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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위로의 끝이 가슴 저미는 쓸쓸함이라니.... 세상의 모든 계절
ldk209 2011-03-30 오후 3:44:55 849   [0]
부드러운 위로의 끝이 가슴 저미는 쓸쓸함이라니.... ★★★★

 

이름으로만 봐선 앙숙이 톰(짐 브로드벤트)과 제리(루스 쉰) 부부는 행복하다. 지질학자인 톰, 심리 상담사인 제리는 서로를 아끼고 작은 텃밭을 일구며 아들 조이(올리버 말트캔) 등 주위 사람들을 불러 화목한 파티를 여는 등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제리의 직장 동료인 메리(레슬리 맨빌)는 불안하고 조급한 심리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만 톰과 제리는 메리를 언제나 따뜻하게 감싸준다. 메리는 톰과 제리에게 점점 더 기대게 되지만, 어느 가을날 이들 사이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한다.

 

영화 속 인물들의 개성이나 특질을 살려 영국 하층민과 노동계급의 일상을 얘기하고 보수주의의 허상을 까발리는 데 주력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마이크 리 감독. 그러나 그가 만드는 영화적 본질에 관계없이 그의 영화는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 아름다운 사람들, 그리고 유머와 따뜻함으로 기억되곤 한다. 그래서 전작 <해피 고 럭키>도 그러했지만, 영화를 보고 난 직후에 느낌과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곱씹었을 때의 느낌은 온도를 조금 달리한다. 아니, 어쩌면 전혀 별개의 해석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계절>은 제목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담으며, 조금씩 변해가는 사람 사이의 관계도를 그리고 있다. 누군가, 사람의 관계는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이라고 했든가. 등장인물들 사이에 일어나는 미묘한 관계의 변화를 이토록 따뜻하게 바라보고 안아주고 위로해주는 영화가 있었던가 싶게 이 영화의 전반적인 온도는 무척이나 따뜻하고 친숙하다.

 

무대는 톰과 제리의 주택이지만, 대체로 시선은 메리에게 향해있다. 당신은 사랑받기 태어난 사람이라는 데 메리는 불행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느껴진다. 항상 누군가의 관심과 위로를 받으려 하지만 원하는 위로의 상대를 멀어지고 원치 않는 상대는 가까이 다가온다. 당신 처지에서 그러는 게 사치라고? 행복해지기 위해 뭔가를 포기하고 체념해야 된다면 그게 과연 행복일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항상 수다스럽고 정신없던 메리가 상처를 입은 눈빛으로 입을 닫고 눈치를 보는 모습은 마치 길들여진 야생동물을 보는 것처럼 안쓰럽기 그지없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매우 생태적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에 따라 땀의 결실들이 식탁에 오르고, 이웃과 지인들이 나누어 먹는 모습 자체부터가 매우 생태적이며, 톰과 제리 부부의 따뜻함은 자연의 안온함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게다가 영화에 출연하는 인물들은 때때로 환경에 대한 얘기들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마이크 리 감독의 영화를 이렇게 단선적인 따뜻함으로만(!) 바라봐도 되는 건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전작인 <해피 고 럭키>와 이 영화가 닮아 보이는 지점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딱히 행복할 것 같지 않은 인물들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묘한 아이러니, 행복은 무엇일까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듯한 질문들, 특히 행복이 전염되지 않는 현상.

 

<세상의 모든 계절>은 마치 톰과 제리 부부를 둘러싼 공전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듯 느껴진다. 그런데 톰과 제리, 그리고 아들 조이로 구성된 혈연 가족만이 행복하고 그 주위의 위성들은 모두 행복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행성과 위성은 크든 작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건만, 톰과 제리는 일방적으로 주고, 위성들은 일방적으로 받는 관계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건 혹시 톰과 제리의 시선에서 바라 본 일방적인 편견 아닐까?

 

조금 삐딱하게 바라보면 톰과 제리 가족의 베풂은 부르주아의 위선과 오만을 상징하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메리와 톰의 친구 켄(피터 와이트)이 잘 어울리며, 둘이 좋은 관계가 되면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톰과 제리의 희망은 오만적이고 위압적인 시선으로 느껴지며, 이렇게 바라보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이들 부부와 메리의 관계가 파열음을 일으키는 사건 때문이다.

 

어떠한 경우에서도 톰과 제리 부부는 메리를 이해하려 하고 따뜻하게 대해주려 한다. 그러나 메리가 자신들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려는 희망을 보이는 순간, 이들은 가차 없이 메리를 내친다. 이건 아들 조이가 어떤 선택을 하며,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에 상관없는 문제인 것이다. 여기엔 “감히 네까짓 게 우리와 같은 선상에 서겠다고?”하는 식의 오만함이 보인다. 이 관계를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메리의 절대적이고 일방적인 굴복 말고는 없다. 불쌍히 여겨 주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테두리 안으로는 들이지 않겠다는 선언은 마치 복지는 권리가 아니라 국가(가진 자)가 가난한 자에게 베푸는 시혜라고 말하는 MB 정부 주요 인사의 사고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너무 과도한 정치적 해석일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왜 이들 부부와 이들 가족만 행복하고 다른 구성원들은 모두 불행한 것인지 마음이 조금 불편하다. 영화의 결론은 희망으로도 절망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톰의 형과 메리가 결국 서로에게서 위안을 찾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바라볼 수도 있고, 반대로 메리는 결국 톰의 형에게서도 상처를 입지 않을까 하는 반대의 시선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어쨌거나 영화는 메리의 갈구하는 눈빛을 마지막으로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그 눈빛은 관객을 향해 있다. 자기를 구원해 달라는, 자기를 위로해 달라는 호소. 그래서 영화는 너무 쓸쓸하다.

 

※ 상층부가 돈을 벌면 하층부도 덩달아 부가 증가하는가? 과거 김대중 대통령도 이런 식의 표현을 자주 구사하고는 했다. 아랫목이 먼저 덥혀지면 나중에 윗목까지 따뜻해진다고. 그러나 현실은 그와 반대라는 걸 말해준다. 국가는 부유하지만 국민은 가난하다는 일본(여기서 국민은 대다수의 서민을 의미한다)에 반해 브라질 룰라 대통령이 압도적인 지지 속에 퇴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저소득 계층에 대한 직접 지원 때문이었다.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펴며, 대기업이 잘 나가면 대한민국이 잘 나가는 것이고, 그러면 국민들 모두가 잘 살게 될 것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정치권력, 경제권력을 장악한 이들이 더욱 많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톰과 제리 부부가 아무리 행복하게 살아도 그 행복이 주위에 전염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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