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오를 차치하고 임상수 감독이 영화/현실, 상업주의/비상업주의, 주류/비주류의 경계에 서서 사회 부조리를 자기 식으로 공론화해 온 감독이라는 사실에 이견을 가질 관객은 많지 않을 것이다.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 한국 여성의 성적 욕망에 도발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바람 난 가족>에서는 가부장제에 ‘딴지’를 걸었다.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민감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과감하게 스크린으로 이식했으며, <하녀>를 통해서는 우리 안의 하녀 근성을 불러 세웠다. <돈의 맛>은 ‘불공정 코리아’를 해부하는 임상수 감독의 또 한 번의 날카로운 실험대다. 노골적이고 끈적끈적한 대사는 보다 더 과감해졌고, <바람 난 가족>때부터 위력을 발휘한 클래식하고 모던한 화면도 보다 매끈해졌다.(임상수 감독과 오랜 시간 작업한 김우형 촬영 감독의 공을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유머가 강해졌다.
영화에서 흥미로운 건 얽히고 설킨 시선이다. 백씨 집안의 돈을 관리하는 영작(김강우)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풀어질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돈의 맛>에는 여러 인물의 시선이 교차한다. 영화는 영작을 통해 재벌가의 은밀한 곳을 훑는다. 동시에 재벌의 눈에 비친 영작을 통로로 평범한 샐러리맨이 ‘돈의 맛’을 얼마나 버텨낼 수 있는가도 가늠하고자 한다. "쟤(영작) 좀 키워보자. 어디까지 올라오나 보게"라고 말하는 백여사(윤여정)에 의해 영작 또한 관음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 그나마 깨달음을 얻은 자는 백여사의 손 안에서 ‘속빈 강정’으로 살아 온 남편 윤회장(백윤식)이다. 그는 ‘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꺼우면서도 치사한’ 돈의 모욕에서 벗어나고자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지만, ‘돈의 맛’을 쉽게 끊지 못한다. 돈이 떨어지자 가방을 들고 금고를 찾는 윤회장에게서 한 번 중독되면 빠져나오기 힘든 돈의 무시무시한 권력이 느껴진다. 텅 빈 금고를 바라보며 헛헛한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이 초라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흥미로운 지점에도 불구하고 <돈의 맛>은 뭔가가 살짝 빠진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영화가 썩은 사회를 직접화법으로 공격하고 있지만, 오히려 임상수 감독의 전작들보다 자극이 덜하기 때문이다. 백씨 재벌가는 대화를 통해 한국 사회의 비리를 구구절절 설명한다. 도덕 교과서에서 들을만한 이야기를 지나치게 반복해서 사용하다 보니, 신랄함의 농도가 옅어진다. 대놓고 드러내는 것보다 살짝 감추는 게 더 섹시해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풍자와 유머의 수위 조절이 적절했는가도 의문을 남긴다. 어떤 부분에서는 인물의 희화화가 효과적으로 작용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작품의 밀도를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나미(김효진)와 영작이 품는 희망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가릴 것으로 보인다. 상업성에도 신경 쓴 기색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물론 이러한 몇몇 변화를 임상수 감독의 변심이라 평하긴 힘들다. 어쨌든 하고자 하는 얘기를 임상수만의 화법으로 뚝심있게 구현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사회문제를 다루는 감독은 세고 셌지만, 그 문제를 관객들이 들여다보게끔 하는 연출가는 많지 않다. 동시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제의 핵을 정확하게 짚어낼 줄 아는 임상수의 눈썰미는 분명 한국에서 보기 드물게 발견되는 연출력이다. 그리고 이것이 관객이 그의 영화를 찾는 이유인 동시에, 꺼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그의 행보는 이번에도 주목을 이끌어 냈다. 칸의 선택이 궁금하다. 흥행력도.
2012년 5월 21일 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