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며... 밀크
ldk209 2010-03-04 오후 4:05:42 871   [3]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며... ★★★★

 

실존 인물인 하비 밀크(숀 펜)의 일생을 간략히 정리해보자. 1930년 5월 22일 출생한 밀크는 40세가 되던 해 샌프란시스코 5구역 카스트로가에 조그만 사진관 하나를 열었으며, 이를 중심으로 게이들의 대표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세 번의 낙방 끝에 1977년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에 선출되지만, 이듬해인 1978년 정치적으로 대립해 있던 댄 화이트 전 시의원이 쏜 총에 운명을 달리한다. 사람들이 하비 밀크를 가리켜 ‘게이 마틴 루터 킹’이라고 부를 정도로 게이 인권사에 뚜렷한 획을 남겼다고 한다.

 

영화의 줄거리도 이와 동일하다. 하비 밀크의 성장기를 과감히 삭제한 영화 <밀크>는 40세가 된 밀크가 어떤 과정을 거쳐 게이들의 중심인물로 떠올랐으며, 어떤 활동을 했고, 어떤 꿈을 꾸었으며, 어떻게 죽어갔는지 말하고 있다. 구스 반 산트 감독과 숀 펜은 하비 밀크를 통해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한 염원을 말하고 있으며, 누군가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방조한다면 결국 자신의 권리가 침해될 것이라는 강한 경고를 내리고 있다.

 

사실 이 영화에서 제일 놀라운 점은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최근 영화들-<엘리펀트>, <라스트 데이즈>, <파라노이드 파크>-을 고려해 볼 때, 한 인물의 삶을 다룬 전형적인 전기영화가 구스 반 산트의 이름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일 것이다. 일반적인 스토리 라인을 파괴하고, 어떤 특정 순간의 이미지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그리고 훌륭하게 만들어질 수 있음을 과시하는 듯 보였던 구스 반 산트가 아니던가. 왜 기존 자신의 문법과 다른 영화를 내놨을까? 아마 그건 좀 더 폭넓은 대중과의 접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 예술적으로 인정을 받는 대신 다수 대중의 외면을 받는 것보다는 좀 더 많은 대중들이 접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하비 밀크의 진정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영화는 재연된 화면(영화) 속에 하비 밀크가 생존했을 당시의 실제 화면(녹화된 화면)을 편집해 활용함으로서 리얼리티의 강도를 높이는 시도를 하고 있다. 영화 시작부터 경찰에 의한 동성애자의 검거를 보여주는 실제 장면으로 시작하는 <밀크>가 일반적인 기대를 비껴가는 부분은, 이성애자들의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이라든가 극단적인 적개심을 보여주는 대신 이러한 부분을 동성애자들의 대화 속에서 주로는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단한 게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영화를 만들고자 할 때 문제를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을 뿌리친 것만으로도 연출자의 고뇌가 묻어나는 지점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깐 구스 반 산트는 게이 커뮤니티, 그 자체를 진지하게 보여주려 했던 것 아닐까 싶은 것이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구스 반 산트의 최근 영화는 모두 죽음이란 소재를 다루고 있다. 문법이 다르긴 하지만 <밀크>도 결국 누군가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밀크>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고 하면 아마도 밀크가 죽는 장면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장면을 과장되고 드라마틱하게 연출하는 것과는 달리 구스 반 산트는 암살 장면을 매우 일상적인 느낌으로 연출하고 있다. 밀크에게 할 말이 있다며 사무실로 부른 댄 화이트는 그 어떠한 호소나 사전 동작 없이 무덤덤하게 총을 발사하고 화면은 쓰러지는 밀크의 표정조차 정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일상적 느낌으로 연출했음에도 사무실로 들어와 총이 발사되고 ‘안 돼!’라는 외침과 함께 쓰러지는 밀크까지 연결되는 장면은 마치 꿈 속 장면인냥 부드럽고 리듬감이 넘친다. 어떤 의미에선 매우 아름답다고 해야 할까? 죽음을 계속 다뤄온 감독의 신묘라고 말해야 될지 잘 모르겠다.

 

이 영화를 말함에 있어 도저히 빼놓고 갈 수 없는 건 바로 배우들이 연기다. 물론 숀 펜이란 이름이 가장 먼저 거명되어야 한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배우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밀크>에서의 숀 펜은 어디까지가 그의 연기 영역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넓음을 확실히 입증하고 있다. 일 년 전 200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웠던 장면은 남우주연상 수상이었다. 숀 펜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더 레슬러>의 미키 루크가 떠올랐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면서 ‘어차피 숀 펜이야 앞으로도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기회가 많을 것인데, 미키 루크가 수상할 기회가 또 올 수 있을까? <더 레슬러>처럼 궁합이 잘 맞는 영화를 만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번 남우주연상은 숀 펜이 아닌 미키 루크가 수상한다면 좋지 않을까?’ 이런 기대감을 가져봤지만 안타깝게도(!) 남우주연상은 숀 펜이 가져가 버리고 말았다. 뒤늦게 개봉한 <밀크>를 보고나니 숀 펜의 연기가 주는 무게감이 너무 막강하다는 생각이다. 숀 펜 말고도 <밀크>에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는 전반적으로 안정적이다. 특히 마치 질투로 뒤틀려버린 살리에르를 보는 듯한 조쉬 브롤린의 연기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두 가지가 떠올랐다. 첫째는 소수자들 내지는 약자의 연대라는 관점이다. 영화에서 밀크는 단지 게이들만의 인권, 게이들만의 권리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는 시의원 선거 유세를 다니며 노동자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노인 복지에 대한 관심을 피력한다. 이 부분, 즉 약자들의 연대는 개인적으로 한국 사회가 매우 취약한 지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알고 보면 비슷한 처지의 소수자 내지는 사회적 약자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결국 그 피해는 자신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나로선 평소 모든 노동자 파업에 거센 비난을 퍼붓던 친구가 막상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 문제가 생겨 농성할 일이 생기자,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연대를 부르짖던 가슴 아픈 개인적인 기억도 덧붙여진다.

 

이와 관련해 또 하나의 아픈 기억을 돌이켜보자면, 한 십 여 년 전으로 기억되는 데, 노동운동 탄압과 관련해 큰 집회가 도심(종로)에서 개최된 적이 있었다. 이곳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고 응원하기 위해 많은 단체들이 모여 나름 유인물을 돌리고 구호를 외치곤 했는데, 그 단체 중에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성적 소수자들의 모임이 있었다. 연대라는 기치로 집회장에 나온 이들에게 많은 노동자들은 ‘왜 니들이 나와 지랄이야’ ‘호모새끼들’ 운운하는 거친 말들을 내뱉었고, 결국 이들은 거리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물론 이들은 이후에도 연대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당시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 부족 때문이기는 하겠지만, 그 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찝찝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한편 재작년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인사들에 의해 진보신당이 만들어질 때, 성적 소수자에 대한 민주노동당 다수파의 인식도 탈당의 한 이유로 작용했던 걸 돌이켜보면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심지어 진보라고 불리는 진영 내에서조차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이해는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이 영화를 보면서 떠 오른 또 다른 한 가지는 혹시 댄 화이트가 게이가 아닌가 하는 밀크의 말에서 파생된다. 영화에서 밀크는 자신이 하는 일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댄 화이트가 혹시 게이일지 모른다는 의견을 내세운다.(영화 속 밀크는 게이를 알아보는 데 거의 천부적 자질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이후에 이와 관련한 얘기들이 더 진행되지는 않지만 만약 댄 화이트를 게이로 보게 되면 영화는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 가능하게 된다. 그 중 하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 왔던 어떤 정치인이 속으로 흠모해왔던 영웅을 죽이는 이야기로서 가지가 쳐 질 수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자신이 감추고 싶은 모습이 타인에게 발견될 때 더욱 반대화될 수 있는 인간 본성에 대한 문제다.

 

그러니깐 영화에선 댄 화이트가 추진하던 지역 공약을 일종의 님비라는 관점에서 하비 밀크가 도와주지 않자 그 다음부터 댄 화이트가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반대를 하는 것으로 표현하고는 있지만 댄 화이트의 표정이라든가 태도를 볼 때, 처음부터 하비 밀크에 대해 좋은 감정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를 댄 화이트의 정체성이 게이라는 점과 연결시켜 보면 하비 밀크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로 자신의 정체성 탄로를 막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이렇게까지 하비 밀크를 반대하는 내가 게이일 리가 있겠는 가란 일종의 선언.

 

이와 같은 현상은 현실의 대한민국에서도 접할 수 있다. 과거 학생운동 출신이거나 진보진영에서 활동하다 한나라당 또는 뉴라이트 등의 단체에 들어간 인사들이 원래 그곳에 있었던 인사보다 더 열심히 더 적극적으로 더 보수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에서 특히 그렇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활동하는 데 내가 좌파일 리가 있겠는가, 나를 믿어달라는 일종의 선언. 불행하게도 어린 남자애들이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일부터 못되게 구는 것처럼 이것도 일종의 성장하지 못한 유아적 행위일 뿐이다. 그것이 아무리 화려한 언변의 치장에 감춰져 있다 해도 말이다.

 

 


(총 3명 참여)
snc1228y
감사   
2010-03-05 09:45
ghkxn
난해   
2010-03-05 03:01
moviepan
차별이라   
2010-03-04 17:30
hooper
감사   
2010-03-04 17:05
freebook2902
기대   
2010-03-04 16:23
shee6363
잘 읽고 갑니다.   
2010-03-04 16:12
1


밀크(2008, Milk)
제작사 : Focus Features / 배급사 : (주)마운틴픽쳐스
수입사 : 스폰지 / 공식홈페이지 : http://blog.naver.com/milkmovie
공지 티켓나눔터 이용 중지 예정 안내! movist 14.06.05
공지 [중요] 모든 게시물에 대한 저작권 관련 안내 movist 07.08.03
공지 영화예매권을 향한 무한 도전! 응모방식 및 당첨자 확인 movist 11.08.17
82545 [밀크] - (2) ysyoon1121 10.05.13 1257 0
82434 [밀크] 대박이다. (6) yhj1217 10.05.09 1544 1
82417 [밀크] 무겁지만 좋은 영화 (5) honey5364 10.05.08 714 0
82358 [밀크] 희망이라는 단어 (5) kookinhan 10.05.06 716 0
80868 [밀크] 미친 존재감 (6) noh0ju 10.03.31 894 0
80009 [밀크] 하비하비!! (2) rgd8282 10.03.12 742 0
79944 [밀크] 숀펜의 연기변신이 눈부셨던 영화 (3) diswnsdk 10.03.10 901 0
79892 [밀크] 밀크는 꽤 정치적인 영화같더군요. (1) jsy88 10.03.09 899 0
79876 [밀크] 병은 병입니다요 (2) hagood966 10.03.09 728 0
79848 [밀크] 진정 배우들이 빛나는 영화 (7) gion 10.03.08 854 0
79731 [밀크] 좋은 영화의 기근 속에서 단비처럼 내려 준 Great Movie!! (3) yuher29 10.03.05 789 0
현재 [밀크]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며... (6) ldk209 10.03.04 871 3
79659 [밀크] [영화]밀크 (4) sowho5 10.03.03 956 0
79574 [밀크] '밀크' 진정성 넘치는 연기와 스토리 (6) laubiz 10.02.28 1019 1
79511 [밀크] 티 없이 맑은 숀펜의 미소..??? (4) fkcpffldk 10.02.25 1003 0
79492 [밀크] 우윳빛깔 미소 (2) jimmani 10.02.25 816 1
79491 [밀크] <밀크>, 좋았어요 (2) kaya13 10.02.25 726 0
79486 [밀크] 동성애라는 안경을 벗어라 (44) phl931231 10.02.25 12512 3
79445 [밀크] [적나라촌평]밀크 (4) csc0610 10.02.24 1110 1
79444 [밀크] 동성애 그 이상. (4) ann0324 10.02.23 1246 0
79437 [밀크] "게이"만이 아닌 소수를 위한 행동하는 양심에 관한 영화"MILK" (4) mokok 10.02.23 924 0
79421 [밀크] 우리마저 그의 신념보다 동성애로 외면할 것인가? (6) sh0528p 10.02.23 861 0
79239 [밀크] 개인적으로 취향은 아니던데... (9) dongyop 10.02.17 1204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