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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장할 수 없는 사랑 페어 러브
jimmani 2010-01-17 오후 4:32:34 1962   [7]

 

오십을 훌쩍 넘긴 남자가 비로소 첫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도 딸뻘인 20대 여학생과. 반대로 한창 젊을 때인 20대 여인이 50대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도 그 사람이 아버지의 친구인데. 요즘 세상이 하도 흉흉해서인지 이런 이야기거리가 던져지면 많은 사람들이 대뜸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며 언짢게 바라볼 가능성이 크다. 종종 기사를 통해 이런 비슷한 소식들을 접할 때마다 '어머 미쳤나봐', '남자가 돈이 많은가' 하는 요상한 생각까지 해 가며 그들의 사랑을 우리끼리 알아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들이 나누는 것이 다른 외적인 감정이 전혀 끼어들지 않은 그저 순수한 '사랑'이라면 우리가 굳이 나서서 그들의 사랑을 도덕적으로 재단한다는 게 참 이상하게 된다. 콩깍지가 씌인다는 말도 있듯이 남녀간의 감정이란 당사자가 아니면 좀체 알 수 없는 건데 말이다.

 

영화 <페어 러브>는 이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풀어낸다. 그동안 부모자식뻘 이상의 나이차이를 지닌 남녀의 사랑에 대해 감성적이기보다 도덕적 시선으로 바라봤던 일반적인 시각과 다르게 이 영화는 의외로 무척 발랄하다. '우리 사랑하게 해주세요'라면서 처절하게 항변하지도 않고, 쯧쯧거리며 비판하지도 않고, 그저 여느 선남선녀의 사랑이야기를 다루듯한다. 50대 남자와 20대 여자로 주인공만 바뀌었을 뿐이지, 가만 보면 <페어 러브>는 첫사랑에 관한, 갓 익어가기 시작한 풋풋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다. 발랄하되 자유분방하진 않다. 첫사랑 이야기가 발랄할 순 있어도 자유분방함과는 좀 어울리지 않듯이 말이다.

 

오십이 넘도록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 해 보고 그저 카메라가 좋은지 카메라 수리일만 고집하며 살아온 형만(안성기)은 어느날 자기한테 사기 친 경력이 있는 괘씸한 친구 기혁이 위암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음을 알게 된다. 기혁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 형만에 자기 딸인 남은(이하나)을 좀 잘 챙겨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래도 친구였기에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던 형만은 마지못해 남은을 찾아가게 되는데, 의외로 친근하게 대해주는 남은의 모습에 조금씩 마음을 연다. 수십 년동안 그저 홀로 살아온 자신을 잘 챙겨주는 듯한 남은의 모습이 형만은 갈수록 좋아지고, 가벼워 보이는 또래 남자들을 싫어하는 남은은 형만이 갈수록 좋아진다. 그렇게 두 사람의 풋풋한(?) 사랑은 조심스럽게 시작되지만, 이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역시나 곱지만은 않다. 어린 아이한테 무슨 몹쓸 짓이냐면서 질책 당하기도 하고, 다 늙은 나이에 오빠 오빠거린다며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형만은 이 사랑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며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형만은 처음 빠져 본 사랑이라는 게 생각보다 참 어렵다는 걸 알게 되고, 더구나 여러모로 사랑에 서툰 형만은 남은과 점점 갈등을 빚게 된다.

 

 

한 마디로 <페어 러브>는 근래 나온 한국 로맨틱 코미디 중 가장 사랑스럽다. '사랑스런 로맨스'라는 홍보 문구가 틀린 게 하나도 없다. 위화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솔로들이 본다고 해도 수족이 오그라들기는커녕 마음 한구석에 공감의 여지를 남길 수 있을 만큼 현실감을 갖고 있다. 낭만이 들어있으면서도 허세 부리지 않고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여백이 들어있으면서도 쓸데없이 고민하지 않는다. 담백한 배우들의 연기부터가 그렇다. 형만 역의 안성기는 그가 지금까지 해 온 연기 중 가장 귀여운 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쫄깃하고 아기자기한 연기를 보여준다. 안성기 역시 예전에는 숱한 멜로영화에 출연했었지만 지금 젊은 세대에는 그보다 그저 '국민배우'의 인식이 더 강할 텐데, 정말 오랜만에 이 영화를 통해 보여준 멜로 연기는 '국민배우'라는 묵직한 호칭이 잘 어울리지 않을 만큼 발랄하고 풋풋하면서도 얼핏얼핏 고단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올 만큼 현실적이었다. 그저 노련한 모습만 어울릴 줄 알았던 그에게 사랑에 숙맥인 덜 자란 듯한 노총각이 이렇게 어울릴 줄이야. 서툴지만 조심스럽게 사랑에 다가가는 영화 속 그의 모습만 따라가도 그저 웃음이 배어나올 뿐이다. 안성기와 호흡을 맞추는 이하나도 여기에 밀리지 않는 담백한 캐릭터 소화를 보여주면서 보기 좋은 조화를 이루어낸다. 뭔가 독특한 걸 좋아하면서도 가벼운 것보다 어른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드라마 <메리 대구 공방전>에서 보여준 약간 4차원스런 캐릭터를 이어가는 듯 하면서도 정말 현실에 있을 것 같은 캐릭터를 매끄럽게 소화했다.

 

배우들의 연기만큼이나 이 영화는 담백하다. 형만과 남은의 사랑과 그 주변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데 있어서 기름기 잔뜩 밴 시선으로 찬양하지도 않고, 민망하리만치 사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최대한 부담없이, 너무 앞서나가지 않고 조심스럽게 이들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절대 오버하지 않는 배우들의 연기도 한몫하고, 진지한 척 하면서 시종일관 깨알같이 이어지는 유머도 한몫한다. 시작부터 영화는 섬세한 감성영화의 분위기를 풍기지만 중간중간 여러 캐릭터들이 불시에 던지는 훅과 같은 유머는 관객들의 웃음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뒤늦게 찾아온 첫사랑 앞에 아이처럼 수줍어하기도 하고 질투에 휩싸이기도 하는 형만은 물론이요, 시크한 척 할 말 다 하는 형만의 형수, 형만과 남은의 사랑이 무슨 몹쓸 범죄라도 되는 듯 안달복달하는 형만의 친구들, 은근 눈치 없이 낄 데 안 낄 데 구분 않고 다 끼는 형만의 카메라 가게 후배들까지 다소 잔잔한 영화의 전체적 분위기 속에서 자잘한 재미를 곁들이는 인물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영화가 묘사하는 주변 환경이나 주요 소재는 영화에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주된 배경이 되는 홍제동 주변은 서울이긴 하나 휘황찬란한 중심가와는 약간 거리를 둔, 고즈넉하면서 여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형만이 다루는 카메라들과 수리점의 풍경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갖게 마련인 사진에 대한 로맨틱한 환상을 적당히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또 영화 내내 흘러나오는 기타 선율의 OST는 영화에 약간 나른하고 보드라운 로맨스의 느낌을 더해준다. (국내 아티스트에 의한 순수 창작곡들임에도 영어 가사로 되어 있어서인지 그런 느낌이 더 강하다.) 이렇게 낭만적으로 제시되는 안팎의 풍경들은 마치 좀 안 좋게 보일 수 있는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를 예뻐 보이게 포장하려는 의도로 비칠 수도 있지만, 내 생각에 이것은 의도적인 포장은 아니라고 본다. 애초에 영화는 나이차 같은 것을 심각하게 따지지 않는, 그저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이끌어 나간다. 다만 독특한 나이대로 설정해 놓음으로써, '때를 가리지 않는 사랑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형만과 남은 모두 그렇게 적극적인 성격은 아닌 데다 사랑 또한 능숙치 않기에 그들이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은 그렇지 않아도 나이차 때문에 조심스러운데 더 조심스럽다. 실제로 그들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스킨십의 최고 단계는 키스도 아니고 뽀뽀 수준의 '입술 부딪침'이다. 특히 영화는 생전 연애 한 번 못 해 보다가 이제야 비로소 첫사랑을 시작한 형만의 모습을 통해 이들의 사랑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바라보기보다 생각보다 골치 아프지만 결국은 인간에게 있어서 필연적인 사랑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것은 나이는 오십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자신만의 세상에 틀어박힌 채 아이처럼 살아가는 형만이 남은과의 사랑을 통해 보다 사회적인 존재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친구가 이제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날 만큼 나이를 먹을 대로 먹었지만 형만은 다른 친구들과는 좀 다른 성격을 지녔다. 좋게 말하면 천진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철이 없는 거다. 그저 카메라가 좋아 수십년 째 카메라 고치는 일로 먹고 살지만, 그 외 그에게 다른 욕심은 없다. 가정을 이루고자 하거나 더 안정적인 직장에서 돈을 벌어 번듯한 집을 마련하고자 하거나 하는 꿈은 없이, 그저 현재가 편안해 거기에 안주해 살 뿐이다. 형네 집에 얹혀 사는 게 눈치 보여서 가게에서 잠을 해결하긴 해도, 그렇다고 다른 일을 찾아나서는 건 그에게 맞지 않는 듯 하다. 현재가 좋을 뿐, 뒤돌아 보거나 앞을 내다볼 계획은 없는 듯 하다. 이런 형만에게 남은은 관계를 확장하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확장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불확실성에 호기심을 갖기보다 확실성에 안주하려던 형만의 모습은 남은이 내미는 손을 잡게 되면서 불확실의 바다로 점점 이끌리게 된다. 나이가 한참 들고 나서야 뒤늦게 깨달은, 불확실함이 주는 삶의 매력이 이제야 빠져드는 것이다.

 

 

형만은 남은과의 첫사랑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다른 후배와 조금만 가까이 지내는 듯하면 질투의 시선을 숨기지 않고, 유학을 가서 더 폭넓은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남은의 심정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것은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과 제대로 대면한 형만이 자신의 짝이 된 남은을 '100% 확실함'의 틀 안에 품고 싶어하다보니 생기는 일들이다. 내가 이 여자만을 반드시 사랑하니까 당연히 이 여자도 나만을 반드시 사랑해야 한다는 그런 확실성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 마음이 그렇게 되던가. 사랑의 과정에서 내가 그 사람을 100%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도 나를 100% 좋아한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확실성의 틀 안에 사랑을 가둔 채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대처하기보다는 '페어'(Fair)하게 50대 50의 가능성을 놓고 서로 조금씩 맞춰 가는 것, 그것이 보다 유연하게 사랑을 엮어가는 방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확실한 것에 안주하길 좋아했던 형만은 남은과의 사랑을 겪으면서 인간 감정의 불확실한 본질에 대해 깨달아가고, 그 모호함을 조금씩 뚜렷하게 밝혀 나갈 줄 아는 방법을 터득해 나간다. 예전에는 더딘 진도가 답답해서 그만하라고 다그쳤을 조카의 짝사랑 이야기도 점점 경청할 수 있게 되듯, 불확실한 사랑과 기다림의 역학관계에 대해 서서히 알아가는 것이다.

 

형만이 늦깎이 첫사랑을 통해 점점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에서 볼 수 있듯, <페어 러브>는 감독이 말하듯 얄궂은 로맨스물에서 그치지 않는 일종의 '성장영화'라고 해도 무방하다. 나이를 한참 먹도록 여태 철이 들지 못한 남자가 막 시작된 첫사랑을 통해 건강검진을 하듯 점점 나를 되돌아 볼 줄도 알게 되고, 멋진 사진의 탄생을 위해 진득하게 기다리듯 멋진 인간관계를 위해 나서서 노력해 볼 줄도 알게 된다. 이렇게 인간에게는 사랑도 특별히 때가 없고 성장도 별 다른 때가 없는 듯 하다. 나이가 든다고 다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어리다고 다 모르는 것도 아닌가 보다. <페어 러브>는 이렇게 세월이 지나도 알다가도 모를 삶의 이치를 참 깜찍하게도 이야기하는, 발랄하지만 알고 보면 속 깊은 영화다.


(총 0명 참여)
hssyksys
잘봤습니다^^*   
2010-04-16 00:45
kimshbb
그래요   
2010-01-22 20:10
ghkxn
로맨틱   
2010-01-19 08:45
naredfoxx
50대50의 가능성이라... 잘 읽고 갑니다.   
2010-01-18 21:54
sdwsds
보고싶은 영화   
2010-01-18 16:55
snc1228y
감사   
2010-01-18 09:57
kooshu
사랑스럽군요!!!   
2010-01-18 09:47
hy1020
흠...그렇군요~   
2010-01-17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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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 러브(2009, The Fair Love)
제작사 : (주)루스 이 소니도스, 타일씨앤피(주) / 배급사 : CJ 엔터테인먼트
공식홈페이지 : http://www.fairlo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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