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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통찰하는 페이소스 환상의 그대
macbeth2 2011-01-27 오전 11:05:17 653   [0]

<화두(話頭)>

영화는 “셰익스피어는 일찍이 ‘인생은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고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라는 중년기 남저음 목청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이는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맥베드(Macbeth)'중 가장 유명한 대사로서 5막 5장, 23~28행에 등장한, 죽음을 목전에 둔 맥베드가 깊은 회한(悔恨)에 사로잡혀 내뱉는 독백이다.

 

훗날 미국의 소설가인 윌리엄 포크너는 이 독백의 한 구절에서 따온 ‘소리와 분노(The Sound and the Fury)’라는 제목의 소설로 194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셰익스피어의 그 위대한 원전은 아래와 같다.

 

“Life'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And then is heard no more; 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인생은 단지 걸어다니는 그림자요, 가여운 배우일 뿐.

무대위에 주어진 시간동안 뽐내기도하고 조바심도 치다가

(시간이 다 되면)더이상 아무말도 들리지 않는다.

인생은 어리석은 자에 의해 씌여진,

헛소리로 분노로 가득차 있고,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야기이다.”

 

기지(旣知)의 우디 앨런작품이 그러하듯, 이 영화 역시 연극적인 클래식컬 포맷으로 구성되어, 삶의 어느 한 시점에서 인간이 가진 이중적 내면을 사소한 수다를 통해, 지적(知的)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우디 앨런 특유의 웃음과 페이소스를 전한다.

 

 

<내용요약>

영화가 시작되면 두 커플의 불협화음이 들리고 결국 분해되면서, 새로 형성된 네 커플, 여덟 명의 남녀는 거듭되는 위기와 유혹으로 인해 복잡해져 가는 심경의 변화를 관객에게 온전히 전이시키며 예측불허의 로맨스 소동을 진행해 나간다.

 

알피(앤서니 홉킨스 분)는 잃어버린 청춘을 되찾겠다는 환상에 젖어, 40년간 함께한 조강지처 헬레나(젬마 존스 분)와 헤어지고, 교양이라고는 절대 찾아 볼 수 없는 손녀뻘의 젊고 쭉쭉빵빵한 삼류단역배우 샤메인(루시 펀치 분)과 결혼을 선언한다.

 

하지만 그의 재혼은 결국 재앙이 되고, 샤메인의 방만하고 난잡한 생활에 염증을 느낀 알피는 전 처 헬레나를 다시 찾아 용서를 빌지만 외면당한다.

 

한편 이혼의 충격으로 신경안정제와 정신과치료에 의지하며 시름의 나날을 보내던 헬레나는 미래를 내다본다는 점쟁이(fortune teller) 크리스탈이 던져주는 달콤한 위로의 한마디 한마디를 좌우명 삼아 남편에 대한 배신감을 삭이며 지낸다.

 

점쟁이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모든 말들을 철석같이 믿고 암송하는 헬레나를 현실과 괴리된, 좀 모자라고 치매끼 있는 노인네라고 업신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환상에 젖어 사는 헬레나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증거를 영화의 종반에서 확인하게 된다.

 

척박한 현실에 괴로워 하느니 희망이 있는 환상이 우리를 더욱 행복하게 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알피 부부의 하나밖에 없는 사위 로이(조시 브롤린 분)는 등단할 당시에 받았던 각광을 재현코자 새로운 작품을 위해 경주하지만, 낮에는 생계를 위해 택시운전을 하고 밤에 글을 써야하는 산만한 생활에, 작품은 커녕 나날이 슬럼프에 빠져들고, 스스로도 재능이 의심스러운 작가이다.

 

아내이자 알피 부부의 외동딸인 샐리(나오미 워츠 분)와의 언쟁이 나날이 점입가경으로 증폭될 즈음, 로이에게 'tall dark stranger'(귀인)로 여겨지는 인연이 나타난다. 로이는 길건너 창가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신비스런 붉은 옷의 아름다운 인도계 혼혈여인 디아(프리다 핀토 분)에게, 검은 독수리도 손으로 문질러서 하얗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처럼 그야말로 무모하게 환상에 빠져든다.

 

또한 차기작의 압박에 시달리던 로이는, 우연한 사고로 사망한 친구의 획기적인 소재의 미발표 처녀원고를 도용해, 자신의 작품인 양 출간하여 다시 명성을 얻는 데 성공하고, 아름다운 디아의 사랑도 얻게 된다.

 

하지만 결국, 죽은 줄 알았던 친구는 Coma상태일 뿐이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게다가 눈 깜빡임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설상가상(?)으로 곧 깨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한 채 사색이 된 얼굴로 병실을 서둘러 떠난다. 모든 환상이 물거품처럼 꺼지는 순간이다.

 

한없이 무능해 보이는 남편에게 이젠 신물이 난 샐리 역시, 이혼 후 갤러리의 부유한 직장상사 그렉(안토니오 반데라스 분)의 매력에 점차 빠져들어 결국 그를 사랑하게 되고, 그렉 또한 자신을 연모하리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그것 또한 혼자만의 환상이었다.

 

실망한 샐리는 갤러리를 사직하고, 어머니를 찾아가 자금을 빌려 독립하려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하지 말라는 점쟁이의 말을 굳게 믿은 어머니 헬레나는 결코 딸을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

 

 

<처방전>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는 ‘당신은 키 크고 신비한 낯선 이를 만날 것이다’라는 뜻인데, 우리식으로 의역하면 ‘동쪽에서 온 귀인을 만난다’ 정도이니, 로또 당첨이나 멋진 이성에 대하여 종종 그러하듯이, ‘삶에는 때때로 신경안정제 보다는 환상이 필요하다’는 메시지 외에 특별히 원제를 의식할 필요은 없는 듯 하다.

 

줄곧 헐리우드 영화계의 상업적 작품 접근방식에 반기를 들고, 직접 각본을 집필하며 출연까지 마다않는 지성인이자, 도시인(都市人) 내부에 잠재된 노이로제(Neurose)를 냉소적 아이러니로 신랄하게 풀어 내어 세인의 주목을 받아 왔던 우디 앨런, 이야기를 전해주는 화자에 비중을 많이 두곤 하여 영화감독이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소설가가 되었을 지도 모를, 올해 75세의 코메디 배우 출신 노 감독의 40번째 장편영화로 2010년 제63회 깐느 국제영화제 감독주간 상영작품의 원제이다.

 

“인생이란 고통스럽고 악몽 같고 무의미한 경험의 연속이죠.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을 속이고 남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니체, 프로이트, 유진 오닐도 그렇게 말했어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한 커플은 스스로를 속이고 멍청한 사람들과 어울려요. 아무튼 그게 저보다는 행복하죠.”

 

공식 기자회견에서 너무도 진지하게 우디 앨런이 한 발언이다.

 

우디 앨런의 작품에는 여타의 불럭버스터에 비하면 크지 않은 영화들임에도 명불허전(名不虛傳)의 대스타들이 대거 출연하여 그들이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개성과 매력을 발산하곤 한다.

 

이 영화에서도 ‘양들의 침묵’에서 악마성을 보여줬던 안소니 홉킨스가 회춘을 꿈꾸는 주책스런 노인으로, ‘킹콩’이 흠모하던 나오미 와츠는 인생역전을 꾀하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불굴의 카우보이 조쉬 브롤린은 무능한 소설가 남편으로, ‘마스크 오브 조로’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부유하고 지적인 매력남으로 변신한다.

 

겉보기엔 남부러울 것 없이 삶을 향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채워지지 않는 고독과 신경증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은, 힘들고 지칠때 자발적으로 환상에 빠져서 운명같은 일탈을 꿈꾸거나 일확천금의 인생역전을 도모(圖謀)하다가 정작 소중한 많은 것을 놓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70대 감독은 그의 인생에 대한 경험과 통찰력을 담은 에필로그 내레이션에서 “인생은 수많은 불확실성(uncertainty)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더욱 환상(illusion)이 필요하다”고 처방전을 정리한다.

 

98분의 러닝타임 후 재즈선율과 함께 엔딩클레딧이 올라갈 때 쯤 관객들은 생각한다. 불확실한 나의 인생이 살 만한 그것이 되기 위해 지금까지 나는 어떤 ‘tall dark stranger’를 기대했으며, 향후 과연 어떤 환상을 꿈꿔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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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그대(2010,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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