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재구성 당신의 모든 기억을 의심하라
단서 1. 마틴 해리스 박사는 식물학자이며 베를린에 회의가 있어서 아내 리즈와 함께 호텔 아들론에 도착한다. 택시를 타면서 서류가방을 두고 온 걸 깨닫고 공항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른 택시를 잡는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택시는 큰 사고를 당하고 택시 운전수인 지나는 마틴의 생명을 구한 후 사라져 버린다.
단서2. 나흘 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고 신분증도 없는 상태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해내려 애쓴다. 조각난 기억들 중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불현듯 떠오르고, 이내 아내를 찾아 호텔로 가지만 그녀는 자신이 누군지 알지 못한다. 게다가 자기가 마틴이라고 주장하는 다른 남자까지 있다. 리즈는 그 다른 남자가 마틴이라고 믿고 있다. 쫓기듯이 도망 나온 마틴은 미국에 있는 친구 로드니에게 음성을 남긴다.
단서3. 병원에 돌아온 그는 담당의사에게서 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일종의 기억상실증이라는 말을 듣는다. 마틴은 자신이 누군지 아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를 모른다. 세상 전체가 그에 대한 기억을 잃어 버렸다. 행복한 결혼 생활과 모두가 부러워하는 멋진 삶이 한 순간에 망가졌다. 마틴은 꼭 진실을 찾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해내겠다고 다짐한다.
단서 4. 아내조차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마틴은 사고 직전에 그를 봤던 택시 운전사인 지나를 찾아 다닌다. 그녀는 사고가 났을 때 그를 강에서 구해낸 후에 불가사의하게 사라져 버렸다. 보스니아 출신의 불법체류자인 그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돈과 영주권을 악속 받고 그를 돕기 시작한다.
단서 5. 병원 간호사가 전한 의문의 쪽지에 적혀 있던 연락처로 찾아간 마틴은 구 동독의 비밀경찰이었던 요르겐을 만나게 되고 그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의 조언에 따라 베를린에 오기 전 마지막 통화했던 이번 세미나의 주인공인 식물학자 브레슬러 박사의 연구실로 찾아간 마틴은 또 다시 마틴B를 마주친다. 정해져 있던 자신의 모든 일정을 똑같이 가고 있는 그는 마치 동전의 반대쪽 면 같이 마틴의 삶, 아내, 친구들과 직장까지 모두 빼앗아버렸다. 그는 인생을 되찾을 수 있을까.
정체성의 재구성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나는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아는데 그걸 증명할 수 없다면?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 그가 나라고 주장할 때 모두가 그를 믿는다면? 누가, 무엇이 우리의 존재를 결정짓는가? 친구? 기억? 출신? 아니면 서류? 그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언노운>의 중심에 있는 딜레마다.
디디에 반 코엘라에르의 소설을 토대로 한 <언노운>은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한다. 영화는 한 남자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자신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걸 깨닫는 설정에서 시작되었다. 주인공인 마틴 해리스 박사는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차가운 베를린의 거리를 헤매고 괴한들이 그를 죽이려고 쫓지만 그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는데 반해 주인공은 아무런 증명도 할 수가 없는 설정은 전개되는 내내 곳곳에 힌트가 드러나 있지만 끝까지 미스터리를 풀 수 없는 묘한 힘을 가진다. 또한 영화는 히치콕 스타일의 스릴과 미스터리의 공존을 추구해 주인공이 어둠 속을 헤맬 때 관객도 함께 그 어둠에 몰입하도록 만들면서도 결코 결말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관객을 초조하게 만드는 진행 중에 결국에는 주인공의 정체까지 의심하게 만들며 미스터리를 전개하는 것이다. 흥미진진하고 정교한 스토리, 위험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면서도 화려한 스타일은 마치 첩보 영화를 연상시킨다.
출연진과 제작진 모두가 앉은 자리에서 쉬지도 않고 단숨에 읽어내려 갔을 만큼 흡입력 있는 시나리오는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관객을 싣고 스토리의 방향을 파악했다고 생각한 순간 갑작스러운 전개를 선보이며 한 치도 예측할 수 없는 스릴감을 맛보게 한다. 관객과의 쫓고 쫓기는 게임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도시의 재구성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는 베를린 올 로케이션
영화의 스토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펼쳐지며 실제로 베를린에서 모두 촬영됐다. 이제는 통일이 되어 새로운 빌딩이 옛 빌딩 사이에 지어졌지만 여전히 분단의 상처가 남아 한 도시 안에 다른 세계들이 존재하는 베를린은 정체성의 위기라는 영화의 주제와 가장 닮은 도시이다. 이에 미로 속을 헤매면서 막다른 골목에 자주 부딪히는 딜레마의 세계를 로케이션을 통해 보여준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20년 전 공산체제가 무너진 후 대규모 성장이 도모되어 이질감이 느껴지는 도시의 모습은 자신이 속해있다고 믿는 세상과 정체성을 빼앗긴 주인공이 부딪히는 낯선 세상이 보여주는 이분법적인 설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촬영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오가며 진행됐고 프리드리히스하인-크로이츠베르크를 포함한 여러 구역과 브란덴부르크문 및 박물관섬 등 대표적인 장소가 영화의 배경이 됐다. 영화의 설정 상 주인공은 집이 없어 택시나 지하철, 도보로 도시를 돌아다니기 때문에 48일 동안 로케이션 네 군데에서 촬영을 했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주인공 부부가 향한 호텔 아들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최고급 호텔로 영업을 중지하지 않은 채 백 명이 넘는 스태프와 중장비를 갖고 촬영을 진행하는 간행군을 펼쳤다. 호텔 투숙객에게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촬영을 해야 했기 때문에 진짜 투숙객들이 혼동하지 않도록 영화 촬영을 위한 프론트를 따로 만들고, 로비와 식당, 복도, 주방 등은 실제 장소에서 허가를 받아 촬영을 진행했다. 사고의 시작인 택시회사 주차장은 19세기의 맥주 공장에 컨테이너를 이용해 만들었고, 위험한 격투가 벌어지는 지나의 아파트는 베를린에 처음 온 터키 노동자들이 정착한 크로이츠베르크의 임시 아파트에서 얇은 합판을 설치해 촬영했다. 또한 구 동독의 비밀경찰 요르겐의 집은 그의 과거를 한 눈에 보여주도록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처럼 설정해 훈장과 표창장, 옛 동독 시민들이 사용한 가구 등을 전시해 마치 20세기 동독 비밀경찰 박물관 같이 꾸몄다. 영화 속에는 비밀경찰 시대를 연상시키는 노스탤지어가 묻어나는 장면도 등장하는 데 슈프레 강 위의 박물관섬으로 가는 다리 위의 비밀스러운 장면이다. 하필 이 장면은 최근 20년 중 가장 추운 겨울에 촬영되었다. 괴한을 따돌리기 위해 클럽의 인파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나이트클럽으로 강렬한 네온 불빛과 쿵쿵 울리는 음악으로 마틴의 고립된 상황을 더욱 강조했다. 이중 사건의 또 다른 전개를 맞이하는 신국립미술관은 외관과 실내를 달리해 실내는 샤를로텐부르크 구역에 있는 사진 박물관에서 촬영했다. 이 장면에 전시된 미술품들은 영화의 주제를 시사 하기 위해서 직접 만든 작품으로 정체성 상실에 대한 주제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영화 속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추격 장면은 처음부터 끝까지 베를린의 거리에서 촬영되었다. 열흘 밤이 걸린 이 장면은 근래 보기 드물게 실감나고 박진감 넘치는 카 액션을 선보일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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