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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감(수)성은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가? 순정만화
flowwing 2008-11-29 오전 6:35:41 16252   [7]

 
 
이 시대. 그러니까 지금 이 디지털 시대는 참 짧은 기간 동안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디지털이 만연된 시대에 태어난 이들이야 그 변화의 격감을 느낄 리 없겠지만, 아날로그 시대를 거쳐 지금의 디지털 시대를 공존하고 있는 세대라면 그 변화를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단순히 편지가 e메일로 바뀌고 전보가 문자메시지로 바뀐 정도가 아니다. 요즘 대학 강의실의 풍경만 보더라도 디지털이 우리 삶 전반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칠판과 분필은 이미 대학 강의실에서 퇴출 된지 오래다. 이제는 모든 강의실에 스크린과 프로젝터가 설치되어 있고, 교탁에는 프로젝터와 연결되어 있는 PC가 내장되어 있어 교수는 두꺼운 책과 강의 노트 대신 손가락 크기만 한 USB메모리카드를 들고 와 교탁에 있는 USB꽂이에 꼽기만 하면, 한 학기 분량의 내용이 들어있는 폴더가 바로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학생들은 또 어떠한가. 그들 역시도 책과 노트 그리고 필기구를 버린 지 오래다. 학기가 시작하면 학부 홈페이지에서 강의 자료를 다운받아 이를 저장한 노트북을 강의 시간에 당당히 펼치고 수업을 받는다. 교수가 특별히 더 적어주는 내용이 있다면 필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워드 프로그램을 열어서 타이핑하는 모습을 강의실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딱 1 년 전의 필자가 대학에서 수업을 듣던 당시의 풍경이니 지금은 또 무엇이 어떻게 더 변했는지 모를 일이다.) 비단 강의실의 풍경이 아니더라도 디지털은 우리의 삶을 전반적으로 장악하고 있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10년도 안 걸려 필름카메라는 디지털 카메라에게 시장의 주도적인 자리를 완전히 내어 주어야 했다. LP와 카세트테이프는 CD라는 매체에서 다시 MP3라는 매체로 빠르게 그 이동수단을 디지털로 갈아타야 했다. 심지어 세탁소조차도 ㅇㅇ컴퓨터세탁소라는 기기묘묘한 명칭으로 장사를 해야지 왠지 더 그럴싸하게 보인다. 정말이지 아날로그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돌아보면 그 변화의 속도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이런 디지털 시대에 디지털이란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감(수)성은 그럼 사라졌을까? 원론대로라면, 사라져야 하겠지만 감(수)성은 여전히 이 시대에도 여기저기 흐르고 넘쳐난다.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에 감(수)성은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 걸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이전에 ‘디지털’과 ‘아날로그’에 대해 개략적이 나마 설명을 한 이후에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도록 하자.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아날로그는 전압이나 전류처럼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물리량을 나타내는 일이다. 디지털은 중간값이 없이 임의의 시간에서 가지는 값이 딱 떨어지는 경우를 말한다. 쉬운 예로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신호 체계를 연상하면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은 왜 감(수)성과 거리가 멀까? 그 이유는 감(수)성을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디지털이 적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디지털은 왠지 아날로그에 비해 모든 점에서 더 나을 것 같지만, 사실 표현 능력에서는 의외로 취약하다. 그래서 아직도 LP를 듣고, 필름카메라를 사용하고, 문자가 인쇄된 종이 매체를 읽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디지털이 아무리 한정된 시간 안에 표현 할 수 있는 정보량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연속적으로 기록하는 아날로그의 표현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다만 디지털은 이런 표현력의 취약한 점을 ‘복제’라는 메리트로 극복한다. 아날로그는 복제를 거칠수록 원본에 비해 사본의 퀼리티가 한없이 떨어지지만, 디지털은 끝없이 복제를 하더라도 결코 사본의 퀼리티가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 면이 정보화 시대와 맞물리면서 디지털의 장점은 이제 우리 삶의 곳곳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대 감(수)성은 복제가 가능할까? 복제야 가능하겠지만,(예술과 문학이 그 표본이 아닐까?) 그것을 완벽하게 복제하는 것만은 불가능 할 것이다. 따라서 감(수)성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아날로그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시대에 알맞게 적당히 변태(metamorphosis)를 거쳐 새로운 형태로 자리 잡는다. 그것이 바로 요즘 종종 언급되어지고 있는 디지로그[Digilog : 디지털(Digital)과 아날로그(analog)를 결합시킨 신조어]라는 개념이다. 디지로그가 처음 사용 된 것은 2004년 한양대학교 유영만 교수가 저술한 책 <아나디지다>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사용했던 신조어이지만, 이 개념이 중요하게 사회적 화두가 된 것은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진보 지식인인) 이어령과 진중권이 이에 중요성을 두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진중권의 <호모 코레아니쿠스>에서 한국 사회가 너무도 빠른 변화로 중간 단계를 생략하고 도약함으로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사회를 낳았고, 필연적으로 디지로그가 파생 될 수밖에 없음을 역설하고 그 부작용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는 반면에, 이어령의 <디지로그>에서는 이렇게 발생한 디지로그의 부작용을 줄이고, 어떤 식으로 나아가야 할 지 그 방향성을 제시한다. 어찌되었던 이 두 책에서 제시되고 있는 디지로그의 개념은 아날로그로 표현하고 이를 디지털 형식으로 저장함으로서 두 개의 상반된 특성을 동시에 껴안고 양쪽의 장점을 모두 가진다는 특징이다. 디지로그의 대표적인 상품이 바로 디지털카메라에 수동카메라의 기능을 담은 DSLR과 전자 잉크이다. 사진 촬영과 필기란 분명 아날로그적인 방법이지만 이를 저장하는 방법을 디지털로 바꾸면서 디지털의 특성을 고스란히 가져가는 것이다. 이렇게 아날로그적인 표현 방식을 디지털의 형식으로 저장한다면 감(수)성도 충분히 디지털화 될 법하다.

필자는 <순정만화>를 보면서 좀 뜬금없지만 이 ‘디지로그’라는 개념이 계속 떠올랐다. 영화의 주요 소품으로 사용되었던, 필름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의 대비에서 기본적으로 이런 의심이 시작되긴 했지만, 디지로그에 대한 생각을 확정지어 준 것은 그들이 감(수)성을 표현하는 방법에서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혼용된 방식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네이버의 ‘이웃’이니 싸이월드의 ‘일촌’보다 멀고도 멀다는 실제 이웃사촌인 동사무소 직원인 연우(유지태 역)와 편모 아래 자란 여고 2학년생인 수영(이연희 역)이 만나고 가까워지고 좋아지고 그리고 결국에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는 과정은 결국에 디지털과 아날로그적인 방식의 상호 반복이다. (엘리베이터에서의 만남과 문자메시지로의 만남)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디지로그를 상기시키는 점은 각기 캐릭터가 가지는 특성이다. 먼저 연우는 아날로그의 시대를 살았던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캐릭터이다. 그가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디지털적인 감성 표현을 보여주고 있는 수영이란 캐릭터를 만나 보여주고 있는 면은 흥미롭다. (또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 둘은 곧잘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방식을 수용하면서 점차 그 안에 녹아들게 된다. 그래서 결국 연우는 디지털 코드로 전해지는 문자 메시지로 자신의 감정이 잔뜩 묻어있는 (사진의 포커스가 -영화에서 불러진 그대로 말하자면- 개고양이가 아니라 수영에게 맞추어진)사진을 전송하고, 수영은 연우에게 의도하지 않게도 MP3에 담겨진 노래를 들려줌으로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한다. 전자나 후자나 어찌되었던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화로 서로의 감정을 표현한 방식이다. 영화의 또 다른 커플인 공익근무 요원 강쑥(강인 역)과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친 연상녀 하경(채정안 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혼용 교배시킨다.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아날로그적인 사람이 강쑥이라면 하경의 경우 아날로그의 시대를 살았던 디지털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디지털적이라기보다는 디지털적이기를 바라고 있다. 그녀에게 사랑의 원본은 세탁소 집 아들인 죽은 애인이며, 그녀의 소망은 이를 디지털 방식으로 완벽한 사본으로 재현시키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강쑥에게 죽은 옛 애인이 했던 말과 행동을 시킴으로서 자신의 이런 의도를 표현한다.) 그들의 이런 전도된 시대 현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디지로그화 되어있다. 아날로그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아날로그의 방식을 버리고 디지털적인 삶을 원했던 여자(아날로그적 유물인 필름카메라를 아날로그의 감성이 막 피어오르는 수영에게 전달된다.)와 디지털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싶었던 남자(그가 가장 원했던 것은 하경이 옛 남자를 잊기를 바라는 즉 오래된 원본은 소실된다는 아날로그가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특성)가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가 되었다는 자체가 이미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하여 디지로그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그 양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방식이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과연 사랑은 ‘디지털’일까? ‘아날로그’일까? (여기서 이 글을 읽는 그대에게 잠깐 생각해볼 시간을 권유한다.) 나는 사랑이야 말로 아날로그도 디지털도 아닌, 디지로그라고 생각한다. 사랑이란 감정은 분명하게 표현되지 못하는 감정의 연속이다. 하지만 한 사람을 잊고 또 다시 다른 사람과의 사랑이 시작되었을 때 다시 피어오르는 감정은 (그 경험의 인상만이 다를 뿐이지) 여전히 전의 사랑의 감정적 흥분과 애틋함을 신기할 정도로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진정한 디지로그는 ‘사랑’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순정만화>는 사실 가지고 있는 패널티가 만만치 않은 영화였다. 강풀 원작이라는 기대감과 기존의 강풀 원작의 영화가 모두 실패했었다는 불안, 아직도 연기력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몇몇 신인 연기자의 과감한 기용 그리고 지극히 뻔뻔스러운 제목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몇몇의 패널티를 훌륭하게 벗어남과 동시에 또 다른 주제 의식을 확실하게 새겨 놓는대 까지 성공하였다. 감정이 충실해 넘쳤던 아날로그적 시대의 사랑과 감정의 호불호가 극명하고 이도저도 아닌 것을 ‘쿨’함이란 명제로 극복하려는 현대인의 디지털적 시대의 사랑 사이에 놓인 간극에서 간교 역할을 해냄으로서 제 몫을 훌륭하게 이행하고 있다. 그것이 신세기의 어떤 조류에 대한 엄청난 발견까지는 아니겠지만 디지로그라는 새로운 방식을 통하여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점은 칭찬 할만하다. 나는 그뿐이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절대 서른의 필자가 이 영화에서 어떤 위안을 얻었다거나, 되도 않을 환상의 나래를 펼쳤기 때문이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 이 영화의 원작인 강풀의 <순정만화>는 미디어 다음에서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영화와는 비교적 다른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으니 이 영화를 보고 흥미를 느낀 관객이라면 한번쯤은 보기를 추천한다. 이미 재미 면에서는 네티즌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작품이다. 또한 내가 주구장창 말하고 있는 디지털 시대의 감성을 전달하는 방법인 ‘디지로그’의 전형이 바로 <순정만화>같은 손 그림을 인터넷에 올린 웹툰이라는 점도 상당히 흥미롭다.
 
 
 
-본 영화평은 다음의 블로그(http://pppmovie.blogspot.com/)와 무비스트에서만 연재되고 있습니다.

(총 0명 참여)
okane100
글 잘봤어요   
2009-01-11 01:31
kuj1231
영화가 조금 잔잔했지만 그래도 가슴이 따뜻해졌던 것 같아요.   
2008-12-05 00:52
isu3965
되게 열심히 쓰섰다!!!   
2008-12-03 18:53
wksel89
오우 정말 잘쓰셨네요 ㅋㅋㅋ   
2008-12-02 21:00
mylove794
글재주가 없어서 이 영화를 보고서 느낀 것들을 어찌 풀어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풀어주시네요. 제 마음 같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2008-12-02 12:14
h31614
글 잘 보았습니다.   
2008-12-01 17:01
iamjo
추전 한방쏴 드리지요   
2008-11-29 23:55
RobertG
전문기자가 쓴 기사같다.   
2008-11-2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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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2008)
제작사 : 렛츠필름, 엠엔에프씨, 청어람 / 배급사 : CJ 엔터테인먼트
공식홈페이지 : http://www.soonjung2008.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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