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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손톱 사이로 파고드는 쓰라림과 같은 영화... 손톱
callisto 2004-06-20 오후 12:32:05 2487   [1]
 별 생각없이...
사실은 난방비 절약 차원에서 추운 컴퓨터 앞이 아닌 따뜻한 이불 안에 들어가서
뒹굴거리다가 심심해서 켠 TV의 어느 케이블 채널에 '손톱'이 나오고 있었다.
 
 예전에 한 번 봤었지만...
뭐랄까... 꼭 오늘의 내 기분이 그런 것처럼...
그 때에는 워낙 별 생각없이 본 탓에 별 기억에 남지 않았는데...
다시 본 '손톱'은 집중하지 않아도 묘한 집중력을 일으키며...
나의 뇌세포를 자극했다.
 
 영화 '손톱'은 2명의 여성이 중심 인물이다.
- 배우 심혜진 & 진희경이라는 멋진 조합은 후에 '은행나무 침대'로 이어진다. -
다시 '손톱' 얘기로 돌아와서...
 
 심혜진씨는 극중 '소영'이란 여성으로 항상 햇살아래서 빛을 받으며 살아왔다면,
진희경씨가 맡은 극중 '혜란'은 마치 소영을 뒤집어 놓기라도 한 듯...
항상 정반대의 인생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에서 혜란이 입고 있는 의상은...
대부분이 남색이나 곤색 계열로서 그녀의 어둡고 음울하며 그림자진 인생을 대변하고 있다.
 
 친절하게도 제작자는 영화 설정 구석구석에 이 둘의 기구하다면 기구한 운명을 비교해 놓고 있는데,
흰색이나 밝은색 계통의 옷을 입는 소영과 그 반대인 혜란의 경우처럼 비단 의상뿐만 아니라...
소영이 사는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의 넓은 집과
혜란이 사는 반지하의 음습하고 어두운 그리고 뭔가 잔뜩 어질러진 느낌의 공간은...
이질감을 일으킬 만큼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혜란은 소영을 부러워하면서도 자신이 가지지 못한 모든 것들을 늘 당연하다는 듯이
거머쥐고 살아가는 소영을 미워한다.
그리고 늘 그러하듯 모든 것을 소유한 소영은 그렇지 못한 혜란을 가볍고 쉽게 생각하며...
어느날 별 생각없이 그러한 자신의 의사를 남편에게 밝히게 된다.
물론 그 이야기를 혜란이 듣게 될 거란 것은 꿈에도 생각치 못하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던가?
어둠 속에 가리워진채 살아가던 혜란은 소영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그 대상은 바로 소영이 아닌 그녀의 남편...
자존심 높은 소영에게 가장 치명적인 좌절감을 느끼게 하기 위한 대상으로...
혜란은 그녀의 남편에게 접근한다.
 
 이 때의 혜란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인데...
요즘 들어서 크게 유행하고 있는 '팜므 파탈'이란... 바로 혜란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영의 남편을 유혹하는 혜란의 모습은...
흔들림이 없는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만하고 도도하다.
치명적이리만큼 달콤하게 끌어당기지만 정작 자신은 그 어떤 사랑에도 빠지지 않는다.
그 오만함 속에는 독품은 가시가 잔뜩 들어 있고...
교미 후 수컷을 뜯어먹는 사마귀처럼 소영의 남편을 끌어들여서는 서서히 죄여간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즐기며 소영의 가정을 파탄내려하는 혜란은...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여성의 '적'이라 선포되어 마땅하다.
 
 아무리 소영이 혜란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서 남의 가정을 파탄낸다는 건 얼토당토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때문일까...
나는 팜므 파탈적인 혜란의 모습조차 측은해 보였고... 안타까웠다.
 
 한편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전형적인 커리어 우먼인 소영은
 
'남자는 얼마든지 바꾸면 돼. 난 그럴 능력이 되니까.
 내가 찾아온 건 넌 네가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그런 쓰레기 인생밖에 못 된다는 거야!'
 
라고 말하며, 상처받은 자존심을 감추며 다시 한 번 혜란을 짓밟고...
이에 이성을 잃게 된 혜란은 소영을 죽이려 한다.
 
 이 싸움으로 두 명 모두 병원으로 실려가게 되는데...
운명은 기구하다 못해 잔혹하여...
두 명 모두 한 남자의 아기를 임신하고 있는 것으로 판명이 난다.
 
 그러나 소영이 자신의 배 안에 있는 허락받은 아이를 기뻐하고 있는 동안,
혜란은 허락받지 못한 아이를 잉태한 죄였을까...
같은 시각, 유산하게 된 혜란은 죽은 아이를 자신의 몸에서 분리해 낸다.
 
 소영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태교에 힘쓰고 있을 때,
혜란은 그 충격으로 정신병원에 갇힌 신세로 지내고 있었다.
 
 감독이 얘기하고 싶은 건 무엇이었을까?
빛은 어디까지나 빛이고, 어둠은 어둠다워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팜므 파탈의 혜란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철저하게 망가진... 더 이상의 무너짐은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초라하고 형편없는 몰골의 혜란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혜란은 마지막 비상을 시도한다.
그렇다. 나는 그게 마지막 '비상'이었다고 생각한다.
설령 그 후에 남겨진 것이 '추락' 밖에 없다 해도 그녀는 비상하고 싶었을 거다.
 
 정신병원을 탈출 해 소영을 찾아간 혜란은,
소영을 기절시키고 그 따뜻하고 아늑한 소영의 집에 기름을 붓고는...
담배에 불을 붙여 깊게 한 모금 들이마신 뒤 불을 붙인다.
자신도 그 집안에 가둔 채...
 
 적어도 여기서 소영과 소영의 뱃속 아이가 죽게 되었다면...
혜란은 '제로섬'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을까?
그녀의 마이너스가 채워졌을까?
 
 그러나 영화는 끝까지 혜란의 편에 서주지 않는다.
마침 집에 들른 남편이 소영을 깨워 불에 타들어가는 집을 탈출하기 때문이다.
 
 결국 불에 타 죽게 된 것은 소영이 아닌 혜란이었다.
혜란의 길동무는 고작 커다란 집 한채였던 것이다.
이제는 타버려 쓸모없어진...
마지막까지도 혜란이 소영에게서 뺏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집 한 채 밖에 없었던 거다.
 
 불 속으로 사라지기 전 벽에 기댄 채 허무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혜란의 모습은 기괴하다 못해 소름끼칠 만큼 텅 비어 있다.
그녀의 텅 빈 마음은 불에도 타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그녀의 구원은 어디에도 없었던 걸까...
 
 아니면... 그녀는 불 속으로 꺼져가면서...
'이제 그만 됐다'고...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구원의 세례를 내린 것일까.
 
 심혜진씨의 연기는 좋았다.
그러나 나는 '손톱'에서의 진희경씨의 연기가 너무나 인상 깊었다.
 
 진희경씨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독한 역이었는데도...
너무나 훌륭히 잘 소화해냈고...
 
 영화를 보는 동안 배우 '진희경'이 아닌 '혜란'이란 한 여성으로서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살아있는 동안은 반지하에서 이류 예술가였으며,
죽을 때는 타버린 집 하나와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여자.
 
 혜란의 생은 너무나 비극적이고 그래서 아프다.
혜란이 비록 한 가정을 파국으로 몰려 했고, 한 사람을 죽이려 했다 해도...
혜란에 대한 안타까움은 지울 수 없다.
비록 그 죄를 용서할 수는 없다 해도... 이해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혜란은 죽었다.
소영은 살아남았다.
소영은 혜란이 뺏지 못한 그의 남편과...
혜란은 결코 안을 수 없었던 아이를 안고...
군중 속으로 사라지며 영화는 끝난다.
 
 그러나 소영은 순간 순간 스치는 사람들에게서 보게 되는 혜란의 환영에 몸을 떤다.
혜란은 죽고 없어도... 기억은 남기 때문이다.
상처는 나아도... 상흔은 남기 때문이다.
 
 결국 이 다르디 다른 두 여자는...
자신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서로에게 영원히 엮인 채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채...
 
 소름끼치도록... 멋진 영화였다.
그리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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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1994, Deep Scr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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