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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란만의 수작 세 얼간이
macbeth2 2011-08-12 오전 2:37:10 772   [0]

<서론>

최고의 엘리트들만 모이는 인도가 낳은 세계적 명문 공과대학 IIT델리(인도델리공과대학, 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 Delhi)는 MIT(메사추세츠공대,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UC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와 함께 2007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 3대 공과대학중 한 곳으로 미 항공우주국(NASA)의 32%, 실리콘벨리의 12%가 이 대학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곳에 들어 온 천재들의 목표는, 좋은 학점으로 좋은 직장에 취직해 많은 돈을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 현재의 삶은 기꺼이 희생되어야 한다.

그곳의 공학도들이 꿈을 좇는 이야기를, 세 명의 얼간이들(?)의 반란을 통해 시종일관 유쾌하고 매력적으로 그려낸 인도 최고의 작가 체탄 바갓(Chetan Bhagat) 원작 소설 'Five Point Someone: What not to do at IIT'을 영화화 한 ‘세 얼간이(Three Idiots)’ 속의 분위기가,

60년대 당시 전 세계 160개국 중 우리와 최빈국 1, 2위 를 다투던 인도였지만, 그 과거 뿐만 아니라 영화속의 현실이 현재의 대한민국과 너무나 닮아 있어,

인도영화에 다소 냉소적인 관객에게 조차 영화에 몰입하는 데에 매우 도움이 된다.

몸저 누우신 아버지와 지참금이 없어 결혼하지 못하는 누이를 둔 몹시 어려운 가정 형편임에도, 아들을 최고의 공학박사로 만들고 싶어 모든 걸 헌신하는 가족들의 모습들이라든지,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사시는 엄격한 아버지의 뜻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소질과는 무관하게 전공을 선택하여 갈등하는 모습등이 그것이다.

아마도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선망하는 뿌리깊은 동양적 가치관은 이곳이나 그곳이나 서로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시놉시스>

논어(論語)의 학이편(學而篇) 첫머리에 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멀리서 벗이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했다.

학창시절 뭉치던 친구 파르한, 라주가 절친인 란초(아미르 칸 분)를 만나기 위해, 송파구 가락시장에 있는 깔대기같은 장소의 꼭대기에 새겨진 낙서 앞으로 모인다.

실제로 서울의 그곳에서 촬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난 번번이 그 길을 지나 다니면서도 아직 그 건축물의 쓰임새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는데, 영화를 통해 비로소 그 위가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있었다.

이후 영화는 탄탄한 구성력을 토대로 단속적(斷續的)인 사고의 흐름을 따라 현재와 과거를 교차로 넘나들며 전개된다.

전국에서 수재들만이 입학가능하다는 인도 최고의 명문 IIT에 입학한, 같은 과 같은 기숙사의 세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방식과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며 영화는 전개된다.

경쟁이 치열하고, 학생 개인의 의사와 창의력을 존중하기보다는 정형화된 교육제도의 틀을 강요하는, 주입식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그들의 교육시스템은 우리나라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친숙하다.

첫 신입생 상견례에 뻐꾸기 둥지를 들고 와서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을 강조하던 학장 ‘바이러스’, 그리고 무한경쟁과 교과서적인 정답만을 강요하는 IIT의 시스템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는 세 학생은 보잘것없는 평점 때문에 패배자로 불리며 얼간이 취급을 당한다.

특히 자유로운 영혼의 란초는 개성과 창조력을 수용하지 못하는 현 교육제도가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파르한과 라주도 점차 그의 뜻에 공감하게 되며 자신들만의 길을 개척해 간다.

“단 한순간만이라도 삶이란걸 살게 해줘요"라는 절규만을 남긴채 지적(知的) 경쟁의 과도한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수재의 삽화(揷話)는 비단 픽션만은 아닌 것이다.

란초는 거침없는 행동으로 강압적으로 주입식 교육을 강요하는 교수진에게 반기를 들기 시작하고, 동기들도 조금씩 그의 주관 강하고 신선한 행동에 흥미를 가지게 되지만, 이를 항명(抗命)으로 받아들인 학장 바이러스는 그를 눈엣가시로 여겨 어떻게든 망신을 주기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지만, 영특한 란초에게 번번이 당하기만 한다.

돌이켜 보면 란초같은 인물은 학창시절 한 두 명씩은 꼭 있었다.

학점에 연연하지 않고 괴짜스런 행동거지로 주변 동료들을 즐겁게 하던 친구가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언뜻 한 두명 쯤은 떠오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란초는 이 억압된 교육환경 조차 즐기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을 굳이 마다하지 않는다.

비록 추구하는 이상향이 자신과 달라도, 상게서(上揭書) 학이편(學而篇)에서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라 했듯이, 배우고 때로 익히는 학문자체를 사랑하기에 란초는 늘 수석자(首席者)의 자격으로 바이러스 학장과 해마다 ‘적과의 동침’같은 기념사진을 찍는다.

결국 란초의 다이나믹하고 유쾌한 기질의 긍정적 파동은, 파르한과 라주에게 전달되어 삶에 대한 강한 용기와 자신이 해야하고 또 하고싶은 일을 찾게 만들어 주었고, 심지어 바이러스 학장의 고지식한 삶의 준거(準據)까지도 차츰 변화시키게 된다.

<소감>

영화는 비록 깃털처럼 가볍지만, 웃음 가운데 날 선 현실비판이 칼집에 숨어있다.

인도영화에 대한 그간의 나의 편견을 산산조각 낸 영화였으며, 새삼 일순간이나마 발리우드의 위상이 허리우드를 추월하지 않았나 하는 가설조차 가능하게 하였다.

인도에서는 대부분의 개봉관에서 자국의 영화를 상영한다고 한다. 국민들의 영화에 대한 관심이 인도를 ‘영화강국’으로 만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자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인도 영화의 마력이라고도 했다.

어깨를 들썩이게 했던 샤워실의 집단댄스 등 회고록에 남겨도 참으로 좋을 명장면이었지만, 아마도 상영시간을 맞추려 했는 지, 추가적인 몇 몇 군데의 뮤지컬 장면을 포함한 편집흔적으로, 음향이나 장면의 전환상에 매끄럽지 못한 티가 보여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예술작품의 원작에 가위질을 해대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피카소 그림의 폭이 액자보다 1센티 길다고 해서 잘라내서야 되겠는가?

가능하다면 감독외에는 손대지 않은 원판을 구해 다시 감상하고 싶다.

“마음은 쉽게 겁을 내기 때문에 때로는 속여 줄 필요가 있어. 가슴에 손을 대고 말해봐. 해결할 수 있는 용기를 줄 거야. 알 이즈 웰, 알 이즈 웰…….”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이 말은 ‘all is well’의 인도식 발음이다.

여기엔 모든 것은 잘될 거라는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담겨있다.

머리보다는 가슴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면 모든 것이 잘 될거라는 'all is well'은 ‘죽은 시인의 사회’의 ‘까르페디엠(라틴어:carpe diem,현재에 충실하라)’, ‘라이온 킹’의 ‘하쿠나마타타(스와힐리어:hakuna matata,근심걱정일랑 떨쳐버려)’처럼 긍정적인 에너지를 마구 발산시키고 있다.

극중 판조르의 “의미는 내게 불필요해요, 다 외워버리면 되니까요”하고 말한 대사처럼, 인성배양(人性培養)보다는 경쟁기계 생산공장이 되어버린 지 오래인 대학, 주입력과 암기력을 순서로 매기는 현 교육의 불합리성을 향해 해학(諧謔)과 유우머로 통렬하게 강펀치를 날리는 내용은, 유사 주제를 비장미(悲壯美)로 풀어낸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그것과는 차별된 장점을 선사한다.

평점이나 부의 축적이 또 다른 인생의 요소들보다 얼마나 더 중요할까?

과연 누가 비정상이란 말인가? 란초가 이상하게 생각된다면 당신은 이미 비좁은 이 땅위에서 정형화된 인간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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