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설정은 흥미롭다. 아버지가 데려온 그녀, 즉 재수의 엄마는 재수와 의붓 모자관계를 형성하지만 실제적으로 보살핌을 받는 대상은 재수가 아닌 엄마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 역설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동시에 그들은 서로에게 결핍된 빈자리를 메우는 대상으로 자리매김한다는 점에서 모자이자 친구, 연인 같은 동병상련의 관계로도 읽힌다. 도망갔을 것이라 생각했던 첫 번째 엄마가 재수와 사별했음을 알게 된 그녀나, 자신과 별다를 것 없이 구차한 신세에 불과한 그녀의 유년 시절이 비교적 평탄했음을 알게 된 재수가 공유했을 의아함은 관계의 오해를 낮추고 서로에 대한 일말의 이해로 접근하는 계기가 된다.
배우들의 면모만으로도 심상치 않은 <열한번째 엄마>는 기대만큼이나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으로 꽉 채워져 있다. 도도하면서도 매혹적인 눈빛을 구사하던 김혜수는 어느 때보다 초췌하지만 사력을 다한 진심을 내보이고 있으며, 속을 알 수 없는 극악한 눈빛으로 악랄한 아버지를 연기하는 류승룡과 진짜 동네에서 만날 것만 같은 철부지 한량의 차림 그 자체인 황정민의 연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자태를 뽑아낸다. 또한 드라마 <파리의 연인>등으로 좋은 인상을 남겼던 김영찬은 성인 배우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고 비중에 걸맞은 적절한 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열한번째 엄마>의 독이다. 덧붙이자면, 배우의 연기력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연기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과감하게 버려야 할 비중까지 살려버린 연출력과 편집의 문제다. 나름대로 참신한 소재로 팽팽하게 흘러가던 중반부까지의 흐름은 논리적으로 아귀가 맞지 않는 상황 전개와 절제의 필요성을 간과한 감정적 과잉으로 도식적인 인상을 남기기 시작한다. 특히나 중후반부에 이르면서 주변부에 머물러야 할 백중의 캐릭터가 중심부에 난입해 감성에 혼선을 주고 이야기 구조를 산만하게 흔든다. 게다가 수녀원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그녀의 동선은 맥락적 오류로 느껴질 만큼 이야기의 사전 조건에 비해 탐탁지 않은 부분이다. 이는 동시에 일관성 없게 출몰하는 아버지의 등장조차도 의구심을 낳게 만든다.
영진공 시나리오 공모전 2005년도 당선작을 영화화했다고 말하기에 이야기적 구조는 어딘가 석연찮다. 시나리오를 읽어보지 못한 결과, 그 결과물이 연출력의 문제인지 판단을 내리기엔 쉽지 않으나 결과적으로 캐릭터의 비중에 따른 완만한 편집을 거쳐야 했을 후반 작업의 성의가 다소 아쉽다. 팽팽한 캐릭터의 대립을 통해 소재만큼이나 참신한 감정적 전개를 기대하게 했던 이야기가 급작스럽게 신파모드로 돌변하는 것도 안타깝다. 또한 걸출한 배우들의 연기를 차마 버리기 아까웠는지 비중의 안배를 고려하지 못하고 뭉뚱그려 넣은 결과물은 결국 불균질한 감정의 난입까지 초래한다. 또한 다양한 관계적 질료로 느껴지던 그녀와 재수의 관계가 모성애적 질감으로 규정될 때, 폭넓게 너비를 벌리던 감정적 스펙트럼이 순식간에 좁혀 들어간다.
<열한번째 엄마>는 그렇게 안이한 감정적 흐름에 홀로 도취된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야기적 의도는 분명한데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만큼 난처한 것도 없다. 더군다나 탁월한 캐릭터 소화와 더불어 진정성까지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배우들의 열연을 받쳐주지 못하는 이야기를 눈뜨고 확인해야 한다는 것만큼 안타까운 것도 없다. 마치 고급 음식들을 양푼에 담아 먹는 것처럼 <열한번째 엄마>는 넘치는 역량을 담아내지 못하는 그릇의 과분함이 눈에 띤다. 게다가 죽음의 클리셰까지 끌어들이고 나서야 해피엔딩의 상으로 귀결되는 도식적 엔딩은 생동감이 없는 식물적 감각처럼 느껴질 정도다.
2007년 11월 22일 목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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