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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눈물이 버무려진 다섯 게이들의 이야기... 종로의 기적
ldk209 2011-06-15 오전 11:26:04 583   [0]
웃음과 눈물이 버무려진 다섯 게이들의 이야기... ★★★☆

 

종로에 동성애자들이 많이 모인다는 사실을 언제부터인지 어떤 계기로 인해서인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런 얘기는 최근도 아니고 아주 오래 전부터 암암리에 회자되어 왔다. 낙원상가를 끼고 있는 허리우드 극장과 파고다 극장에 주로 모인다는 얘기도 있었고, 이성애자가 그곳에 놀러 나갔다가 봉변(?)을 당했다는 경험담도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경험담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게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들은 얘기라는 공통점도 있다.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 <밀크>라든가 아무튼 게이가 주인공인 영화를 보면 게이는 게이를 알아본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인 앤 아웃>에서도 동성애자란 소문이 돌고 있는 주인공이 자신은 이성애자라며 고충을 토로하자, 누군가는 ‘아마 너는 동성애자가 맞을 거’라며 오히려 주인공을 설득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의 시골 게이 영수도 종로의 한 포장마차에서 알게 된 사람으로 인해 게이 커뮤니티 활동을 시작했다는 걸 보면 나름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은 네 명의 게이들의 현재 삶을 하나씩 풀어 놓는다. 첫 번째 주인공은 영화감독 소준문. 군대 시절 동성애자임을 밝혔다가 강제로 정신병원 치료를 받는 등 아픈 과거를 안고 사는 그는, 또 다시 아픔을 겪게 될 것이 두려워 아예 다가서려 하지 않는다. 촬영현장에서의 모든 실수가 자신이 게이이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질책을 받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 그러다보니 스텝과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점점 움츠려들던 준문씨는 결국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포기하고야 만다. 그러나 그에게 완전한 포기란 없다. 준문씨는 끝내 난관을 극복하고 다시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옮기는 중이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장병권씨. 동성애자 인권운동과 보건연대 활동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모든 차별 받는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집까지 사무실로 활용하면서 모든 시간을 쏟아 붓고 있다.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 등 온갖 민중들의 투쟁 현장에 그가 있다. 아픈 기억 하나. 오래 전 종로 비원 앞에서 민주노총 관련 집회가 열렸을 때, 동성애자 단체에서 유인물을 돌리는 것을 봤다. (아마 그 중에 병권 씨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나가던 노동자들 중 일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호모새끼들은 왜 나온 거야?” 물론 꽤 오래 전 일이다. 지금 그런 말을 그런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외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의 인권 인식은 성장한 것이다.

 

세 번째 주인공은 시골 게이 최영수씨. 기억하기로는 경북 영주에서 10여 년 전에 서울에 와서 스파게티 집을 운영하고 있는 영수씨는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힘든 나날을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수씨는 종로의 한 포장마차에서 누군가와 알게 됐고, 게이 커뮤니티 활동을 시작한다. 술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던 그가 그 동안 얼마나 외로웠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게이 커뮤니티의 합창단인 지보이스 멤버이기도 한 그는 고등학교 시절 자신이 좋아했던 친구를 초청해 놓고는 노심초사 안절부절이다. 그는 지금이 자기 게이 인생의 황금기라며 내내 함박웃음이다.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욕과 웃음이 이토록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사람이라니.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를 지나던 영수씨의 예고 없는 마지막은 깊은 슬픔을 객석에 아로새겨 놓는다.

 

네 번째 주인공은 에이즈 환자 인권 운동을 펼치고 있는 정욜씨. 촬영 당시 회사에 다니던 그는 1000일 전에 자신의 사랑을 만나게 되었고, 그는 에이즈 보균자다. 놀라운 건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사실을 알고 만났다는 사실이다. 종로의 게이 커뮤니티 내에서조차 어느 정도 기피의 대상이라는 에이즈 보균자와의 사랑과 그로 인한 삶의 변화는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조용하면서도 강력하게 호소한다.

 

성적 소수자를 다룬 다른 다큐멘터리와 비교했을 때 <종로의 기적>이 보여주는 가장 큰 장점은 쾌활함, 유쾌함, 밝음, 일상이라는 정서일 것이다. 어쩌면 가장 은밀할 수도 있는 게이들의 삶의 깊숙한 곳을 카메라는 헤집고 들어가고, 주인공들도 딱히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자신들의 체위에 대한 얘기도 스스럼없이 꺼내고 자신들끼리 나누는 정제되지 않는 언어도 그대로 카메라 앞에 던져 놓는다. 물론 이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성적 소수자와 친분이 없는 나의 경우를 봤을 때 <종로의 기적>을 통해 내가 확인하게 되는 건, 아니 어쩌면 놀라게 되는 건, 이들에게서 이성애자와 다르다거나 하는 그 어떤 특별함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각자 펼쳐놓는 인생과 사랑이야기는 그저 한 인간의 인생과 사랑이야기이고,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그런 이야기들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느껴진다.

 

네 명의 주인공들이 이처럼 편하게 자신의 일상을 공개하고 이야기를 풀어 놓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마도 이혁상 감독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 같다. 이혁상 감독과 네 명의 주인공들은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스스럼없이 반말로 대화를 나누고, 깊은 신뢰가 아니라면 하기 힘든 얘기들을 쉽게 풀어 놓는다. 같은 성 소수자라는 소속감, 자신들의 커뮤티니에서 서로 나누었던 신뢰의 힘이 인터뷰에 그대로 묻어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종로의 기적>은 넷이 아닌 다섯 게이들의 이야기이다.

 

※ 안타깝긴 하지만, <나는 액션배우다>나 <종로의 기적>의 영수씨의 경우를 보면, 다큐멘터리의 최대 힘은 예상치 않은 상황이 화면에 고스란히 담긴다는 점인 것 같다.

 

※ 영화를 보고 나니 영수씨가 빠진 영화 포스터가 너무 슬프다.

 

※ 가끔 술자리에서 '나는 게이가 이해가 안 돼'라며 울분(?)을 토하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내 생각에 이해되지 않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같은 이성애자라고 다 이해되는가? 어차피 이건 이성애자 동성애자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해하는 문제라고 본다. 그리고 어쩌면 이 문제는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문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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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의 기적(2010, Miracle on Jongno Street)
제작사 : 연분홍치마, 친구사이 / 배급사 : (주)시네마 달
공식홈페이지 : http://blog.naver.com/gay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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