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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곧 독이다...
ldk209 2009-09-22 오후 9:46:25 904   [3]
믿음이 곧 독이다... ★★★★

 

부모의 유산을 처분해 서울의 한 낡은 아파트로 이사 온 형국(임형국)네 가족. 이들 가족은 형국과 아내 영애(양은용) 그리고 유치원에 다니는 딸 미애(류현빈)로 구성되어 있다. 선배(이성민) 공장을 인수해 형국이 사장이 되었고, 낡긴 했지만 서울의 아파트에 살게 된 이들 가족은 외형적으로 행복의 조건이 갖춰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유모를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다. 이들 가족은 사업상 관련이 있는 위층에 사는 박장로(최정우) 부부의 권유에 따라 교회에 나가지만 치매에 걸린 노모(임천순)가 미애를 유독 예뻐하는 건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박장로의 노모가 사망하게 되고, 장례식에 갔던 미애가 무덤 속에 떨어지는 사건 이후 미애는 임신한 엄마를 괴롭히고, 형국의 공장은 부도 위기에 처하는 등 불길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마치 <독>은 <불신지옥>과 함께 뜬금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영화 같다. 두 영화는 기존 한국 공포영화의 전통(그런 게 있다면)과는 하등 관련이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건 두 영화에 대한 명백한 칭찬이다. 특히 기독교와의 관련에서만 보면 <독>은 <불신지옥>보다 반걸음 더 전진하고 있다.

 

대체 형국네 가족을 불안으로 몰아 놓고 있는 원인은 무엇인가? 이사 당일, “일이 좀 있어서”, 손가락이 다친 채로 늦게 도착한 형국을 무심한 듯 스쳐 지나가는 장면만으로도 <독>은 대단히 탄탄하고 잘 만들어진 영화임을 알 수 있다. 사실 그 간단한 에피소드 안에 모든 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형국과 영애 부부가 그저 계단에 앉아 있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불안함을 느끼고, 별 것 아닐 수 있는 미애의 행동에 대해 영애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둘이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죄의식에서 파생된 불안, 두려움의 표현인 것이다.

 

여기에서 영화 제목 <독>은 중의적 의미로 사용된다. 항아리를 의미하는 독(pot)은 형국이 어린 시절 친구들 장난으로 독 안에 갇혔다가 엄마가 구해준 구체적 에피소드로 등장하지만, 끔찍한 죄를 저지른 형국과 영애 부부가 죄의식이라는 거대한 독 안에 갇혀 있음을 의미한다. 또 다른 의미는 독약(poison)이다. 이는 영화 후반부에 형국, 영애 부부가 죄의식을 잉태하게 되는 단면으로 등장한다.

 

<독>은 결론적으로 오컬트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컬트적 색채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 중심엔 기독교가 존재한다. 형국이 가족을 데리고 교회에 나가기로 결심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그 중에 가장 큰 것은 사업상의 성공을 위해서다. 이를 단적으로 정의하면 ‘기복신앙’이다. 종교를 통해 마음의 평안과 안식을 얻는 게 아니라, 현실적 부(富)를 획득하는 것이 마치 한국 종교의 사명처럼 되어 있다. 대게의 모든 종교가 그러하다. 단적으로 한 유명 목사는 ‘기독교 국가가 불교 국가보다 잘 산다’라고까지 한다. 결과론적으로 그러할지는 모르겠지만(사실 관계부터가 틀리긴 했지만) 종교의 목적이나 선도를 위해 그런 이유를 제시한다면 대체 중세시대 면죄부를 판매하던 교회와 뭐가 다른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앞에서 <독>이 <불신지옥>보다 앞섰다고 한 건, <불신지옥>이 결국 일반적(?)인 기독교에서 벗어난 일부 광신도로 문제의 초점을 돌렸다면, <독>은 기독교 그 자체의 광신성을 다루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독>은 기독교를 정면 공격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독>이 다루고 있는 기독교의 부정적 문화는 충분히 다뤄져야 한다고 본다. 사실 어떤 차원에선 한국 기독교 문화 자체가 끔찍한 공포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등장한 한국 기독교의 모습을 보라. 대표적으로 헌금 액수를 공개하고 다른 신도들을 은근슬쩍 자극하는 목사의 설교가 얼마나 끔찍한 공포인지를. 현실에선 더하다. 유일하게 한국만 있다는 십일조를 자동이체로 받고, 교회 내에 ATM기가 설치되어 있는 것 자체가 알고 보면 공포다. 거기에 아픈 사람에 대한 안수기도는 광신자들이 아니라 동네의 일반 교회에서 자주 선교로 활용되는 수단이다.

 

공포영화로서 <독>은 특정 장면 몇 개가 무서운 영화는 아니다. 그런데 보는 내내 답답함과 어둠이 가져오는 무거움을 시종일관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공포도 서서히 증폭된다. <불신지옥>에 복도식 아파트의 공포가 꿈틀됐다면, <독>에도 아파트 자체의 공포가 넘실거린다. 여기에서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마주보는 현관을 이용한 공포 시퀀스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건 대단한 절제라고 생각한다. 수챗구멍을 막고 있는 머리카락, 녹물이 나오는 수도, 위층의 쿵쾅거리는 소리, 낡아 덜컹거리는 엘리베이터(그리고 엘리베이터의 창문), 먼지가 낀 천장의 환풍기 등 이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요소들이 보는 관객에게 불쾌감을 선사하고, 수족관에 손을 넣고 물고기를 건드리는 미애의 장난, 교회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과소비를 일삼는 영애의 변화 등은 관객의 불안함을 증폭시킨다. 마치 금방이라도 뭔가 일어날 것 같은 음산한 분위기가 영화 관람 내내 객석을 지배한다.

 

<독>이 심리 호러 영화로 매우 뛰어난 성취를 올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순간적인 공포를 선사하는 장면이 부재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내 깜짝 효과만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다른 공포 영화와 비교해 볼 때, 순간적인 공포의 무게도 더욱 크다. 그 중 내 간담을 정말 서늘하게 만들었던 장면은 형국이 미애를 없고 어두운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이다.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계단에서 핸드폰이 울리고, 형국이 핸드폰을 여는 순간 그 빛에 보이는 미애의 얼굴이 카메라가 회전하며 할머니의 얼굴이 바뀌는 지점은 심장이 멎을 만큼 강렬하다.(핸드폰의 빛에 의지해 강렬한 공포를 선사한다는 것은 <독>과 <불신지옥>의 공통점이다)

 

다시 기독교로 돌아와서 얘기하자면 형국은 사업상의 성공을 위해 교회에 나간 사람치고는 매우 열심히 기도를 하고 용서를 구하며, 구원을 원한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죄악이 잉태한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교회에서 안식처를 구했던 것이다. 그런데 독에서 벗어가기 위해 찾은 교회는 결코 형국의 안식처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빠져나올 수 없는 더 큰 독이 될 수 있음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믿음이 곧 독인 것이다.

 


(총 1명 참여)
zoophi
저도 보고싶네요   
2010-01-21 21:07
kyi1978
ㄳ   
2009-11-09 16:57
jhee65
흠... 기독교...   
2009-09-2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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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2008, The Pot)
배급사 : (주)인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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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시간
  • 115 분
  • 개봉
  • 200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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