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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퍼]<개점휴업> 매력적이지만 '아쉽다' 싸이퍼
emptywall 2003-11-28 오후 11:13:35 1137   [4]
 

쉽지 않다. 한번 겨뤄보자고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있다. 누구지? 누구길래? 빈센조 나탈리 감독.. 1997년 <큐브>로 뭇사람들의 뒤통수를 뻐근하게 하고,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들어 악관절(顎關節)을 유난히 괴롭혔던 바로 그(!)다. 어허.. 이번에는 쉽지 않겠는걸.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아이덴티티>로 골머리를 앓았던게 엊그제 같은데 또 한명의 강적이 나타난 것이다. 자국인 캐나다 평단에서 미국의 [조지 루카스]와도 바꿀 수 없다고 호언하는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인 <싸이퍼>와의 만남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모건 설리반- 제레미 노덤]은 자신의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생활을 바꿔보고자 디지콥社의 산업스파이에 지원한다. 테스트를 통과한 그는 디지콥사와 경쟁관계에 있는 썬웨이社에 잠입한다. [잭 써스비]라는 새로운 신분으로 정보를 캐내던 그에게 [리타 포스터- 루시리우]라는 여인이 나타난다. 이상스레 그녀에게 끌리는 [모건]. 그런 그에게 [리타]는 놀랄만한 사실을 말해주는데..

 


여기서부터 밀고 당기는 겨루기는 시작된다. <싸이퍼>는 그다지 청량감을 주는 영화가 아니다. 이것은 관객들과의 머리싸움이 목적인 스릴러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겠지만, 무미건조한 영상과 분위기를 즐기는 듯한 감독의 독특한 스타일도 한몫을 하고 있다. 영화초반에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는 듯한 [모건]이 디지콥사에 찾아가 테스트를 받는 장면을 보면 화면을 한가득 채우고 있는 채도가 제거된 듯한 몽환적인 회색빛을 볼 수 있다. 친구 한명없이 일하는 기계로 살아가는 [모건]의 황폐한 심정을 대변해주는 듯한 이 회색은 그가 디지콥사로부터 지령을 받고 스파이 활동을 하면서부터 서서히 제 색깔을 찾아간다. 또한 그가 건물밖으로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은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반듯하다. 그 숨막히도록 규칙적인 도로위로 미끄러져 가는 차 안에서 [모건]은 이미 절실히 일탈을 꿈꾸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이런 자잘한 이야기에 마냥 관심을 갖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잠시 한눈 파는 사이에 그는 잽을 날리기 시작한다.‘어딜 보고 있는거야? 여길 보라구. 네 상대는 나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리타]가 나타나면서 [모건]이 믿고 있던 현실은 부정되기 시작한다.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내던져지면서 본격적인 싸움은 그렇게 시작된다. 거대 다국적 기업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종의 사건들과 그 사건의 중심에 있는 [모건]. 그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마다 구해주는 의문의 여인 [리타]. 그리고 그녀의 고용인이자 모든 정보를 손에 쥐고 있는 의문의 남자.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과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진실은 무방비의 관객들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가기에 충분해 보인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도 볼만하다. [제레미 노덤]은 감독의 의도에 너무나 잘 부응하고 있다. [모건]의 어리숙한 회사원에서부터 스파이로의 변모를 그는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리타]역의 [루시 리우] 역시 팜므파탈의 각인된 이미지를 벗어나 지금까지와는 다른 내면연기를 선보인다.(그러나 역시 <미션 임파서블>을 떠올리게 하는 액션 연기가 있는 것을 보면 그녀의 연기변신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싸이퍼>의 미덕은 역시 <큐브>로 전세계를 들썩거리게 했던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연출력에 있다. 하지만 스릴러의 반전에 내성이 생겨버린 관객들에게 그의 공격은 쉽게 먹혀들지 않는다. 극중 클라이막스라면 당연히 있어야만 하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전에 이미 진실을 알아버린 사람들에게 <싸이퍼>는 진부한 영화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세뇌를 통해 개인의 과거가 조작당한다는 설정은 <다크시티>에 살던 [머독]이라는 남자가 ‘외계인’에게 기억을 주입당하며 몸소 보여주었고, 악몽을 통해서 나타나는 진실이 담긴 기억의 편린들에 괴로워 하다가 일순간 기억이 하나로 맞춰지며 진실을 알아버린다는 설정은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둘러보면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온몸에 문신을 새겨가며 놓치지 않으려는 자신의 기억이 진실이라고 믿지만 결국 기억너머에 있던 광기에 의한 거짓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메멘토>의 그것과도 통할 수 있겠다.)

 


<싸이퍼>는 복층 구조의 이야기를 통해서 담백하다 못해 팍팍하게 느껴지는 영상과 짜임새 있는 시나리오로 보는 이들을 멀미나도록 뒤흔들어 버리는 영화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되려 이런 매력이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으리란 사실을 간과한 것 같다. 영리한 관객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는 조금더 신중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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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퍼(2002, Cypher)
제작사 : Gaylord Films, Pandora Cinema, Headspace / 배급사 : 오시네마
수입사 : 제이넷이미지 / 공식홈페이지 : http://www.cypher5700.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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