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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을 캔버스 삼아 펼치는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ldk209 2008-12-15 오후 10:28:15 2120   [7]
화면을 캔버스 삼아 펼치는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로 인해 한 2주일 정도 극장은커녕 집에서 비디오 한 편 볼 시간이 없었다. 아직 프로젝트가 완결된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숨 돌릴 틈을 찾게 되어 그 동안 못 봤던 영화나 한 편 보자고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 영화가 바로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이었다. 왜냐면 한 영화평론가의 20자평이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안 보면 땅을 치고 후회한다’ - 헉! 이 얼마나 무서운 협박인가.

 

웬만하면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시간과 돈이 남아돌아 모든 영화를 극장에서 볼 형편도 아니고, 게다가 모든 개봉 영화를 다 봐야 한다는 책임감이나 강박관념도 없다. 그럼에도 꼭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영화들이 있다. 그게 어떤 사람에게는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일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를 극장으로 인도한 평론가의 협박성 20자평은 가장 정확한 표현이었다. 이 영화의 다운로드 파일이 돌아다니고 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급적 이 영화만큼은 극장에서 보길 권한다. 너무 전형적인 표현이긴 해도 극장용 대형 스크린이 아니라면 그림 같은 영화 속 장면(그림)들을 감상하기엔 너무 작고 부실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나...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이하 <더 폴>)은 무성 영화 시대인 1915년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 촬영 도중 떨어져 다리를 다친 로이(리 페이스)는 역시 떨어져 팔을 다친 영어가 서툰 외국인 소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언타루)와 우연히 친해진다. 알렉산드리아의 이름을 화제로 얘기를 꺼낸 로이는 오디어스 총독에게 복수를 꿈꾸는 6명의 전사 이야기를 지어내 알렉산드리아에게 들려준다. 일종의 ‘이야기 속 이야기’ 구조를 가진 영화 <더 폴>은 현실과 이야기가 명확한 경계로 구분되지 않고 현실이 이야기 속으로 자주 또는 거침없이 침입해 들어간다.

 

이 영화는 뭐니 뭐니 해도 전 세계 28개국을 돌아다니며 촬영(한 없이 길게 이어지는 엔딩 크레딧으로 확인 가능하다)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값어치를 하는 영화다. <더 셀>로 데뷔한 인도 출신 감독 타셈 싱은 스크린, 화면을 캔버스 삼아 자유자재로 환상의 나래를 펼친다. 한 마리의 나비가 내려앉은 것 같은 피지의 섬, 도저히 빠져 나갈 길 없는 절망의 미로, 총독 친위대가 뛰어 올라오는 지그재그로 펼쳐진 기기묘묘한 죽음의 계단, 호수 위의 성, 푸른 물감을 흩뿌려 놓은 듯한 푸른 도시,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금빛물결의 황홀한 사막, 불타오르는 나무에서 걸어 나오는 사나이, 화려한 원무를 추는 신부들. 파리의 에펠탑이나 중국의 만리장성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릴 정도다. 더 놀라운 건 이 모든 장면(그림)이 CG의 도움 없이 창조되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광고 촬영을 하며 멋있는 장소를 찾을 때마다 점찍어 두었다는 감독의 오랜 집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물론 영화에서 이러한 판타지는 온전히 알렉산드리아의 것이다. 영화 속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은 바로 알렉산드리아가 알고 지내는 현실 속 인물들이며, 자신이 목격한 현실에 따라 인물들의 외모나 성격 등이 바뀌기도 한다. 이 영화가 눈길을 끄는 건 한 폭의 그림 같은 기막힌 장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촬영마저도 실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는 평생(?) 영화를 한 번도 접한 적 없는 루마니아 출신의 소녀 카틴카 언타루의 자연스러운 연기야말로 이 영화가 단순히 눈을 감탄시키는 정도를 넘어서서 마음까지 움직이게 하는 결정적인 동력이 된다.

 

로이가 진정으로 좌절한 것은 스턴트맨으로서 다리를 다쳤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연에 따른 아픔에 있으며, 이야기를 지어내 알렉산드리아에게 들려 준 것은 자살하기 위해 다량의 모르핀을 입수하려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영화의 스토리가 부실하다고 지적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약을 손에 넣고 싶은 로이는 이야기를 빨리 끝내기 위해 비약을 거듭하고, 현실의 로이가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릴수록 점점 더 비극적으로 변해간다. 당연하게도 알렉산드리아는 로이가 자살을 포기하고 다시 살도록 하는 역할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충실히 수행한다.

 

그런데, 영화 속 이야기가 끝나고 영화도 거의 끝났다고 생각한 마지막에 와서야 이 영화가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로이가 사고를 당하는 시점을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을 배경으로 느린 흑백 장면으로 시작한 영화는 무성영화 속 스턴트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무성영화는 인물들이 실제보다 조금 빠르게 움직임으로서 코믹하게 보이고는 한다. 그런데 예전에 무성영화를 보다보면 줄에서 떨어지거나 마차에서 떨어지거나, 하여튼 꽤 위험한 듯 보이는 사고 장면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떨어진 주인공은 멀쩡하게 다시 등장한다. 아마도 무성 영화에선 그런 위험한 장면들이 포함되는 것이 재미를 담보하기 위한 조치였을지도 모른다. 주인공을 대신해 촬영하다 다친 로이는 나은 후 다시 스턴트맨의 세계로 뛰어 든다. 알렉산드리아는 수십 번 반복해 보고서야 뒤통수를 맞는 사람이 로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물론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 그건 로이가 아니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일 것이다. 이 영화는 소녀의 아름다운 판타지임과 동시에 관객의 재미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연기하는 무명 배우, 스턴트맨에 대한 진정으로 뜨거운 헌사다.

 

※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감독의 데뷔 작 <더 셀>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한 전초전, 일종의 연습게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총 0명 참여)
prettyaid
잘읽었어요^^   
2009-07-08 10:17
sinama0613
정말.. 영상이 최고에요!!   
2009-01-20 13:02
ldk209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한 번 봐야겠더군요...   
2008-12-24 21:37
RobertG
영화를 봤을때는 못 느끼고 못 알아차렸던 부분까지 이 리뷰를 통해 알게 되었네요.   
2008-12-15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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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2006, The Fall)
배급사 : 영화사 구안
수입사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 공식홈페이지 : http://blog.naver.com/meff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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