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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지 방과후 옥상
jimmani 2006-03-17 오전 9:57:17 1402   [1]

살다보면 참으로 많은 인생의 데드라인이 다가온다. 정말 머리에 피도 안마른 나같은 경우도 그 얼마나 많은 데드라인들을 거쳤던가. 학교에서 까딱 잘못을 저질렀다 싶을 때 들려오는 선생님에 "너 끝나고 교무실로 따라와", 어쩌다 바깥 나들이 가서 무례한 짓을 저지르고 난 뒤 나오는 부모님의 한마디 "너 집에 가서 보자" 등등... 그야말로 한순간에 공포의 도가니로 마구 밀어넣는 말들이다. 이런 말들을 듣게 되면 수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나들이를 끝내고 집에 갈 때까지의 시간들이 일초 일분 지나갈 때마다 어찌나 심장이 바들바들 떨리는지.

이 영화 <방과후 옥상> 역시 이러한 삶의 수많은 데드라인 중 하나를 맞이한 고등학생의 이야기다. 뭐 이 학생의 경우는 지지리 복도 없다 싶을 정도로 스스로 그 공포의 도가니에 걸어들어간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데 이 학생에게 있어서 이 데드라인은 그저 넘기면 끝일 인스턴트식은 아니었던 듯 싶다. 일단 데드라인으로 가는 과정부터가 파란만장 산넘고 물건너다.

우리의 주인공 남궁달(봉태규)은 복 없는 길을 골라서 가는가 싶을 정도로 운이라고는 벼룩의 콧물만큼도 없는 녀석이다. 정말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실험대상으로 삼아서 연구까지 할 정도로 그의 운빨은 초저공비행을 하고 있는지라 있는 친구도 뚝뚝 떨어져 나가는 왕따 역할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오늘도 새로운 학교에서의 적응을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새롭게 전학 온 공문고등학교에서 왕따 캠프 동기인 마연성(김태현)을 만나는데, 자기 말로는 이제 학교 생활 적응 다했다는 연성으로부터 새학교 빨리 적응하는 법을 전수받게 된다. 바로 뭔가 무서워보여도 사실은 별거 아닌 애한테 가서 자기 몸을 부풀리라는 전법인데, 우리의 남궁달은 이에 삘받아 상대방을 점찍어 공격하지만 그 상대는 다름아닌 학교 최고의 쌈짱 강재구(하석진). 그 많은 학생들 중에서 하필이면 그를 지목한 그의 로또 뺨치는 실력에 모두가 감탄하는데, 재구는 이렇게 뭣도 모르고 까부는 궁달이에게 방과후 옥상으로 나오라는 불호령을 내린다. 도망쳐도 죽고, 고자질해도 죽고, 안나와도 죽는단다. 이보다 안좋을 수 없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궁달이와 연성이는 이를 벗어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궁달이의 운빨이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한 그게 어디 제대로 되겠는가. 그리하여 죽음의 데드라인 방과후 4시는 째깍째깍 다가오기 시작한다.

봉태규 외에는 아는 사람만 알 만한 젊은 배우들이 나와서 보기 전에 연기력에 있어서 의문을 품을 소지가 있지만, 그럴 걱정은 다행히도 없다. 젊은 배우들이 예상외로 꽤 안정된 연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뭘 해도 안되는 콤비를 이루는 남궁달 역의 봉태규와 마연성 역의 김태현의 코믹 앙상블은 압권이다. 봉태규는 기존의 어딘가 어리버리해 보이고 순진해보이는 이미지를 적극 활용해가면서도 자기는 운빨이 없는지도 모르고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성격까지 더해 정말 남궁달이라는 역할에 제대로 어울리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때론 순진하게 입을 꾹 다물고 있고, 때론 분위기에 안맞게 진지하게 나서고, 때론 분위기 못맞추고 개그를 치는 등 엉뚱한 남궁달의 모습이 봉태규의 연기에 그대로 스며들지 않았나 싶다. 확실히 봉태규는 또래 연기자들 중에서 연기 내공이 상당히 큰 편인 배우임은 확실하다.

마연성 역의 김태현의 연기도 수준급이다. 라면을 그대로 머리위에 얹었는지 괴상한 헤어스타일에서부터 포스가 느껴지는 마연성 역을 역시나 맞춤옷처럼 소화해내었다. 이전에도 여러 드라마나 영화에서 활발하고 좀 나대는 성격의 캐릭터를 많이 연기한 걸 봤는데,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나설 데 다 나서는 마연성의 모습은 역시나 김태현에게 참 제대로 어울렸다. 어리버리한 듯 무모하고, 영리한 듯 눈치 없는 이 두 녀석의 콤비 플레이는 배우들의 능청스런 연기에 힘입어 더 큰 재미를 선사해주었다.

쌈짱 강재구 역의 하석진과 궁달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여학생 최미나 역의 정구연 역시 무리없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앞서 언급한 두 배우에 비해서 비중도 조금 더 작고 이미지 중심의 역할이었지만 그 무게감은 비교적 만족스러웠다.

영화는 등교 후부터 방과 후까지, 약 8시간 동안을 배경으로 흘러간다. 어리버리한 주인공과 촐싹대는 친구, 과묵하고 카리스마 있는 쌈짱과 아리따운 여학생 등 캐릭터들의 면면은 다소 전형적인 모습도 보이지만, 이 짧은 8시간 동안의 오딧세이를 그려가는 감독의 실력은 녹록치 않다.

일단 그 모험의 과정을 유쾌한 상상력들이 채우고 있다. 뜬금없이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이 등장해 상황을 설명하고, 뻘쭘하게 계단 위에 서 있던 궁달이가 갑자기 헤엄을 치면서 공중을 유영하는 등 주인공들의 상상이 곧잘 화면으로 표현된다. 궁달이의 상상에 힘입어 미나를 비롯한 여학생들이 뮤지컬 퍼포먼스를 펼치는 부분에서는 마치 주성치식 코미디 영화를 보는 느낌도 들었다. 살짝 당황스러울 순 있어도 젊은 학교를 배경으로 한 영화 답게 젊은 상상력이 돋보이지 않았나 싶다.

궁달이가 4시까지 달려가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여러 난관들은 끊임없는 웃음을 가져다준다. 8시간동안 학교라는 제한된 장소에서 교실, 학생부실, 화장실, 권투실, 강당 등 다양한 장소를 배경으로 다양한 상황들을 벌려놓는다. 부드럽고 너그러운 것 같으면서도 조퇴는 절대로 안시켜주는 담임선생님, 권투부 학생과 재구의 대결을 주선하지만 어쩌다보니 상황이 더욱 꼬여가는 과정, 궁달이의 지나친 진지함때문에 조퇴도 제대로 못하는 여러 순간 등 언제나 주인공들의 예상과는 달리 전개되는 조퇴 과정들이 주인공들은 매우 당황스러울지 몰라도 보는 사람 입장에선 상당히 재밌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렇게 마냥 발랄한 영화라고는 볼 수 없다. 싸움 좀 한다는 학교 짱들 앞에서 제대로 기도 못펴고 다니면서, 돈 바칠려고 알바까지 뛴다는 씁쓸한 한탄까지 털어놓는 왕따 학생들의 모습이 있고, 학교에서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만만한 애들을 짓눌러야 하는 학교 안의 살벌한 생리가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사실 영화 후반부에 가서는 영웅과 왕따 사이에서 갈등하는 궁달이가 아이들을 누르고 군림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냥 보통 학생으로서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되면서, 학교가 무슨 아마존 정글도 아니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선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서야 하는 체제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살짝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런 진지한 면들이 은근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발랄한 영화라구!" 하면서 애써 진지함을 부정한다. 오히려 이런 살벌한 현실을 마치 어드벤처 게임의 배경 삼아서 신명나는 모험을 펼쳐간다. 학원영화로서 무슨 섬세한 감수성이나 따끔한 현실 비판 의식을 느끼고 싶은 분이라면 실망하실 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어쩌면 그래서 특이하다. 왕따와 학교짱이라는 학교 내 계층의 형성과 대립, 약육강식의 원리 등 살벌한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영화는 이를 그저 놀이터 삼아 즐기고 있을 뿐이다. 후반부에 궁달이의 매우 심각한 고민이 드러나면서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역시나 장난기 어린 엔딩으로 마무리 짓는 등 영화는 시종일관 10대 특유의 장난기를 잃지 않는다. 어차피 이 영화가 현재 우리나라 학교의 냉혹한 현실을 비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촐싹대고 뭐든 덤비고 보는 게 생명인 아이들이 하룻동안 무모하게 펼치는 학교 오딧세이를 그저 즐겁게 웃으면서 보게 하기 위한 것이 목적일 테니 말이다. 어차피 궁달이도 피할 수 없는 데드라인, 거기까지 가는 데 기왕이면 즐기면서 가자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면서도 주인공 궁달이가 정서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잊지 않는다. 이번 "방과후 옥상" 사건 역시 그의 지독히도 운없는 삶의 일부분으로서 그저 피하기만 하면 될 부분일 줄 알았던 궁달이는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꼬이고 커져 가면서 점점 더 진지한 상황을 맞아들이게 된다. 이건 단순히 궁달이에게 지독한 난관만으로 기능하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생존방식이 있어야 하는 학교 생활, 나아가 사회 생활에서 어떤 방식을 선택하고 어떤 편에 서느냐가 달린 문제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어리버리한 전학생 취급을 받다 갈수록 요상한 입소문과 함께 수상한 취급을 받게 되면서 궁달이는 그 선택이 생각보다 꽤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오랜 왕따 생활에서 벗어나 더 이상 "얼간이" 취급을 받지 않을 것이냐, 아니면 그래도 사람의 도리를 따라서 그냥 싸움 못하는 왕따로 남을 것이냐의 갈림길에 서서 말이다. 그러면서 궁달이는 단순히 위험이 다가오면 소심하게 피하려는 성격에서 벗어나, 점차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강한 심지를 갖게 된다.

이렇게 영화는 왕따를 훈장처럼 달고 살아온 한 소년이 다시금 자신을 괴롭힐 운명에 맞서서, 그것에 대해 잔머리를 쓰느냐 아니면 정면충돌하느냐를 놓고 고민하면서 조금씩 생각이 한뼘한뼘 자라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마냥 어둡지 않고, 흥겨운 어드벤처 게임마냥 유머와 상상력을 곳곳에 배치하며 유쾌하게 이끌고 나간다. 죽음의 데드라인이 도사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거기로 가기까지 수많은 재치만점 난관과 친구들이 매복하고 있는 곳 역시 이곳 "방과후 옥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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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 옥상(2006)
제작사 : 씨네온 엔터테인먼트 / 배급사 : (주)시네마 서비스
공식홈페이지 : http://www.oksang2006.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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