.

늙고 돈없는 미망인과 부랑아 연인 등 사회적 마이너리티에 국한된 듯 하면서도,
매리언이 몸 팔고 마약을 얻은 곳은 뉴욕 맨해튼 인근의 고급 사교 클럽이다.

"레퀴엠"의 백미는 감각적이고 도발적인 영상이다.

감독은 여름·가을·겨울(봄은 없다!)로 구성된 세 장에서 세라, 해리, 메리언
세 인물이 예정된 파멸을 향해 치닫는 과정을 잔인하리만큼 정교하게 교차편집해 보여준다.

TV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사라와 해리를 좌우로 나눈 첫 화면 등 분할 편집이 자주 등장한다.

상대의 몸을 만지며 사랑을 속삭이는 해리와 매리언 사이에도 수직선이 그어진다.

모자 간, 연인 간이란 가장 친밀한 사이에서도 영원한 평행선이 있어
뜻이 통하지 않는 현대인의 소통 불능을 은유하고 있다.

여기에 헤로인 흡입-아드레날린 분비-동공 확대를 묘사한 상업광고 같은 화면을
몽타주 기법으로 후렴처럼 되풀이해 보여줌으로써 작품에 독특한 리듬감과 색깔을 입혔다.

이 모습을 반복해 보여주며 다큐멘터리적 사실성을 표현하려고 한다.

TV를 묶어놓은 쇠사슬의 열쇠를 내놓으라고 다그치는 해리와 방문을 걸어 잠근채 저항하는
어머니의 언쟁, 서로의 몸을 쓰다듬으며 사랑을 확인하는
해리와 매리언의 속삭임은 좌우 화면을 분할해 처리했다.

모자와 연인의 대화는 상반된 분위기속에 진행되지만
둘다 끝까지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걷고 있다는 뜻이다.

TV가 사라의 꿈을 이뤄주는 매개물이라면 냉장고는 꿈의 실현을 가로막는 장애물.

현대 가정의 아이콘 격인 두 가전제품이 성큼성큼 사라에게 다가서며
한편으론 유혹하고 다른 한편으로 위협하는 대목은
문명이 지닌 서슬퍼런 양날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워너브라더스가 "배트맨" 시리즈 5편 "배트맨: 이어 원(Batman: Year One)"을
팀 버튼과 조엘 슈마허라는 쟁쟁한 거장에 이어 신예인 그에게 맡긴 까닭을 짐작할 만하다.

마약이 주입되는 순간의 상태를 동공, 흰색 가루, 체세포, 지폐 등의 이미지를 콜라주하여
숨가쁘게 처리하고, 이를 반복함으로써 약물에 대한 집착과 중독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워싱턴이 그려진 1달러 지폐와 주사기, 확장되는 동공과 세포조직의 움직임 등을 몽타주한
마약 흡입 장면은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약물 소재 영화보다 더욱 강력하게 관객의 뇌리에 박힌다.

해리와 타이론, 그리고 마리온의 모습을 빠른 비트의 테크노 음악과 함께
편집해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급속히 소진되어가는 젊음을 눈으로 느낄 수 있다.

다이어트에 매달리다가 급기야 약물에 빠진 사라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도 매력적이다.

그녀의 참을 수 없는 식욕을 한 번에 비워지는 다이어트 식단으로 묘사한다거나,
중독의 심화로 TV와 냉장고가 덤벼드는 환각에 사로잡히는 장면들은
재기넘치는 애로노프스키의 감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장난스러운 장면도 많다.

지나친 절식(節食)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사라의 눈앞에 과자가 쏟아지거나,
환청.환각에 빠진 사라 쪽으로 음식이 가득찬 냉장고가 괴성을 지르며 무너지는 식이다.

그럼에도 각기 서로 다른 병원에서 처참한 파국을 맞는 마지막 장면에는
어떤 작품에 못지 않는 묵직한 비장감이 흐른다.

누구나 열심히 살면 성공한다는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비꼬는 것이다.

제목부터 결말이 대강 보이는 이 영화가 시종 긴장감을 잃지않는 이유도
이처럼 중독과 탐닉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레퀴엠"의 이러한 비주얼 세례는 주인공들의 비극과 맞물려 극적 긴장을 더한다.

특히 마약에 찌든 사라 해리와 매리언이 병원과 자기 집 소파에서 죽어가는 장면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느꼈을 편안함과 오버랩되면서 그 비극적 요소가 더욱 선명해진다.

영화는 또 "마약하지 마라"는 식의 계도 대신,
마약의 중독성을 현란한 비주얼과 몽환적인 테크노 음악으로 묘사한다.

현악기의 섬세함과 테크노의 비트가 독특하게 결합된 사운드는
스토리의 비극성과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크로노스 현악사중주단이 연주한 클린트 맨셀의 고전풍 소품은
신경질적인 현의 떨림을 더해가며 중독의 덫에 걸린 현대인의 운명을 애도한다.

그러나 마약 반대의 메시지가 너무 강렬한 나머지 현대인을 중독으로 몰고 가는
매커니즘에 대한 통찰은 상대적으로 가난해 보이는 면이 없지 않다.

하버드에서 연출과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고, 명문 AFI(American Film Institute)에서 석사를 마친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98년 "파이(π)"로 선댄스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후 두번째 작품인
"레퀴엠"에서도 여전히 신선하고 도발적인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파이"는 "모든 것은 숫자로 표현된다"고 믿으며 주식시장에 숨겨진 규칙을 찾아내려는
괴짜 수학자가 코란에 숨겨진 수의 비밀을 찾는 유대교 신비주의자들에게 쫓긴다는 내용.

"파이"와 "레퀴엠"에서 나타난 위반이라는 주제와 신체훼손이라는 소재에 있어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를 연상케 하지만 미학적으로 절제되어 있어 견딜만하다.

여주인공 엘렌 버스틴의 연기는 특히 주목할만하다.

칠순의 엘렌 버스틴은 칸, 미국 아카데미, 영국 아카데미(BAFTA), 골든 글로브, 토니 등
굴지의 상을 모두 휩쓴 명배우답게 다이어트와 정신착란 과정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관록을 과시했다.

마약으로 파멸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섬뜩한 눈빛으로 보여준다.

올드 팬들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앨리스는 더 이상 여기 살지 않는다(1974)"에서
꿋꿋하게 고난을 헤쳐가는 그녀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빛나는 제니퍼 코넬리도 온몸을 던지는 연기를 보여준다.

만일 "뷰티풀 마인드" 이후였다면 감독이 혼음 장면이나 전라 장면을 요구할 수 있었을까.

"씬 레드 라인"과 "아메리칸 사이코"에서 선을 보였던 자레드 레토의 망가지는 연기도 볼만하다.

재기 넘치는 화면과 사실적인 연기에 비해 줄거리는 다소 엉성한 편이다.

마약과 다이어트의 불행한 말로를 뻔히 짐작하게 하는 구성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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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2000, Requiem for a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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